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도립미술관에서 <1980년 대 예술운동 현장의 작가들 > 展 ‘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1부는 송수남 화백과 KBS 전주방송총국 손혜원 아나운서의 대담이, 2부에는 황재형 화백과 미술평론가인 가천대학교 윤범모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55년 만에 고향 전주로 내려온 송수남 화백은 “남고산과 전주천을 뛰놀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내 그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말문을 열었다. 친구따라 강남가듯 입학한 홍익대학교 미술학도 시절을 얘기하며 “무식하게 열심히 그림 그리며 놀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물을 탐구하는 동양화의 매력에 한참 반해 있었다”며 서양학과에서 동양학과로 전환한 계기를 전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려면 10000점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하더라”고 소개한 송 화백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할 줄 아는 것이 그림 밖에 없어 꾸준히 길을 걷고 있다” 고 웃었다. “전국적으로 대학에서 순수미술학과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서양화든 동양화든 펜 대신 붓을 잡는다 생각하며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송수남 화백이 삶과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황재형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대담을 이어나갔다. 탄광촌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을 묘사한 <메탈지그와 선탄부>부터 석탄 바람에 나부끼는 마을 풍경을 그린 <바람 그 너머>, 노동자와 공무원의 계급관계를 묘사한 <장화와 구두>등 작품을 그린 배경과 계기를 설명했고, 미술평론가 윤범모 교수는 중간중간 평을 곁들이며 대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황재형 화백는 “예술가는 진실을 열어 보이는 자여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말을 좋아한다”며 “탄광촌 노동자들과 살을 맞대고 지내며, 열악한 현실이지만 삶의 진실과 희망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공재 윤두서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공재의 자화상을 설명하며 “정면그림은 내가 추구하는 진실성과 맞닿아 있다”며 “예술과 진실은 언제나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복고주의, 지나친 권위주의가 만연했던 1970년대 말, 한국화의 위기 상황 앞에서 새로운 한국화의 정립에 목소리를 높이며 ‘수묵화 운동’을 주도한 남천 송수남. “노동자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보안대에 끌려가 사상검증을 받고 고문을 당해야 했던” 부당한 현실을 탄광촌 노동자들과 땀 흘리며 맞선 황재형. 4월 28일까지 열리는 <1980년대 예술운동 현장의 작가들>展에서 두 화백의 과거와 현재를 만난다. 그들의 치열한 내면은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작가는 붓으로 단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