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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 | [문화저널]
1994동학농민혁명백주년/우리 역사를 바로찾자 우리 그 '역사의 뜻'을 새기자
이철 국회의원(2003-09-15 09:27:24)
100년 전 고부들녘에서 솟아올랐던 함성이 역사의 깊고 푸른 강을 건너 다시금 우리에게 새로이 들려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발발 100년을 기리는 사업들이 곳곳에서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새삼스레 그때와 오늘을 비교하며 되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지난 일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지금의 상황을 짚어보고 앞날을 조심스럽게 예견해 보는 바로 그것을 우리는 ‘역사의 교훈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특히 가슴아픈 일들을 자꾸 들추어 재해석하고 음미하는 것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만 우리는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그것은 똑같은 실패와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지혜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앞둔 오늘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위태위태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아마도 그것은 같은 돌부리에 걸려 엎어지고 코가 깨지는 쓰라림을 또 당할 처지에 우리가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100년 전 조선말기 이 땅의 농민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생활에 허덕이고 있었다. 권력다툼에만 정신을 쏟고 있던 중앙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에다 지방관리들의 가렴주구가 보태져 들판에는 오직 한숨과 한탄만으로 가득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이에 더하여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방인들이 신기한 물건들을 들고 와 보란 듯이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농민들의 눈에 파란 불꽃이 일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배불리 먹고 싶다’는 소망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간 앉은 채로 죽일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혁명’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바로 그때를 새김질하고 곱씹어보는 데서 ‘녹두장군’과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농투산이 혁명군’의 족적을 기리는 사업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과 마땅히 줄이 닿아 있어야 한다.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등지고 있는 생소한 나라의 이름을 딴 국제경제협상으로 백년전의 위기감이 온 땅에 가득하다. 아무리 식생활이 달라지고 있다느니 하면서 떠들어도, 그래도 우리의 뼈와 살을 만들고 피를 돌게 하는 ‘쌀’을 비롯하여 농촌에서 꽃피고 열매맺는 거의 모든 농산물이 외국에서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온단다. 그렇지 않아도 천대받고 있는 ‘누렁소’도 이젠 키울 사람이 없어졌단다. 바야흐로 농촌과 농민은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단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고 큰소리로 물어 보아도 정부는 ‘걱정 마라’고만 한다. 오히려 다른 쪽에서 얻는 이득을 한웅큼 집어줄테니 잠자코 기다리라고도 한다. 무슨 무슨 ‘세(稅)’를 만들고 어떤 어떤 ‘투자(投資)’를 획기적으로 할 테니 좀 조용히 있으라고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게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일인가. 수십년 동안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업을 희생시켜 ‘성장해야 한다’만을 강조해온 결과가 지금 이렇게 드러났다. 제발 앞만 쳐다보지 말고 전후좌우를 한번씩 돌아보자고 그렇게 외쳤어도 흘려듣더니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자조와 체념의 수렁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말고 지금부터라도 눈을 부릅뜨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허황한 말 잔치로 끝내지 말고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백년전의 함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절절한 외침을 새겨들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더불어 행복하자고 일어섰던 선조들을 기리는 일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뚝 선 기념비와 큼지막한 전시관보다는 그 ‘역사의 뜻’을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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