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오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 필하모니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으로 커피숍이, 오른편으로 감상실이 있었다. 80년대만 해도 전주 최대의 번화가였던 경원동 홍지서림 골목, 그 바쁜 와중 애호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필하모니는 아마추어 클래식 감상모임 회원들의 광장이자 영화인들의 자체 상영관이었으며 전주에서 유일하게 음악 연주 실황을 볼 수 있는 무대이자 감상실이었다. 90년대 중반에 필하모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박지명(45·원음방송PD)씨는 “제과점에서 우동을 사먹고 1층이었던 헌책방에서 책을 읽다가 필하모니로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서 실은 클래식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다지 우아한 분위기는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입회원서가 진열대 한켠에 먼지를 둘러쓰고 웅크러져있고, 낡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은근했으며 운좋은 날엔 ‘입장료’없이도 좋은 공연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도들의연주발표회 무대를 흔쾌히 내 주고 시낭송을 위한 문학의 밤과 시화전을 계획하는가 하면 미술, 사진전을 포함한 각종 소규모 전시회와 예술연구강좌 등을 개설하는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앞선 복합문화공간이자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음악 프로그램 PD인 박지명씨는 필하모니에서 들었던 클래식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줬지만 사라져서 아쉽다거나 속상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 필하모니는 일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세상에 없는 공간을 기억하는 일은 무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필하모니는 그들의 ‘오늘’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의 기록, 삼양다방
50년 세월의 삼양다방이 문을 닫는 7월 2일 늦은 오후, 드문드문 앉은 몇 사람이 전부다. 그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염원하는듯한 모습을 읽었다면 과장된 일일까. 사실 마지막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많은 말줄임표가 생략돼 있는가. 삼양다방의 마지막 소식이 들리자 가장 발 빠른 것은 역시 기자들이었다.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유물을 캐러가는 안타까움으로 과거 이야기와 풍경은 덤처럼 얹어졌다. 삼양다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무엇이 옳은 건지 새삼 생각한다. 주인아주머니가 내준 원두커피를 홀짝이며 내 인생의 첫 다방이 삼양다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인생의 첫 커피를 여기서 마셨을 것이다. 지금은 오래된 기념물처럼 낡았지만 수십 년 전에는 가장 세련된 찻집이었고, 예술가들이 모여 전시회도 열던 문화공간이었다. 그때 인생의 첫 커피를 마셨던사람들이 초로의 노인이 되어 아직도 찾고 있는 곳 삼양다방. 삼양다방의 새 주인인 건물주 최인욱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삼양다방이 5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건물의 역사가 그렇지 내부는 20년도 되지 않았어요. 아직 이곳을 어떻게 채울지 생각중이지만 그대로 보존할 생각은 없습니다. 7월에 내부 공사를시작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선뵐 것 같네요. 주변에서 너무 걱정들 하셔서 저도 책임감이 큽니다.” 삼양다방은 내부집기를 모두 철거하고 새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주인 김춘자씨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마지막 날이란 소식을 듣고 찾아 온 사람들은 묵묵히 찾아왔다. 누구 안 보인다고 걱정하면 “요즘 편찮으시대요”하며 소식통이 되어준 삼양다방 주인, 그리고 수십 년 함께 해온 단골손님들. 나무가 잘리면 새도 사라지는 것처럼, 이제 그들의 동선은 삼양다방을 비껴갈 것이다. “막날이라서 촌시랍게 또 왔어. 많이 아쉬워.”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죽은 사람의 생애를 살펴보는 일과 같다. 언제 태어났고,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남겼고,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그랬다. 우리가 일하는 이곳도, 이야기 나누는 이 공간도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장소로 남아 있으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삼양다방처럼, 하나 둘씩 소식이 끊기던 단골손님처럼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