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인간의 관계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은 많다지만 중국의 속살까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영화는 꿈이며,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반면 지아장커는 소외된 곳, 변두리, 익숙하지 않는 것에서 가장 중국적인 것을 끄집어낸다. 동시에 이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2013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지아장커의 <천주정>은 그가 여전히 사람과 공간의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깊게 사유하고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올해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지아장커의 최근작을 보며 오히려 오래된 그의 근본을 떠올릴수 있었다. 공간과 인간의 끈끈한 관계를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을 고르라 하면 아무래도 초기작인 <스틸라이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중국 인민폐 10위안에도 그려질 정도로 아름다운 산수를 지닌 샨샤를 배경으로 진행되는<스틸 라이프>는 1993년부터 시작된 샨샤의 댐건설로 인해 사라져간 것들과 사라져갈 것들,그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산밍은 16년전 자신을 버리고 딸과 함께 떠난 아내를 찾기 위해 샨샤를 방문하지만 아내의 고향이 이미 댐건설로 인해 수몰되어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인물인 센홍 역시 2년간 소식이 끊어진 남편을 찾기 위해 샨샤에 머물지만변해버린 샨샤처럼 남편 역시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알게 되고 베이징으로 다시 떠나간다. 지아장커 감독은 리샤오동에 관한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동>을 찍기 위해 잠시 방문했던 샨샤에서 기괴한 풍경으로스러져가는 도시와 그곳에서 삶을 생산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본 후 <스틸 라이프>를 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비밀에 다가가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굳 이 극영화를 선택했다는 감독은 극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인물의 클로즈업과 같은 감정이입을 위한 전형적인 연출에서 오히려 손을 놓는다. 카메라는 거리를 유지한 채 한 폭의 정물화처럼 인물들을 담아내고 인물들 또한 어떠한 사건을 접하더라고 그에 걸맞은 -우리가 능히 그러리라 짐작하는, 혹은 기대하는- 리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연민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항변할 수 있는 모든가능성에 대한 영화이다. 감독이 스스로 밝힌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는 영화” 라는 소개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 치열한 투쟁이나 갈등이 드라마의 형태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고향이 물에 잠기고 폐건물 두드리는 망치 소리만이 도시를 가득 메워도 사람들은담담한 표정으로 각자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변화하는세상을 향해 함부로 분노나 슬픔의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 라이프>의 화면에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어딘지 모를 슬픔, 그리고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연민이 넘쳐난다.
한산밍은 배 위에서 종이를 지폐로 바꾸는싸구려 마술을 보여주고 돈을 갈취하는 깡패들을 만나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하루에도수십 차례 겪는 일을 다시 겪는 것 마냥 그의 반응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센홍 또한 남편의 부하로부터 남편의 불륜 사실을 들은 후에도 울부짖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그저 늦은 밤 선풍기 앞에서 피곤한 눈빛으로 어깨를 주무른다. 대개의 경우 극심한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는 다가오는 충격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우선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마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슬픔은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여유를 가진 다음에야 한 걸음 늦게 찾아온다. 그렇다면 미처 상황을 추스르기도 전에 계속해서 끊임없는 변화와 충격이 주어진다면 그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마음이 따라오는 것마저 기다려주지 않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자들의 표정이야말로 <스틸 라이프>가 보여주는 먹먹함이다. 따라가기조차 힘든 변화 직면했을 때 더 이상 과거의 것에 대한향수니 가치니 하는 구구절절한 웅변은 필요치않다. 변해버린 것은 회복되지 않고,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적응해야만 할 뿐임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2000년의 역사를 단 2년 만에 수장시켜버린 샨샤의 폐허 속에서조차 사람들은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그곳에는 그저 검게 그을린 노동자의 몸으로 대변되는 삶이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살아남음 그 자체가 하나의 반응이며 이야기 되는 것이다. 영화의 부제인 ‘담배, 술. 차, 사탕’은 이를 압축적으로 투영한 정물이다. 변하는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그것들이 있고 중국인들은 그것들만 있으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적응하고 생존하며 현재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있기에 변화는 더욱 기괴하고괴롭게 다가온다. 엔딩 장면의 철거중인 건물 사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외줄을 타는 남자의 모습은 뿌리를 잃어버린 삶에 대한 상징적 은유이자 샨샤 라는 도시의 풍경 그 자체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샨샤와 샨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던 영화는 이처럼 종종 상식을 벗어난 초현실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한산밍에서 센홍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순간 등장하는 UFO 장면이라든지 센홍이 남편의 부정을 확신한 밤 창가에서 날아가는 기이한 형태의 건물의로켓발사 장면은 이 영화를 진지하게 따라가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순식간에 과거를 묻고 그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뿌리마저 뽑은 채,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폐허 같은 도시와 이 장면 중 어떤 것이 더 비현실적인가. 지아장커는 인물을 통해 샨샤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환기시키고 역으로 배경을통해 인물의 감정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한산밍이 아내와 재회한 후어느 폐건물 창밖으로 갑자기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은 샨샤라는 도시의현실인 동시에 화면에 투사된 한산밍의 심정 그대로이다. 평온함을 가장한 일그러진 도시에서 인물의 숨겨진 감정은 UFO나 로켓발사처럼 우화적인 장면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덤덤한 얼굴과 샨샤의 아름다운 풍광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며 그럴수록 그들의 치열한 삶은 더욱 현실적이 된다. <스틸 라이프>는 극사실주의의외피를 쓴 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우화적으로 넘나들며 관객에게 샨샤의 비밀에 대해 고요하게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