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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인터뷰 [꿈꾸는 청춘]
반짝하고 빛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살아가는 일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 기자 문주현
임주아 기자(2013-07-03 22:33:46)

아침엔 직장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를 만나고, 점심 땐 농민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온다. 참소리에 들어온 뒤론 늘 있는 일상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생각한다. “이번 밀양 사태 때 누가 돌아가셨다는 속보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취재 때 되게 잘 알고 지내던 할머니였던 거에요. 정신적으로 충격이 너무 컸죠. 오보여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이 사회를 긍정해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네요.”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청년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사는 기자가 됐다.‘참소리’ 기자 문주현, 그를 만났다. 대학시절 참소리에 기고도 하고 영상도 찍어올렸던 그곳은 이제 그의 일터가 됐다. 전주시민영상미디어센터에서 2년 동안 영상 일을 배우고 나와 거처를 고민하던 중 기자들의 권유를 받았다. 워낙 참소리에 애정이 많던 그였지만 밖에서 본 것과 안에서 느낀 참소리는 전혀 달랐다. “지역 출입처에 등록할 수 있는 언론사가 아니다 보니까.” 이유를 묻자 한숨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도경찰청 홍보과에 몇 차례 보도자료를 요청 했었는데 계속 거부당했어요. 최소한 메일이라도 보내 달라고 찾아가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보도자료를 모두 기사화 하진 않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이 터졌을 땐 스스로 알긴 힘들다. 기자들이 브리핑 소식을 공유해주기도 하지만 매번 곤두서있지 않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그의 페이스북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것으로 난 전북도청, 전북도교육청, 전북도의회까지 출입을 거부당한 기록을 세웠다. 그랜드슬램인가.(…)” 댓글은 이랬다. “기자협회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할 만한 사안이지만, 아마도 소속사 아니라고 외면하겠지~” /“다음시대는 취재를 거부당한 기자가 갑이 될거야. 힘내.”

참소리의 질문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는 2002년부터 세월이 거슬러 올라간다. 부안핵폐기장과 새만금방조제로 뜨거웠던 전북, 주민 의사와 관계없이 일이 추진되고 투쟁과 싸움이 계속 이어지는 현장, 편파적인 보도가 넘쳐나는 언론에 문제의식을 느낀 문규현 신부와 전북지역사회 명망가들이 의지를 모아 참소리를 창간했다. 그 후 부안에 상주하며 핵 폐기장 문제를 발 빠르게 보도한 기자들은 현장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공유하고 담론을 생성한 사건의 유일한 전파자가됐다. 중앙언론에서도 참소리 보도와 소식을 인용해 기사를 썼고, 그사이 그들을 알아봐주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운영 문제로 고비도 있었지만 지난해 10주년을 맞으면서 그 노력과 의지가 헛된 일이 아님을 보여줬다. 전북 인터넷대안언론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참소리는수많은 이들의 소망과 바람으로 이루어졌다.그는 2년 가까이 버스 파업에 동행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를 만나왔다. 장기간 파업 때문에 생계도 가족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 무너진 사람들과 매일을 마주하고 이야기 듣는 일상은 그를 더간절하게 만들었다. 기사가 공론화되기 위해선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사를 깊숙이 파기 시작한건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난 후였어요. 그전에는 집회만 다니고 발언하는 분들 막 받아 적고 녹취하고 그렇게 기사를 썼죠.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집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부당함이 있었고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가더 궁금하잖아요. 당연히 기사 안에 그 물음이 포함돼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깨닫게 됐죠.”

현장을 비행하다
언젠간 르포 책을 내는 것이 바람이자 꿈이라는 그는 이창동 감독도 소설가였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글쓰는 문창과에 갔다 이곳까지 흘러왔다. 일본만 해도 몇대 문학 안에 손꼽을 정도로 자리잡은 ‘르포’지만 한국에서는 신문기사나 TV로만 인지하는 현실. 요즘은 소설가도 기자도 곧잘 르포 책을 내는 편이어서 예전만큼 개념이 없진 않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협소하다. 처음이 중간이 되고, 중간이 끝이 되고, 끝이 다시 시작으로 돌아오는, 삶은 돌고 도는 원이자 아무 것도 없는 제로라 그가 다시 시나리오를 잡을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말씀. 다만 흘러가는 구름을 잡아탄 그가 험난한 육지 위를 날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공이든 저공이든 못할 비행 어디 있으랴. 구름 닿는 고공농성도, 땅이 마르는 단식투쟁도 모두 그가 본 현장이고 삶이다.“덕분에 힘을 얻기도 해요. 최근 밀양 사건이 합의되고 40일간 공사 중지 됐는데, 그 소식 듣자마자 할머니들이 너무 기뻐하면서 바로논으로 달려가셨대요. 농번기철이잖아요. 힘을 얻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르신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는데 내가뭐라고 혼자 힘들어하면서 못해 못해 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쓴맛을 더 알아가는 세대. 안정을 누려보지 못한 세대. 불안과 불안정한 세대. 그는 20~30대 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때 공무원 시험도 생각해봤지만 처지를 외면하니 스트레스만 쌓이더라는 그는 내가 가진 조건을 인정하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고, 인정하면 표현할 수 있게 되고 표현하면 공감능력도 자연스레 높아진다고 말한다. 그가 인터뷰이에게 말을 잘붙이고, 진심을 다해 그들의 마음을 여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요즘 너무 인터넷만 하고 자기표현을 못하는 것 같아요. 더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그래야 조금이라도 변하겠죠.”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묻던 친구들도 이제는 “니가 그래도 제일 행복해보인다“ 말한다며 활짝 웃는다. 그렇게 그는 제 길로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이다.

꿈꾸는 사람들
“대안을 잘 생산해내지 못하더라도 매일 변하는 있는 사회를 보고 있잖아요. 언론인은 매일매일 꿈꾸며 사는 사람들 아닐까요. 그러니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지역 언론이란 공통점이있으니, 같이 힘냈으면 좋겠어요.”참소리는 8월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이름도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서 ‘전북독립언론 참소리’로 바꾼다. 이슈만 따라가기보다 참소리만의 기획을 만들어서 일간지나 다른 언론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는 그다.“참소리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요. 국가나 권력의 폭력에 대한 감시와견지하는 언론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고요.반짝하고 빛나는 것 보다 꾸준히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바닥에 들어섰으니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눈물만 봤는데, 이제 웃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어떤 선언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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