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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 | [문화비평]
강준만의 문화비평 구태의연한 '문민정부'의 문화정책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2003-09-15 09:30:52)
"세일즈가 95%다. 한국기업들은 물건은 잘 만드는지는 몰라도 팔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이 말은 한국기업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라고 한다. 나는 그러한 평가가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나'세일즈가 95%'라는 주장에 대해선 십분 공감한다. 대중매체에 있어서 세일즈는 유통 또는 배급을 의미한다. 대중매체 가운데 전자매체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배급의 능력이 가장 우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텔레비전은 수신기에 손가락만 갖다 대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얼마든지 쉽게 시청할 수 있다. 반면 다른 매체들은 배급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문의 위기는 곧 배급의 위기를 의미한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신문의 경우엔 '이전투구'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신문사들이 배급의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방법은 잘못됐지만 그만큼 세일즈의 중요성을 안다는 뜻이다. 반면 영화와 책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우리 영화인들과 출판인들은 좋은 영화 좋은 책을 만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될 수 있는 것처럼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영화와 책의 세일즈의 현장은 극장과 서점이다. 지난 수십년 간 영화와 책이라고 하는 매체 그 자체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르지만 극장과 서점은 한마디로 구태의연하다. 특히 지방에선 아직도 극장들이 좌석제도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서점은 아예 얼씬거리고 싶은 마음에 나지 않을 정도로 비좁고 부실하다. 영화업자나 출판업자가 알고 있는 세일즈란 오직 광고뿐이다. 물론 그들이 배급망까지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영화와 책이라고 하는 매체가 시장에서 당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올바른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도 오로지 '품질'만을 부르짖고 있으니 딱하다는 것이다. '유통혁명'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매년 '책의 해'나 '영화의 해'를 외쳐대도 그건 대답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정책이란 무엇일까? 바로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문화정책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구조적으로 문화 영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들을 바로 잡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정부가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전시효과의 용도로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증거는 무수히 많다. 지난 91년에 영화, 비디오, 음반시장이 개방된 이후 2년 8개월 간 미국 직배사들이 본사로 보낸 로열티 송금액이 1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니 '충격'이라고 느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르겠다. 우리경제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이젠 몇 천억원 정도는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문화체육부에 의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해 밝혀진 그 금액은 '직배사'들이 벌어들인 돈에 불과하다. 모든 외국 '대중문화 상품'이 우리 시장에서 벌어가는건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큰돈이 될 것이 틀림없다. 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코흘리개 어린아이들까지 빠져드는 일본 만화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방대한 규모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외국 대중문화를 단지 '문화'의 관점에서만 보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경제'라고 생각하면 나라 살림을 생각해 큰 걱정을 하다가도 '문화'라고 하면 관대해지는 경향이 농후하니 그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전 정부가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의 국내 공연을 불허했더니 사회일각에서나마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심지어 정부가 '문화쇄국주의'를 쓴다는 비판마저 제기됐다. 과연 그럴까? 단 한번 공연에 8억원의 출연료를 챙겨 가는 마이클 잭슨의 뒤엔 이미 국내에서 52억원을 벌어간 음반사 소니뮤직이 버티고 있는데도? 그러니 정부의 조치가 그런 깊은 배려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단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문화정책의 근본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중문화를 박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문화정책'은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먼 영역에 국한시켜 그것도 가시적인 효과만을 염두에 둔 지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부의 문화정책은 오늘의 문화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로 우리의 문화적 자존과 자립을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문화행위의 정치적 표현에 대한 규제는 다소 완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절대다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중문화 영역은 미국과 일본의 문화제국주의에 내맡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만 하더라도 한국영화를 살릴 수 있는 방안데 대한 안목과 비판이 전혀 없이 그저 청와대에서 『서편제』의 시사회를 갖는 것만으로 대중문화를 깔보지는 않는다는 상징조작 따위에나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 정부는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정책이라는 걸 갖고 있지 않다. '통제'만 있을 뿐 '지원'이 없다. 물론 문화체육부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문화체육부는 '신한국 문화창달 5개년 계획'이니 '문화 산업 자문단' 구성이니 무언가 그럴듯한 계획을 이미 여러건 발표했다. 문제는 문화체육부가 정부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있다. 문화정책이 경제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못한 채 문화예산이 그저 '비용'으로만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문화정책을 문화체육부만이 담당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그것도 경제부처의 눈총을 받아 가면서 말이다. 문화정책은 수도권정책에서 무역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문화정책은 그런 관계를 거부하거나 거부당한 채 기껏해야 무슨 무슨 건물을 짓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게 문화정책의 핵심이 되고 있는 판국이니 문화정책으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건 방송, 특히 텔레비전이다. 그러나 방송은 문화정책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왜? 방송은 공보처의 소관사항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문화시설과 기회가 서울에만 몰려있는 '서울공화국'체계를 개혁하지 않고 우리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 역시 문화정책과는 무관한 문제다. 왜? 길어야 5년인 단기적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정권에게 '서울공화국'체재를 해체할 뜻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을 다른 부분과 분리 시켜 문화만을 다룬다고 하는 미시적이고 파편 적인 시각으로 보는 한 문화정책은 기만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문화정책은 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 그 장단점을 따질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말해서 총론이 잘못 돼 있다. 현 정권의 문화에 대한 철학의 결여와 무지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현재 사회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종합 유선방송만 해도 그렇다. 지금 전국적으로 종합 유선방송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 및 단체들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이 실시되면 영상 소프트웨어의 수요는 폭증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제작시스템으론 도저히 공급이 수요를 따를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방방송사들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모든데 따로 논다는 뜻이다. 정권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사안일주의는 문화탄압 못지 않게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강준만/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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