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 | [문화저널]
환경을 생각한다
-김환기의 환경이야기-
우리 스스로 물을 더럽히고 있다
수돗물 오염 2
김환기 전북대 토목공학과 교수(2003-09-15 09:40:59)
6공화국 시절 이야기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수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녹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시설 면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갖춰지고 관리되어 있는 청와대에의 수도꼭지에서도 녹물이 나온다면 일반 국민/시민들에게 공급되는 수돗물의 실상은 어떠할까? 궁금히 여긴 대통령이 전국의 상수도 실태를 점검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보고의 정확성을 위해 대통령은 해당 공무원 외에 전문가를 포함시키도록 조치를 취했다. 시도별로 해당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반이 편성되어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때 나도 대상 지역의 조사반장에 위촉되어 그 지역을 점검한 적이 있다.
우리 팀에 배정된 어떤 지역의 실태를 점검해 본 결과, 나는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모든 수질검사 사항은 이상이 없는데, 유독 염소 잔유량이 기준치의 백배 이상을 초과하고 있어 조사반을 긴장시켰다. 검사를 몇 번이고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상히 여겨 그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그것은 관리인의 무지에서 나온 소치였다. 조사반원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지역 상수도 담당 관리인은 염소(클로키 칼크)를 많이 넣으면 좋은 줄로 알고, 상수도 실태에 관한 조사가 나왔다고 하니까 조사반이 오기를 기다려 평소에는 사용하지도 않던 클로로 칼크를 대량 투입했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양이라 그대로 가정에 공급되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급히 수도공급을 중단토록 지시하고, 클로로 칼크를 다량 투입한 물을 퍼내어 폐기하도록 조치했다. 조사반의 검사결과에 의하면 그 지역의 상수원은 심층 지하수로서 수심이 지하 1백m 이상이었던 관계로 세균에 오염될 수 없기 때문에 구태여 염소소독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양질의 수였고, 상수도 시설도 잘 갖추어진 곳이었다. 그 당시 아무리 당국이 공정한 실태 파악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무지한 관리인이, 저지른 웃지 못할 사건 결과를 그대로 보고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수용가에 가서 염소가 함유되지 않은 수돗물을 받아 검사하여 허위 아닌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이 일이 지상에 보도되거나 행정기관에 알려지면 피차 곤욕을 치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에 의한 실수로 관리인이 문책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동정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신 나는 그 담당 관리인을 포함한 관련 공무원 모두에 대하여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교육으로 허위보고서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염소는 물 속의 세균을 살균하는 목적으로 첨가된다. 그리고 그것은 취수원의 세균을 없애는 한편 수돗물의 관로에서 발생하는 세균을 억제한다. 염소소독된 수돗물을 그대로 받아먹을 경우 수도꼭지까지 흘러 들어온 잔류 염소가 우리 몸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잔류염소(殘留鹽素) 자체는 극미량이기 때문에 직접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으나, 수돗물 속에 포함된 극미량의 유기물과 반응할 경우 THM이라는 발암성 물질을 생성한다는 실험결과가 보고되어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구미 국가에서는 염소 대신에 오존으로 상수도 물을 소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돗물을 정수 하는 과정에서 정수약품으로 황산반토 (黃酸礬土)를 사용한다. 정수후 황산반토 찌꺼기는 침전 혹은 모래 여과를 통해서 완전히 제거해야 되는데, 정수과정의 부실로 인하여 일부의 황산반토 찌꺼기가 가정의 수돗물에 섞이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황산반토 찌꺼기는 노인망상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인구가 만 명밖에 안 되는 스웨덴의 작은 도시 마을의 상수도 시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행정관서의 공무원이 직접 안내를 하는데 일반관광객에게 정수장의 시설을 일일이 살펴볼 수 있도록 소위 VIP코스를 만들어 놓고 설명하기를, 스웨덴에서는 이 마을이 수돗물이 가장 좋으니 이곳으로 이주하여 산다면 좋은 물 덕분에 장수할 수 있을 거라고 자랑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의 상수도 관리책임자는 상수도 전공 공학박사였으며 그 사람의 책상 위에는 "수돗물을 잘못 관리하는 것은 간접 살인 행위다"라는 글을 큼직하게 써 놓은 것을 보고 나는 크게 감동했다. 선진국의 많은 나라는 물을 끓이거나 정수를 하지 않아도 마시기에 적합하다. 취수원(取水原)에서 가정까지의 상수도 시설관리를 잘해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수원 아니 모든 수원의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상수도 시설 자체의 관리 문제는 부차적인 일이다. 우리가 깨끗한 물을 먹으려면 무엇보다 시급하고 꼭 해결해야 할 일은, 전국의 크고 작은 모든 상수원의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일이다. 