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두드리니
전주국제영화제의 열네 번째 프로그램이 공개됐다.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는 지난 3월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9일간 열릴 영화제의 방향과 전체 상영작을 발표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공식상영작은 46개국 178편(장편 117편, 단편 61편), 이벤트 상영작은 12편(장편 3편, 단편 9편)이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프로그램의 재정비다. 지난해 6개 메인섹션과 19개의 하위섹션이었던 프로그램을 ‘한국영화 쇼케이스’와 ‘로컬시네마 전주’는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로 합치는 등 6개 메인 섹션과 11개의 하위섹션으로 압축했다.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통합은 지역성이나 쇼케이스 성격을 넘어 다양한 한국영화 흐름으로 소개하려는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의 의지가 반영됐다. ‘시네마페스트’의 ‘애니페스트’ 역시 이같은 맥락으로 ‘영화궁전’으로 포함됐다. 올해부터 홍보대사는 없애기로 했다. “특정 연예인으로 영화제를 홍보하기보다 영화제를 찾는 모든 전주시민이 홍보대사가 되자”는 발상의 전환을 피력한 고석만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도 홍보대사가 없다”면서 “홍보대사 대신 새롭고 다양한 게스트들이 영화제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의 문, 소녀들
<폭스파이어>와 <와즈다>. 올해 개막작은 프랑스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감독이 만든 여성영화 두 편이다. 개막작 <폭스파이어>(2012)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영화이면서 사회고발적 성격이 강하다. 이 작품은 <클래스>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랑 강테 감독의 신작이면서 영미권 대표 여성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원작이기도 하다. 극사실주의적 영화로 유명한 로랑 강테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단단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폭스파이어>는 성폭력을 당한 상처 입은 소녀들이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맞서는 아이러니를 포착한 영화다. 개막작의 주인공이 소녀들이라면 폐막작은 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감독인 하이파 알만수르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큰 주목을 받은 작품 <와즈다>는 자전거를 갖고 싶어하는 평범한 십대 소녀의 이야기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한 소녀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는 영화는 감독이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탄탄한 기술력과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공교롭게도 두편 모두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로 선정됐지만 우리 사회와 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도“쉬운 작품으로 개·폐막작을 선정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잡으려 노력한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은 서로 양립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두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소녀시대’라 불리는 개·폐막작. 슬픈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제의 만남, 문학과 영화
이번 영화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문학과 만남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을 영화화한 ‘숏!숏!숏!’ 프로젝트는 젊은 감독을 지원하면서 소설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기획을 꾀했다. 이상우 감독은 김영하 작가의 <비상구>를, 이진우 감독은 「피뢰침」을 <번개와 춤을>이라는 영화로, 박진성/박진석 감독은 「마지막 손님」을 <THE BODY>로 각색해 연출한다.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이상우, 이진우, 박진성, 박진석 감독에게 작가 김영하의 소설을 각색· 촬영할 것을 제안했다”며 “출판사와 작가와 접촉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고, 기꺼이 취지에 동감한 감독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재밌는 옴니버스 영화를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카프카 탄생 13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카프카 특별전’에서는 카프카의 원작이나 그와 관계된 모티프를 바탕으로 탄생한 6편의 장편영화와 4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텔레비전용 장편영화 <성>과 부부감독 다니옐 위예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장편 <계급관계>는 ‘거장 감독이 바라보는 카프카’ 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두 편 모두 카프카의 「아프리카」를 각색했다. 체코와 유럽 감독이 그린 카프카도 있다. 파벨유라첵 감독의 장편 <젊은 사형수의 경우>와 즈비넥 브리니호 감독의 장편 <그리고 다섯 번째 마부는 무섭다>가 그 작품.두 영화를 포함해 미국, 일본, 폴란드 등 각국의 감독들의 시선으로 그린 카프카 영화도 새롭다.그중에서도 캐롤라인 리프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미국·캐나다)과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단편 <시골의사>(일본) 두 작품도 추천작으로 꼽힌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많은 다양하고 많은 나라 감독이 카프카에 영감을 받았을 줄 몰랐다”며 “20세기 예술의 한 획을 그은 카프카와 그를 바라보는 현 영화감독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특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쟁, 실험적 단편 늘어
국제경쟁부문에는 세계 각국의 신인 감독들의 작품 중 10편이 초청됐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9편의 극영화가 선정됐고, 지역별로는 4편의 아시아 영화와 6편의 비아시아권 영화가 경합을 벌이게 된다.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한국경쟁작품과 한국단편경쟁작품도 발표됐다. 이번 경쟁부문에는 장편 102편과 단편 589편이 출품돼 장편 10편과 단편 20편이 본선에 올랐다. 올해 선정된 10편의 장편영화는 6편의 극영화, 1편의 옴니버스영화 (실험·다큐멘터리·극), 3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구성됐다.극영화는 <환상속의 그대>(감독 강진아), <용문>(감독 이현정), <그로기 썸머>(감독 윤수익), <레바논 감정>(감독 정영헌), <힘내세요, 병헌씨>(감독 이병헌), <디셈버>(감독 박정훈)로 6편이 진출했고 <춤추는 여자>(감독 박선일 박준희 유재미 조지영 추경엽)는 옴니버스영화로 진출했다. “올해 ‘한국경쟁’에 출품된 다큐멘터리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것이 많았다”는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그중에서도 ‘<마이플레이스>(감독 박문칠)’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이와 함께 <할매-시멘트정원>(감독 김지곤), <51+>(감독 정용택)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한국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단편경쟁’부문은 589편으로 규모가 꽤 늘었다. 12편의 픽션, 6편의 실험영화, 2편의 애니메이션이 진출했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왕따, 청소년 임신, 빈부격차와같은 신문 사회면의 기사거리가 단편영화 감독들의 여전한 관심사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올해 선정된 작품들의 면면을 통해 드러나는 특징은 실험성을 중시하는 단편이 늘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제 속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
영화의거리 입구에 위치한 ‘지프광장’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포함한 관객행사를 준비했다. 지프광장에 마련된 지프스테이지에서는 넌버벌 공연을 비롯한 각종 공연이 펼쳐지고 구 공무원연금매장주차장에 마련된 ‘지프스페이스’에서는 야외메인공연과 야외상영이 진행된다. 세 개의 주요 포인트인 지프광장, 지프스페이스, 지프라운지에서는각각의 공간 특성에 맞는 공연, 콘서트, 토크 프로그램이페스티벌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또다른 재미, 영화+학술 행사인 ‘지프클래스’를 통해 영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물론, 다양한 토크클래스를 통해영화를 한단계 높여 볼 수 있는 장을 만든다. 한편 올해JIFF프로젝트마켓은 형태와 방향을 재정비해 지난 2012년까지 진행돼 온 전주프로젝트프로모션(JPP)의 ‘워크인 프로그레스’를 폐지하고 기존 ‘프로듀서피칭’을 ‘극영화피칭’으로 바꿔 진행한다. 4월 27일 오후 1시에는 극영화피칭이, 4시부터는 다큐멘터리피칭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