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큰 상처를 입었다. 프로그래머 해임과 집행위원장의 사직, 그리고 스태프들의 집단사직까지 이어지면서 조직위 내의 진통은 영화제 안팎의 우려를 샀다. 신임 고석만 집행위원장과 새롭게 구성된 조직위의 최대 과제는 2012년의 아픔을 성장통 삼아 앞으로 더 튼튼하고 성숙해진 영화제를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그 중심에 영화제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는 두 사람이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명지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약해온 이상용 프로그래머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그래머직을 수락하게 된 계기와 제 14회 전주국제영화제 소개와 특징, 그들이 생각하는 전주국제영화제를 들어보았다.
발리우드의 뒤를 캐오다 : 전통
두 프로그래머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것은 국내에서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쿠바, 터키, 스리랑카 중앙아시아 등 국가별 특별전을 기획해 발굴한 영화들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야심차게 선보이는 발굴섹션 역시 특별하다. ‘비욘드 발리우드(Beyond Bollywood)‘라 지은 인도영화 특별전. <블랙>(2009), <세얼간이>(2011), <지상의 별처럼>(2012)등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도 영화를 생각하면 색다른 시도가 아닌 것 같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응을 노린 반전에 가깝다. 이번특별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힌디권의 영화와 더불어,보기 드문 동부의 벵갈, 남부의 타밀, 서남부의 말라얄람 등 각 주의 대표 영화를 두루 소개하고 있다. 특히 두 프로그래머는 인도 자국 내에서조차 보기 힘든 영화 두 편에 신경을 썼다. 외국인들은 쉽게 갈 수 없는 북동부의 마니푸르 주에서 제작된 <레이팍레이>와 최근 인도영화계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고 있는 북서부 다람살라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해리, 결혼하다>라는 작품이다. 두 프로그래머는 “인도, 하면 발리우드 영화라는 선입견을 뒤집어 줄 특별전”이라 말한다. ‘발리우드(Bollywood)’는 인도 뭄바이인 ‘봄베이(Bombay)’에 ‘할리우드(Hollywood)’의 합성어이자 인도 영화를 통칭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리우드’는 인도 영화산업의 극히 일부인 힌디영화산업을 일컫는다. 28개 주에 달하는 거대한 인도에서 5개주(동부, 남부, 서남부, 북동부, 북서부)의 각기 다른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운 발굴 영화다. 이번 특별전이 쿠바, 터키, 스리랑카, 중앙아시아에 이은 전주국제영화제의 기록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숏숏숏 간판은 무얼 택했나 : 변화
두 프로그래머가 인도영화 특별전으로 전주영화제의 전통을 지키려했다면 영화제의 간판프로그램 ‘숏숏숏’ 은 변화라 할 수 있다. ‘소설, 영화와 만나다’를 주제로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을 이상우, 이진우, 박진성/박진석씨가 연출해 선보일 예정인 2013 숏숏숏은 기존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라 기대가 크다. 두 장르의 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많고 많은 작가들 중 김영하를 택한 것도 이유가 있을 터다.“숏숏숏 영화를 만들었던 역대 감독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3천만원으로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영화를 어떻게 알려서 배급을 하고 또 개봉에서 입소문을 내느냐’ 하는 기획적 요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두 프로그래머는 애초 세 작가의 세개 소설로 영화화하려던 계획을 뒤집고 김영하의 작품 3개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 감독들이 작품 선정에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고, 모두 다른 작가의 작품보다 한명의 작가에 집중한 결과물의 화제적 요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영화가 잘되면 숏숏숏에 큰 전환점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김영하라는 빅네임을 택한 것도 그 부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이름을 달고 감독과 영화 모두 큰 무대로 진출했으면 하는 기대와 해외에 알려진 김영하씨의 작품 또한 영화로 새로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습니다.”한 무대 안에서 예술적 외연을 확장한 것을 변화의 한축으로 생각한 두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서 ‘영화가 아닌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서로 다른 장르를 하나로 선보이는 것 그 자체를 축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래머가 바라본 영화제 : 신뢰
