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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역동적인 카메라가 포착해낸 인간의 가치
<그래비티>
김경태 영화평론가(2013-11-05 15:16:23)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 <그래비티>(2013)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칠드런 오브 맨>(2006) 이후 7년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는 우주에서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던 의료 공학 박사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러시아에서 폭파시킨 인공위성의 잔해를 피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고자 벌이는 사투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환상적인 카메라 워킹만으로도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장장 20여분 동안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과 움직임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완전한 환영
사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롱테이크 촬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전작인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이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10여분 간의 롱테이크로 촬영된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총알을 피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마치 실제 전투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준다. 커팅 되지 않고 길게 지속되는 장면은 관객에게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든다. 심지어 누군가의 몸에서 튀긴 피가 고스란히 카메라 렌즈에 얼룩을 남기며 카메라의 물질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카메라는 관객의 시선, 혹은 등장인물의 시선 뒤로 숨는 대신 자신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처럼 영화의 환영성을 보장해주는 연속편집을 위한 일련의 고전적인 기법들, 즉 쇼트/역쇼트와 액션/리액션 대신에 영화가 집념하는 것은 카메라의 역동성이다.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완전한 환영으로 경험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관객의 신체를 영화 속으로 불러들인다. 즉 관객의 손에 직접 카메라를 쥐어 준다.

카메라가 선택한 공간, 우주
바로 <그래비티>는 이러한 실험을 극단으로 밀고 간 작품이다. 아마도 감독이 우주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무중력 상태라는 이점을 활용해 카메라 워킹을 보다 역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주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고민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환상적인 움직임을 극한까지 보여주기 위해 중력이 없는 우주
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우주’가 아니라 ‘중력(Gravity)’ 인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초반. 카메라는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등장인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인다. 아울러 멀리 배경을 가득 메운지구의 아름다움에도 간간히 주목하며 카메라는 느린 호흡으로 우주를 담아낸다. 그러다 인공위성의 파편들이 돌진해 오는 긴박한 순간에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 파편의 충격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우주선에서 튕겨져 나간 스톤 박사를 멀찍이에서 지켜보다가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바짝 붙어 두려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그녀와 함께 회전한다. 그리고 곧바로 카메라는 그녀의 시점이 되어 빙글빙글 도는 우주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무한한 우주의 풍광에서부터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관객과 카메라가 친해지는 순간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렇게 카메라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을까? 왜 우주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카메라에 더 많은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을까? 그는 스크린과 객석을 철저하게 분리해주는 재현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서 관객과 카메라가 보다 밀접해지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카메라의 시선이 곧 관객의 시선이 되어 등장인물들에게 보다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주를 보여준다는 것을 핑계 삼아 실제로는 인간을 더 깊이 있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공간과 인물에 대한 카메라의 친밀성은 휴머니즘이라는 <그래비티>의 주제와 맞물린다. 앞서 언급한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주인공/관객이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아기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총알이 빗발치는 건물들 사이를 헤집고 나갔듯이, <그래비티>에서는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스톤 박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그녀의 꿈속에까지 나타나 생존 의지를 불태워준다. 사고로 딸을 잃고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그의 도움으로 삶의 가치를 찾는다.

진심을 포착하다
우주 안에 있기에 지구의 중력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사는 인간의 가치는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고 카메라는 그것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집중한다. 특히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지구로의 귀환을 단념한 채 우주선의 산소를 차단하는 장면을 보자. 그녀의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고 방울진 채 공중을 떠다닌다. 그 중 하나가 카메라 가까이에 다가오자 배경은 포커스 아웃되고 초점은 그 눈물방울에만 맞춰진다. 그 안에는 그녀의 상이 맺혀져 있다. 지구에서라면 당연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을 눈물이 무중력 상태이기에 스크린 한 가운데로 다가와 카메라에 또렷하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눈물에 새겨진 그녀의 진심에 대한 포착이기도 하다. 드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흘린 한 방울의 눈물에 집중하는 카메라의 의도는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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