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 | [문화저널]
작품과 나
단편 쓰지 않은 원죄로부터의 해방
『개들은 어떻게 웃는가』
김병용 소설사(2003-09-15 09:39:36)
등단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발표한 작품도 그다지 많지 않은 소이로 「작품과 나」라는 이 코너는 도대체가 나에게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그 까닭은 우선 작품마다 작가인 내가 갖고 있는 애증의 폭과 깊이가 균정하지 못한 데 있다. 나이 탓이리라. 아직도 미움을 달랠만한 나이가 되지 못 했고, 사랑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하물며 '분신'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게 작품인데, 나의 감정이 고를 턱 없다. 원고마감 시간이 지났다는 '상투적인'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가까스로 생각해낸 게 결구 나를 골탕먹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나마 객관적인 모양새라도 갖출려니 별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내가 너무 쉽게 등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창작에 몸을 달궜으나, 나의 데뷔작인 「원장의 개」는 고작 두 편째 '습작'이었다. 혼자서 생각해둔 습작 기간동안의 모든 스케줄은 사실상 당선 통고가 있던 날까지 난 마치 연극배우가 대사 연습을 하듯. 미숙한 대화문 처리를 익히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다른 문인들도 그러했겠지만, 시상식이 끝난 후로는 당분간 흥분된 상태에서 쉽사리 나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빈자리들이 더욱 황량해 보이듯이, 어느 정도 나를 추스릴 즈음이 되자, 맨 먼저 든 생각은 '아이쿠! 야단났구나'하는 것이었다. 난 단편을 써보지 못한 채 등단한 덧이었다.
처음 습작기부터 건방지게(?) 중편을 붙들었던 것은 소설가 박태순 선생 때문이다. 군 시절, 외박을 나와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나를 두고'사기꾼 기질이 농후해 보이는데, 기와이면 크게 사기를 치는 게 좋겠다'는 격려(?)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내딴에는 내멋대로 해석하기는 그 당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던 중편소설의 가능성에 도전해 보라는 이야기인 성 싶었다. 더구나 중편소설로 등단하는 공인된 통로는 세 군데 밖에 없어 희소 가치가 돋보이기도 했다. 기왕이면 중후하게9?0 등단해 보자. 헛된 공명심 같은 것 때문에 나는 되나께나 중편소설에 매달려 일로 매진해왔던(?)것이다.
단편을 익히지 못한 죄과(?)는 금세 돌아왔다. 신인인지라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단편소설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배포 좋게 중편이면 안되냐고 반문했지만, 전화를 끊은 청탁자는 두 번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발표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단편소설 서너 개 들어갈 자리를 차지하는 분량을 신인에게 덜컥 내줄 문예지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시쳇말로 '기왕에 버린 몸' 나는 계속 중편을 고집했다.
물론 그렇게 단편을 기피하는 속사정이야 앞에서 얘기한 대로였다. 그 뒤로 「山行」을 비롯해 두어 편의 중편을 더 쓰고, 정말 어렵게 발표지면을 얻을 때쯤에는 나도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자승자박, 고집이 발목을 묶지 않느냐,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누구누구는 이번에는 어디에 무슨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더냐. 무슨 통뼈라고 중편만 고집하느냐, 사실은 절름발이 작가에 불과하지 않느냐....
후회가 날마다 뺨을 후려 갈렸으나, 여간 나는 단편에 손을 대지 못 했다. 게다가 한사코 단편을 기피하다보니 기피 증후는 어느새 막연한 공포심 같은 것으로 발전해 있었다.
'나는 단편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싸늘한 베갯머리에서 문득 잠이 깨는 새벽마다 나는 낑낑거리며 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내 안의 내가 하는 대답이란 고작 글쎄...!회의적인데다, 끝을 얼버무리는 정도.
