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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 | 칼럼·시평 [문화시평]
만화의 과거를 보고 현재를 만나다
추억의 만화경 展 | 7월 27일~8월 25일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김은혜 자유기고가(2013-09-02 17:38:15)

전주에서 펼쳐진 만화의 세계
대량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 생산된 만화는 한국 근대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라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현대사 속에서 근대만화의 흔적을 찾고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원로 만화작가들의 추억과 행보, 이들에 대한 기록은 더없이 귀한 자료가 된다.
마침 지난 7월, 김성환, 박수동, 윤승운, 이정문, 권영섭, 박재동, 김수정, 이원복 등 한국의 대표적 원로 만화가들이 전주에 총출동했다. 이들의 전주나들이는 바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7월 27일부터 8월 25일까지 진행된 <추억의 만화경 展> 때문. 전시 작품은 1940년대 근대만화의 태동기부터 60~70년대, 부흥기인 80년대 90년대를 넘어 2013년 현재의 작품까지 총망라되었다.

전시 구성은 크게 5가지 테마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테마는 전시장으로 안내하는 만화 캐릭터 열전이고 두 번째 테마는 만화 장르의 특징으로 꼽히는 무한 상상력과 환상적 색채를 드러낸 일러스트레이션, 세 번째 테마는 만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전, 네 번째 테마는 원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다섯 번째 테마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로 진화 발전된 현대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혼재되어 흐르는 우리 만화의 역사는 첫 번째 테마인 캐릭터 열전에서부터 읽힌다.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1960년대),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1970년대), 토미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1980년대), 타지리 사토시의 포켓몬스터(1990년대) 등 일본캐릭터는 한국만화 캐릭터인 고바우 영감이나 주먹대장, 홍길동, 로봇 태권브이, 둘리, 하니, 영심이, 머털도사, 뽀로로 등과 함께 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꼽힌다. 전시장으로 가는 슬로프 공간에 걸린 이 캐릭터들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데, 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다양한 만화 세계의 스포일러 역할을 한다.

한눈에 꿰뚫는 만화의 역사와 현재
본격적인 만화전시회는 산전수전 겪으며 만화 시대를 풍성하게 일궈온 원로작가들의 환영 인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반대 벽면에는 미국 유학파인 레이디지랄, 앨리슨, 이영진이라는 현대 작가들의 몽환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전시됐다.
세대의 변화에 따라 만화의 역사를 태동기(1909-1945), 초창기(1945-1960), 성장기(1960년대), 발전기(70년대-80년대), 본격적인 만화시대(1990년대 이후)로 나누는데 세 번째 테마인 <추억의 만화경 展>은 이러한 만화발전사를 배경으로 신문만화에서부터 만화잡지, 단행본 시대 등을 일변한다. 2013년 3월 문화제로 등록된 <고바우영감>의 문화재 등록증도 만날 수 있는데 김성환의 <고바우영감>은 우리나라 최장수 연재 시사만화로 만화사를 연구함에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네 번째 테마에서는 ‘봉선이’의 권영섭, ‘고인돌’의 박수동, ‘둘리’의 김수정, ‘로봇찌빠’의 신문수, ‘심수통’의 이정문 등등 쟁쟁한 원로만화가들의 작품이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연대기적 아니라 원로 작가별 작품 활동 양상에 따라 다양한 연대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원화를 직접 볼 수도 있으며, 신비한 첫째문 시리즈로 유명한 김태곤의 경우에는 최근 제주에서 활동하며 그려낸 2008년 작 <오직하나뿐인 지구>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을 그린 오룡의 <소통합시다>나 고령화 사회를 반영한 <노인 만세>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테마에서는 이 시대 활발하게 활동하며 당대의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가군을 만날 수 있다. 귀농 만화가로 유명한 장진영의 경우 학교 무상급식을 정면으로 다룬 <안전한 밥상>이나 개방화시대 다국적 농산물의 범람을 꼬집은 <추석 수입산 차례상> 등의 작품이 걸렸다. 또 직장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려 샐러리맨 만화장르라는 지평을 새로 연 홍윤표 작가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과한 의욕이 부른 아쉬움
이처럼, 통시적으로 만화의 역사를 훑어가며 관록있는 작가들과 완성도 높은 최근작들을 한곳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전시회는 매우 드물다고 하겠다. 분명 의미 있는 기획전이라고 평가 받을 만 하다. 그러나 한 전시회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전시가 펼쳐진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를테면 도입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만화의 역사나 형태, 장르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텍스트 패널에서는 많은 오탈자와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이 있었다. 또 테마별로 구획된 작품들의 전시구성 기준이 헐겁다보니 <추억의 만화경 展>이라는 전시 제목만 보고, 그 옛날의 작품들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도 준다. 가장 아쉬운 것은 원로작가들과의 대화인데 오프닝 형식이 아니라 토크콘서트처럼, 주말이나 오후 시간대에 배치되어 많은 관객들과 재미있게 소통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 만화로 통하다
대중예술인 만화는 늘 시대와 싸워왔다고 볼 수 있다. TV방영이나 딱지본 등 아이들과 뒤엉켜 불법복제나 무단도용에도 치외법권적으로 달콤한 대우를 받아왔던 일본만화와 달리 한국만화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했다. 때로는 위로부터의 검열과 때로는 거미줄처럼 드리워진 대본소라는 유통 구조와 그리고 때로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는 세간의 인식과도 싸워야했다. 그러나 우리 만화는 꿋꿋하게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풍자를 그치지 않았으며, 매우 쉽게 작가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왔다. 통일, 성, 환경, 노년, 세계화 등 시대의 담론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으며 일러스트레이션, 웹툰 등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기 위해 늘 새로운 기법을 공부해 왔다. 그러니까 만화는 추억으로나 떠올리는 과거형이 아니라 앞으로도 무한 가능성의 미래를 꿈꾸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원로 만화가들의 작품활동 또한 그렇다. 이분들의 작품도 시대에 따라 진화하며 다양화하고 있다.
이제 만화의 효용성과 가치는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만화가나 만화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나 소통을 위한 기획도 일상화되길 바란다. 수도권이 아니라 변방의 지역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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