두 프로그래머에게 있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축제에 버무릴 것이냐’ 하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영화제 대중성’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이 말은 곧 ‘영화를 위한 영화제’여야 하느냐 ‘시민을 위한 영화제’야 하느냐에 이야기와 같은 의미다. 둘 사이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고 애매하다는 두 프로그래머는 상호 간의 ‘신뢰’에 답이 있다고 했다. “서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주여서 가능하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올해로 29년째 열린‘선댄스 영화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립영화 작품을 소개하곤 하지만 선댄스 시민들이 즐기고 아끼는 영화제로 유명합니다. ‘그 힘이 뭘까?’ 생각해보면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제 형식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문화에 있는 것이지요.”평소 대중영화와 오락영화만 즐겨본 사람이라도 영화제 기간에는 자신의 취향과 다른 부분까지 기꺼워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영화제를 아껴주는 일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일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전주가 미처 마련 못한 부분을 영화제가 채워주고, 영화제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부분을 전주가 가진 개성으로 얻는 것이 ‘전주’와 ‘영화제’를 건강하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영화제 기간 전주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엔 “숙소가 마땅치 않아 모텔에서 잤지만 전주여서 즐거웠다“는 분들이 꽤 많아요. ‘A 때문에 부족하고 불편했지만 B 덕분에 다시 오고 싶어지는’ 것. 이것이 전주와 영화제의 힘이자 모든 영화제에서 새기면 좋을 상징과 같은것이죠.” 단점보단 장점을 보고, 장점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 모두에게 요청되는 과제인 셈이다. 이들은 ‘영화를 말하는 영화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축제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지만 정작 영화제에 영화이야기 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나 지면 이유도 있지만 영화 자체보다 스타중심으로 축제가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단다.하지만 프로그래머로서 한쪽만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 사회나 국제적으로나 ‘누가 오느냐’가 그영화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국제경쟁심사위원에 류승완 감독과 배우 정우성씨를 섭외한 배경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은 “연예인으로서 오길 원했던 게 아니라 영화에 깊게 발을 담그고 있는 영화인을 초대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이야기 : 호흡
선임 된지 채 석달도 되지 않아 굵직한 간판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했던 김영진 수석프래머와 이상용 프로그래머. “시간이 부족해 작품선택권이 적었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고 해서 관객들이 알아주는건 아니니 그런 스트레스가 좀 있었죠. 경험자인 이상용 프로그래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중 좋았던 영화들을 관객들께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김영진) “프로그래머뿐만 아니라 스텝들도 최근에 꾸려진 상황이라 조급한 건 매한가지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발휘하는 놀라운 역량과 에너지에 매번 감탄하면서 서로서로 힘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영화가 나올지 파악이 가능했던 부분이 있어 덜 힘들었습니다.”(이상용) 두 프로그래머의 역할 분담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유럽영화에 내공이 있는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주로 국제영화를 선별하고, 영화제 프로그램 전반 총괄과 국내영화 선별은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가 맡았다. 프로그래머는 겉으로 보기엔 영화만 고르는 것 같지만 영화제 전반의 하드웨어를 정하는 관리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98년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가 <씨네21>기자로 활동할 때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같은 영역에서 워낙 오래 있어 편하고, 실력도 있다”고 주고 받는다. 김영진 프로그래머가 한참 선배이지만 연배와 관계없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그렇다 해도 함께 프로그래머직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고석만 집행위원장님의 예전 PD시절 드라마를 재밌게 보기도 했고 개인적인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영화제의 자율성에 대해 직접 겪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가 가진 색깔에 부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영화에 대해 훨씬 날카롭게 짚어줄 수 있는 부분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누군가가 있긴 하겠지만 그것이 경험자여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영진 선배의 부탁도있었고,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이상용)
JIFF를 즐기는 시간 : 과거가 미래다