그런 와중에 난 그럭저럭 장편을 하나 꾸려가고 있었다. 93년 초 「그들의 총」으로 발표된 것이 그 작품인데, 속전속결 몇 편의 중편을 수업 삼아 바로 장편에 뛰어든 무모함이 오죽하랴. 내 머리엔 때아닌 새치가 하얗게 내려앉고 있었다. 기세 좋게 처음 두장(章)은 긁어내렸으나, 그 뒤로는 영 펜이 앞으로 나갈 줄을 몰랐다.
난 문인들의 여행을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자들을 보면 때로 화가 치밀곤 한다. 말이 좋아 취재여행이고 구상 여행이지, 사실은 탈진한 상태에서 그저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릴 대로 흔들거리며 텅빈 머릿속을 채워줄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퀭한 눈만 번뜩이는 게 사실은 문인들이 떠나는 여행의 실상이다. 더구나 여행을 통해 머릿속을 채우기는커녕, 완전히 하얗게 비워 내가기 일쑤이고 운이 좋아도 허접쓰레기들만 잔뜩 머리통에 쑤셔 박고 돌아올 때가 허다하니 그 쓸쓸한 열망과 스스로 자신의 다리품을 헐렁하게 팔아버린 참담함이라니... 탈진한 상태에서 여행을 떠났던 나는 더욱 탈진해 돌아왔다. 그 무엇도 나의 쇠잔한 기를 북돋을 게 없는 듯 했고, 나는 절망과 불면에 시달리며 나날이 되지도 않는 원고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샘이 깊은 물」의 단편 청탁...지금 생각하면 순전히 오기였다. 내스스로에 대한 오기.... 완전한 구상이 다 된 상태의 이야기도 글로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네깐놈이 무슨 소설가냐. 다 된 밥도 퍼먹을 줄 모르는 녀석! 네가 소설가란 직함(?)을 이름 앞에 내걸려거든 이렇게 텅 빈 상태에서도 글을 만들 둘 알아야 한다. 더구나 너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단편!....
장편을 잠시 제쳐두고 난 단편에 매달렸다. 이를테면 정면돌파. 내가 장편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단편을 쓰지 못한 원죄(?)때문인 성 싶었다.
난 당시 어느 선배의 빈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제법 널찍한 그 집 거실에는 하루가 다르게 파지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단편을 쓰는 일은 그동안 피해 다니던 여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구애를 하는 것과 똑 같았다. 약 이십 여 일 간,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치욕이란 치욕은 모두 당해야만 했다. 장편을 쓰는 동안에 탈진했다고 여겼던 것도 순전히 엄살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견딜 수 없는 수모로부터 날마다 탈출을 꿈꾸었으니...어쩌랴! 마지못한 구애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환희롭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로 변해버린 것을..
난 그 여인에게 흠뻑 빠져 헤어날 줄 모르게 되었다. 어쩌면 난 그동안 그 여인이 너무 우물(尤物)이어서 내 여자가 되지 못할 거라고 지레 겁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그 여인과 내가 발가벗고 하나가 되는 그 날만을 소망하며 그녀 뒤꽁무니를 쫓아 다녔다.
미인들이란 늘 걸음이 재질 않던가, 잡았다 생각하는 순간에 그녀는 이미 몇 발자국 앞에서 땅에 코를 쳐박고 있는 나를 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며칠 간 그처럼 헛만 세우다 보니 제대로 쓰지도 못한 체 정력만 고갈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여인이 다닐법한 길목에 올가미를 놓아야겠다는 영특하고(?) 좀 야비한 꾀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 올가미는 영화관에 있는 이들로부터 빌려온 것이었는데, 어렵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몽타쥬 기법'이란 것이었다. 너무 헤성헤성한 올가미가 아닌가, 걱정스러웠지만 자고로 미인들이란 높은 콧대 때문에 무너지는 법 아니던가. 결국 난 그 날 밤 그녀를 안을 수 있었고, 그 날 밤 양측모두가 녹초가 되어버린 전투처럼 격렬했던 방사를 통해 결국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얻은 단편소설이 「개들은 어떻게 웃는가」란 작품이다. 이후로 장편도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올해 두 작품이 한 권의 책 속에 묶이게 된 사연은 이런 인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