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을 내일로 이어주는 도시재생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창조’와 같은 말이다. 옛 서울역이 외형을 유지한 채 ‘문화역서울 284’로 재탄생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듯, 역사의 현장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다. 평야를 중심으로 아프게 펼쳐진 일제강점기 역사들에도 그 의무는 존재한다. 군산, 익산, 김제의 곳곳에 남겨진 근대문화유산들은 당시 수탈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호남 최대의 역참지였던 삼례읍도 예외는 아니다. 삼례역을 통해 전라도 곳곳에서 모인쌀은 삼례역으로 실려와 군산항을 통해 수탈됐다. 그리고 역사옆에 자리한 일곱동의 삼례양곡창고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초기지 였다. 지난 6월 5일 삼례양곡창고는 아픈 기억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1만1800㎡ 규모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복합문화공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한 삼례양곡창고가 미디어 아트 갤러리와 디자인박물관, 목공소, 책박물관, 디자인 뮤지엄등으로 꾸며진 것. 삼례문화예술촌은 완주군이 양곡창고를 매입하고 삼삼예예미미 협동조합(대표 김태호)이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삼례지역의 근대적 자산과 역사성을 새로운 감각으로재구성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한 사업이다.(사)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운영하는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현재 디자인 부분 최고의 ‘PIN-UP’상을 수상한 다양한 산업디자인 제품이 전시돼 있으며, 비주얼미디어아트갤러리에서는 ‘예술은 재미다’를 주제로 한 개관 전시를 볼 수 있다. 영월책박물관을 이전한 책박물관은 송광용 씨가 40년 동안 쓴만화 일기, 옛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무인서점에서 오래된 책도 구매할 수 있다. 책공방북아트센터는 납활자, 다양한 인쇄기 등을 전시, 직접 책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진행중이다. 김상림목공소는 조선 목수들의 철학을 재현하는 전통가구들과 목공 도구를 전시하고있다. 이와 함께 김상림목공소에서는 목수양성을 위한 목수학교와 주말체험 프로그램이 준비중에 있으며 책공방북아트센터에는 북아트스쿨 및 다이어리 워크샵도 준비 중이다.
역사와 현대를 아우르는 삼례문화예술촌의 탄생은 그간 묻혀 있었던 과거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기회임과 동시에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삼례문화예술촌이 계획하는 마을문화 공동체 육성사업은 사람과 역사, 문화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럽의 다양한 재생공간이나 일본, 중국의 예처럼 삼례문화예술촌이 지속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장담대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기간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완주군으로부터 삼예미협동조합이 부여받은 2년의 기간 이후는 불투명한 삼례문화예술촌의 미래일 수 있을 테다. 완주군도 이를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2년동안의 시범운영을 통해 발전방향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또 관람료 유료화도 성패를 가늠할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례문화예술촌은 7월부터 각 박물관별로 별도의 관람료를 받기로 했다. 삼례문화예술촌 관계자는 타 지역에서도 성공한 우수한 콘텐츠로 유료화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삼례문화예술촌의 콘텐츠가 관람료를 지불할 만큼의 소구력이 있을지, 통합 입장료가 아닌 개별 박물관별 관람료 책정이 입주업체들의 상생에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지역성이 배재된 ‘이식된’ 공간의 구성도 도마 위에 오른다.영월책박물관이 그대로 이전했고 나머지 공간들도 기존의 공간들이 자리만 옮긴 것이어서 지역 작가들과의 잡음도 일고 있다. 결국 이 공간들이 삼례라는 지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문화적 독창성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완주군청 관계자는 “삼례문화예술촌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조례에 의해 3년 단위로 사업성과를 판단하고 민간위탁을 할 계획”이라며 “군비가 지원되는 만큼 2년의 시범운영기간동안 더 발전적인 모델을 찾아내 성공적인 안착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