상수원이 오염되고 썩은 상태라면 그 물은 아무리 정화를 하고 소독을 한다 해도 소용없다. '침 뱉은 샘 사흘도 안 가서 다시 찾는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다시는 안 먹을 것 같아 침을 뱉었지만 샘/물을 떠나서 살수는 없는 이상 인간들은 그 물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 폐수를 방류해 하천을 오염시킬 때는 그것이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곧바로 오염된 그 물이 자기 집 수도꼭지로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피처럼 물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산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숲을 파괴하는 행위가, 바로 우리가 마실 물을 해치는 행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은 산에서 난다'는 평범한 진리와 산이 좋아 산을 찾는다면서 산을 더럽히는 행위가 곧 자기가 하산해서 마실 물을 더럽히는 행위라도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얼마전 어느 시 공무원이 상수고 꼭지에서 지렁이가 나오는 이유를 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조사에 착수한 일이 있다. 평소 물이 잘 나오지 않는 고지대 주부가 수도꼭지에 비닐호스를 끼우고 물이 나올 때까지 지쳐 깜빡 잠든 사이 수압 때문에 수도꼭지에 꼽은 비닐호스가 제멋대로 춤을 추며 부근의 시궁창에 처박히게 되었고, 그 이후 수돗물이 끊기면서 부압(負壓)의 발생으로 시궁창 속에 있던 지렁이가 상수도 관으로 흘러오게 되었다. 수도관에서 지렁이가 나오게 된 원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고지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항상 물을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현재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기혼합식 수도꼭지와 프레스식 수도꼭지 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낡고 훼손된 상수도관의 교체로 누수율(漏水率)을 낮춰 효율적인 물 관리도 요구된다. 흔히 수도는 약38%가 무수율(無數率)로 간주되는데, 무수율의 대부분이 누수현상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만일 무수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하루에 20만 톤을 공급하는 도시(都市)에서는 약 8만 톤이 없어진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상수도의 관리는 아무리 철저를 기하여도 부족하다. 1848년 영국에서 5만4천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콜레라창궐 사건이 좋은 예이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 사건은 상수도 관리에 철저를 기했더라면 방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외국처럼 상수원현장을 공개하여 관광 견학코스로 만들만큼 상수원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하고, 수도관 시설도 혁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지표수 못지 않게 지하수 어염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환경처가 우리나라 도시/농촌지역과 공단지역 등 7백 74개 지점을 선정하여, 그곳의 지하 30m에서 채취한 지하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질개황 조사에 의하면 특정 유해물질 9종과 일반 유해물질 3종 등 총12항목의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 이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대부분의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그리고 생활용 지하수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질산성 질소(窒酸性窒素) , 트리클로르에틸렌(ethylene)등에 크게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전체 조사대상 지하수중 17.1%인 1백 32개 지점이 지하수 환경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르 에틸렌 등 특정 유해물질이 전체 조사지점 중 34개지점(4.4%)에서 기준치를 넘었고, 청색증을 일으키는 질산성 질소 등 일반 오염물질도 99개지점(12.8%)에서 혀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지역별로 질산성질소의 경우 광주시 서구 유덕동이 환경기준치(10ppm)를 4.7배를 넘어선
46.7ppm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충북 음성군 소이면 중등리가 46ppm, 전북 정읍군 이평면 오금리가 39.5ppm, 충북 제천시 고암동이 36.5ppm둥 22개 지점이 기준치를 20배 이상 넘어섰다.
수소이온 농도는 전남 목포시 용해동이 PH 5.6을 기록하는 등 10개 지점이 PH5.7이하의 산성을 기록했고, 트리클로르 에틸렌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이 기준치(0.03ppm)를 2배 이상 초과한 0.06ppm을 기록하는 등 4개 지점이 기준치를 훨씬 웃돌았다. 환경처는 지하수 환경기준을 초과한 지역을 대상으로 이 지역의 지하수를 마시는 물로 사용하지 말도록 보사부에 요청했고, 기준치 초과지역에 대한 특별점검을 각 지방 환경청과 시도에 긴급 지시했다 한다. 환경처는 지하수의 오염이 심각한 것은 공단지역 등의 폐수방류가 심각한 데 주된 원인이 있고, 농촌지역의 정화조 폐수와 축산 폐기물 및 하수도 등이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수도 관리소홀로 인한 오염이나 누수문제, 혹은 수돗물이 가정으로 송수되는 와중에서 발암성 물질이 생성될 위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지하수까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우리는 우리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부주의는 물론 물을 잘못 관리하는 누군가의 잘못에 의하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상수도 물 값을 내면서까지. 앞으로 마실 물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끝) -김환기 / 전북대 토목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