석달여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영화제를 목전에 두고 영화제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바라보고 있을 시민들과 역시나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두 프로그래머, 각오와 당부가 궁금했다.“비판과 칭찬 모두 달게 받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어떤 평이든 와서 보시고 마음껏 판단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잔치는 손님들이 많이 와야 흥이 나니까요.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우울한 순간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인 것 같아요. 축제가 우울하면 안 되거든요. 그것을 늘 경계하고 있고요. 그러니 많이들 오셔서 즐겨주세요!” 두 사람은 ‘영화를 말하는 영화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축제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지만 정작 영화제에 영화이야기 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체나 지면 이유도 있지만 영화 자체보다 스타 중심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싶다”고 했다.그런 의미로 토크프로그램인 ‘마스터클래스’는 이번해에 조금 더 특별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주제나 토픽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색다른 토크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잔치하면 풍악을 떠올리는 것이 가장 단순한 상상력”이라 꼬집은 두 프로그래머는 영화 아니면 공연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목소리와 언어’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려 했다고 한다. 한 편의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느낀 좋은 기억이 일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영화제의 힘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영화제에 영화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두 사람.그 힘이 이번 영화제에 조금이나마 닿기를 바라본다.“한국에 전통이란 말을 내세울만한 도시가 어디 있을까요? 전주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높은 메트로폴리스 빌딩이 아니라, 살아있는 골목길과 기본이 주는 편안함일 것입니다. 전통은 과거지만 과거가 미래가 될 수 있는 시간을 이번 영화제에서 느낄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의 힘을 믿자는 것이지요.”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그는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임시방편으로 불문과에 갔다. ‘프랑스 영화를 좀 보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내심 기대를 걸었지만 불문과는 불문과일 뿐인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공부를 손에서 놨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리라 마음먹고 중앙대대학원에 입학해 영화이론을 전공하며 석·박사를 마쳤다. 석사가 끝난 1992년부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썼고, 영화주간지 <필름2.0> <씨네21>의 기자로 활동하며 평론가를 겸했다. 현재 명지대학교에서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로 강단에서 영화학도를 길러내고 있는 그는 제작의 꿈도 늘 간직하고 있다. “위대한 영화의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한국 영화감독들의 열정과 재능에 다소간의 글을 보탠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미지의 명감독>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할리우드의 꿈> <이장호vs 배창호> <평론가 매혈기> 등 꾸준히 책을 펴냈다. 꽃피는 사오월이면 영화제 보러 내려오고 가족들과 맛집투어를 하러 곧잘 놀러왔던 전주는 이제 너무 자주 오게 되었다. 가르치고 글 쓰는 것보다 프로그래머가 훨씬 어렵다는 그는 영화제의 첫 밥상을 놓고 기대 반 고민 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지만 영화광은 아니었다는 그는 제대 후 대학 자유선택으로 영화과 강의를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눈 뜨기 시작했다. 이후 제2회 <씨네21>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얼떨결에(?) 평론가의 길에 들어섰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글을 쓰며 직업적 글쟁이로 살았다. 그는 영화든 문학이든 영화와 문학이든 매년 촬영을 하는 부지런한 감독들처럼 매년 한권의 책을 내는 것이 소망이라 말한다. <장국영-천상에서 해피투게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안나 카레나>등 세권의 저서와 한권의 공저를 냈다. 그의 이력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은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용관 교수의 추천으로 대학원생 때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유영길 회고전 등을 준비하며 영화제 안팎일을 다양하게 겪은 경력이 있다. 평론가로 꾸준히 활동하고 인디포럼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하며 ‘프로그래머’로서의 튼튼히 쌓아온 공력도 있다.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비평가 주간 프로그래밍으로 참여한 인연이 있는 전주국제영화제. 오랜 시간 같은 영역에서 친분을 쌓아온 김영진 프로그래머와 그 첫 페이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