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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 | 특집 [연중기획]
어울림으로 변하는 마을 풍경
[공간] 서학동 예술마을
방재현 객원기자(2013-10-10 10:02:57)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서학동 예술마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마을 표지판을 사이로 두고 전주천, 남천교, 청양루, 기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학동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이 맑아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도심의 외곽이 되어 성장이 멈춰버린 이곳.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던예술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새로운 꿈이 꿈틀거리는 예술마을로 변하고있다.


공존 속에서 풍겨나는 이채로움
길을 따라 거닐며 바라보는 마을 풍경 속에는 다른 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채로움이 곳곳에서 품어 나온다. 새로 짓거나 다시 단장한 건물들이 오래되고 허름한 공간들과 거리낌 없이 어깨동무하고 있다. 세련되고 편리한 현대적 공간들과 예스러움을 한껏 담아내어 단아한 정취가 베어 나오는 한옥들의 어우러짐도 서학동예술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이다. 입구에서 사거리를 지나 처음 만나는 예술마을로서의 면모는 선재미술관이다. 자개기법의 ‘몽유화원도’로 잘 알려진 이희춘(50) 화백의 작업실이자 전시실인 이곳은 직선적이고 서구적인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반면, 내부는 무위자연의 이상세계를 다채로운 감수성으로 그려낸 작품들로 채워져 있어 곡선적인 동양의 미가 묻어 나온다. 미술관의 맞은편에는 오래된 선술집과 카페가 마주하고 있다. 발이 처져있는 선술집의 출입문 선팅이 반쯤 벗겨져 있고 차양이 드리워진 카페의 출입문과 창문들은 활짝 열려있다. 카페의 안에 들어서면 오래된 먼지가 쌓여 있었을 듯한 예상과는 달리, 현대적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발길을 옮겨 조금 더 나아가면, 예술마을의 발단이 된 이형로(49·음악가), 김저운(57·소설가) 부부가 살고 있는 ‘벼리채’가 보인다. 담 너머로 보이는 한옥의 정취가 고풍스럽다.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어우러진 마당을 둘러싼 한옥의 아늑함이 느껴진다. 마을의 촌장을 겸하고 있는 이형로는 “근 3년 사이 이주해온 예술인들만 20여 명이 되는데 서로 다른 분야 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모여 소통하고,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 하고 있다”며 “마을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서로 찾아 나누고 있다”고 전해 준다. 그의 집 건너에는쌀집이 자리 잡고 있다. 조그만 간판에 두껍게 빨간색으로 쓰인 ‘쌀’이라는 큰 글씨가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쌀집 주인은 마을의 통장을 지낸 이후 여전히 ‘통장’으로 불린다. 고희를 훌쩍 넘긴 그는 이곳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다. “예전에는 논과 밭으로 빙 둘러싸있었지, 학교가 세워지고 교회가 들어서며 한 참 번화한 마을이 됐었는데 그것도 몇 십 년 전부터는 하나둘 사람이 떠나는 곳이 되었지.” 최근 들어 마을 축제로 떠들썩했던 거리의 모습과 외부 인사들이 방문하게 된 예술마을의 달라진 풍경은 마을에 대한 그의 자랑거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사람 사는 풍경들
노인의 수다를 뒤로하고 길을 따라 거닐면,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오른 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백년의 수령은 족히 되어 보이는 버드나무이지만 지름에 비해 가지가 울창하지 못하다. 마을의 변천 과정 속에 길모퉁이에서 통행에 불편을 준 가지들이 수난을 당했나 보다. 반면, 여름날 강렬한 태양을 가려주며 마을의 쉼터가 되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애석하게도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오다가다 잠시 쉬어가기에는 주위 환경이 녹녹치 않게 변해버렸다. 오랫동안 마을사람들에게 쉴만한 공간을 마련해주었겠지만 개발에 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서학동예술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는 나란히 어깨 겯고 있는 ‘양순실 아뜨리에’와 커피숍 ‘모과나무’다. 창작과 생산, 휴식의 공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서학동예술마을의 특징 중 하나. 작품 활동에 매진하느라 당분간 마을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할 거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주인이다. 그 건너편으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단층 슬래브 건물에도 동네 이발소와 슈퍼가 쌍둥이처럼 들어서있다. 이 동네 터줏대감 격인 슈퍼는 과자며 음료, 아이스크림을 진열해 두던 예전의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문틈 사이로 주인과 손님이 나누는 대화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이발소도 옛 풍경 그대로다.
다시금 온 길을 되짚어 간다. ‘벼리채’ 맞은편에 한옥이 또 한 채 있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 안으로 쪽머리하고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설치미술가이자 공방 ‘초록장화’의 주인, 한숙이다. 짐 하나 등에 업고도 가벼운 손놀림을 하는 모양새가 정겨운 이웃을 보는 듯, 서학동예술마을의 정감이 느껴진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마실을 간 곳은 골목사이로 자리 잡은 ‘서학동사진관’. 몬드리안을 연상케 하는 대문 너머로 돌 마당과 그 틈새로 자라는 잔디가 푸른 늦여름을 더욱 싱그럽게 한다. 때마침, 노순택 사진전 ‘어부바’가 열리고 있는 전시관에는 ‘계남 정미소’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 김지연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시관 한쪽에 마련된 다실에서 그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전시를보는 것만큼이나 크다.
작든 크든 공간의 구분과 명명은 공간을 이용하고 머무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마음가짐과 움직임을 유발시킨다. 서학동예술마을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이제 막 시작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알알이 박혀 있는 보석과 같이, 서학동예술마을은 빛나는 공간을 찾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보석의 알갱이들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사람과 사람, 만남과 인연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늦은 아침, 팔짱을 끼고 나오는 젊은 부부를 만날 수도 있고, 베트남에서 온 신부와 가족들, 그 사이를 채워주는 예술가들의 흔적들. 현재 서학동 예술마을은 다양성의 조화, 다름의 어울림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 사이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공간들, 그리고 어떤 마을의 모습을 하지 상상하는 즐거움이 서학동예술마을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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