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연되었던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해마달)’에 이어서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객석 점유율이 평균 96%에 이르렀던 ‘해마달’의 흥행을 이어가는 이번 공연은 심청전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흥행에 성공할 요소 갖춰
안숙선, 왕기석, 이순단, 김성예 등 판소리 대표주자들과 함께 장문희, 박애리 등 판소리 신예들이 함께하며, 지역의 연극인과 비보이 및 신인 국악인재들이 출연한다. 심봉사역의 왕기석과 황봉사역의 이순단의 해학적 연기는 이들이 진정 전주대사습의 장원 출신인가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면이 있으며, 극중 또 다른 주인공일 수 있는 뺑파 역의 김성예는 완숙한 연기로 마당극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팔도 맹인들의 새로운 필수품인 선글라스의 등장과 관절을 꺾고 근육을 튕기는 팝핀댄스와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해보는 전통기예는 객석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한 장치이다. 또한 현장감 있게 연주되는 수성반주와 미디어 파사드를 한옥창살에 통해 비추어보는 시각 연출은 관람하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25000원짜리 입장권은 전통 문화 체험과 잔치 음식까지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덤으로 갖추고 있다. 전통을 바탕으로 보다 새롭게 제작된 이번 공연은 지난해보다 더 활력있고 박진감 넘치는 내용을 바탕으로,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배우들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기에 흥행에 커다란 어려움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전주문화재단이 제작한 이 작품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는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 지원 사업으로 운영되는 공연으로 작년 4곳(전주, 익산, 고창, 임실)에 남원을 더해 올해부터는 5곳에서 펼쳐지는 공연 지원사업 중의 하나이다. 전북을 알리고 우리지역의 브랜드 공연을 만들어가기 위해 10억이 넘는 예산을 국가와 지자체가 이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공연의 대상은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공연은 전북도민보다는 우리지역을 찾은 관광객을 우선으로 고려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그것은 ‘한옥에서 만나는 우리의 전통 문화’로 쉽게 정리될 수 있는데, 담 낮은 한옥과 전통음식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러한 색다름을 느껴보기 위해 전주를 찾은 것이며, 또 거기에 감동하고 만족할 수 있다.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잊고 지냈던 우리 것에 대한 낯선 경험’이다.
창극과 한옥마을, 우리에겐 기회
전통 문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많은 외지 관객들을 주된 대상으로 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바로 ‘창극(唱劇)’이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해학과 감동이 넘치는 극적 대화로 이루어진 우리의 전통 음악극이다.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되 판소리보다 이해하기 쉽고 즐거울 수 있으며, 국악을 바탕으로 하되 시각적인 면과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기에 좋다. 그래서 창극은 노래와 연극뿐 아니라 무용과 국악연주에 이르기까지 전통 공연 장르가 총망라된 우리 민족 최고의 공연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 다른 국악 장르보다 대중들과 함께 하기에 유리하며, 현대적 공연형태로 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국악 장르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창극은 왜 중요한 것일까? 무엇보다 창극을 공연한다고 하는 것은 숙련된 인원이 풍부하며,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절대로 쉽지않은 일이다. 별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창극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단체가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전국에 고작 다섯 단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한번 놀라며, 그중 두 단체가 우리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다.전주가 그렇고 남원이 또 그렇다. 반면 부산과 대구, 대전 등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접해보기 어려운 공연이 창극이다. 흉내낼 수는 있지만, 제대로 공연할 수 없는 전통 예술이자, 숙련된 인원과 대단위 공연단이 필수적인 창극은 섣불리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전통 예술 최고의 장르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남들에게는 낯선 것이며, 창극은 우리에게 기회인 것이다. 아파트와 빌딩을 벗어나 뮤지컬과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서양의 음악장르에 싫증을 느끼는 관객들을 위한 최고의 대안이 한옥마을이고 전통 창극이다.
지역성 담은 새 작품 내놓아야
결국 한옥자원을 활용한 공연과 전주의 브랜드 공연이 창극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경쟁력이고 우리지역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창극의 전통을 바탕으로 지역의 실정에 맞게 새롭게 변화시켜서 만들어 나가는 한옥자원을 활용한 작품들의 첫 시도는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가 보여주는 완성도와 재미는 관객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는 수준임에 틀림없다. 다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연이란 것은 공연 자체의 완성도에 못지않게 스토리와 지역의 연관성이 중요하다. 전주에 와야만 볼 수 있고, 전주에서 보아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공연. 이제는 ‘전주에 왔으니 봐야하는 공연’이 아니라 ‘공연을 보러 전주에 기꺼이 찾아올 수 있는 콘텐츠’를 하나씩 키워나가자. 우리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연구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경쟁력이고 지역이 살 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가 추가해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유료 입장료보다 몇 배나 많은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많은 축제와 공연들이 한옥마을의 관광객들에게 어부지리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나간다면,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거대한 콘텐츠를 넘어서는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전주 한옥마을 이후의 미래를 보다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