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빛 넝쿨장미가 콘크리트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별 볼일 없는 세상을 기웃기웃 엿보는 계절, 6월이다. 천형(天刑)인지 축복인지,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두보인 우리나라 열두 달, 삼백예순날은 어느 달 어느 날이든 잊지 못할 아픔과 가슴 벅찬 기쁨들이 즐비하다. 뼈에 사무친 아픔과 안타까움, 가슴 벅찬 기쁨과 환희가 씨줄날줄로 뒤엉킨 한국근현대사 6월의 대표적인 일들로는 1894년 동학농민군 집강소 설치 및 폐정개혁 단행, 1950년 한국전쟁 발발, 1987년 6·10민중항쟁,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손꼽을 수 있다.올해는 계사년이고, 내년 2014년은 갑오년이다. 그러니까 내년이 동학농민혁명 두 갑자, 120주년이 되는 해다.119년 전 1894년 6월의 전북(전주)은 조선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주요 3개국과 십자가와 함포를 앞세우고 자본주의 상품판매시장 확장에 나선 서구열강의 관심이 집중된 곳이었다. 조선후기 서세동점의 격랑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 전북은 조선과 동아시아, 세계 정치정세를 좌우하는 태풍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중심축으로 자리했던 중국이 1860년 영국과 프랑스 무력에 굴복하여 개항했고, 이같은 위기 속에서 수운 최제우는 ‘侍天主’를 골자로 하는 동학을 창도했다. ‘사람 안에 신령스런 하늘이 모셔져있다.’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시천주사상은 18세기 영국의 홉즈나 존로크 등이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이 준 자연의 권리, 곧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창한 천부인권설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동양적 인본주의의 정수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지향의 흐름이 도저했음에도 조선정부는 시대적 흐름에 둔감한 채 통치질서의 파탄을 맞고 있었다. 통치질서 파탄은 가렴주구로 이어져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하여, 동학사상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고, 1890년대 초반 동학교단은 공주와 삼례, 서울 광화문, 충북 보은과 전라도 금구·원평 등지에서 대중적인 정치집회를 열었다. 급기야, 갑오년 정월 고부농민봉기를 도화선으로 그해 3월 무장에서 포고문을 공포하고 동학농민혁명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1894년 5월 31일(음 4.27) 전주성을 함락시킨 동학농민군은 청나라와 일본 군대의 철병 요구를 위해 그해 6월 조선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동학농민군은 전주화약에 따라 전라감영 선화당에 집강소 업무를 통괄하는 대도소를 설치하고, 원평과 남원에 전라우도와 전라좌도를 관장하는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근대민주정치의 효시다. 이때 단행된 폐정개혁의 골자는 불량한 유림과 양반배 징벌, 문벌타파 인재등용, 노비문서 소각, 과부재가 허용, 무명잡세 제거, 토지 평균분작 등 파격적인 내용들이었다. 이렇듯 갑오년 6월, 전주성과 전라도 전역은 동양적 근대 추구의 파라다이스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쓰러져 까마귀들에게 눈알 빼앗기고, 심장마저 뜯겨져 우리 근현대사는 일제식민지시기, 민족분단과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시기 등으로 점철되면서 잔혹했다. 우리는 갑오년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1세기 초입 FTA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19세기 서세동점의 격랑과 21세기 초입 FTA 격랑은 일란성 쌍둥이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6개월 앞둔 이 시점에서 다시 경각심을 높여야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미래가,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천형인지 축복인지는 우리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6년 앞둔 1988년 5월 전북문화저널사는 제1회 역사문화기행으로 “우리는 녹두새를 보았다”를 추진했다. 나아가 이듬해인 1889년 6월호 문화저널에 “갑오농민전쟁 백주년을 준비하자”(신순철 원광대교수)는 글을 실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0년 1월 호남사회연구회에서 백주년 준비논의가 본격화했다. 그 결과 1992년 6월 전북지역시민사회단체들의 연합체인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공동회장 김삼룡 조용술 한승헌)가 창립되었던 것이다.이러한 노력들이 2004년 2월 29일 동학농민혁명 관련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 실로 한 세기만에 ‘반란’의 누명을 벗고 ‘혁명’으로 복권되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목전이다. 백주년을 앞두고 이루어졌던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논의와 협력이 다시 한 번 이루어기기를, 더 늦기 전에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할 준비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