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북문화계는 파란만장했다. 전주문화재단의 직원 공금횡령사건으로 잔인한 4월이 지나간 후, 5월 새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예년과 저울질하며 바라봤다. 지난해부터 미완의 과제로 남았던 국립무형유산원과 전통문화전당의 개관은 올해도 미뤄져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올해 새롭게 구성한 새만금상설공연을 시작으로 하반기 공연은 활기를 띄었다. 전주소리문화관에서 펼쳐진 마당창극 ‘천하맹인 눈을 뜬다’를 비롯해 전주, 익산, 남원, 임실, 고창에서 펼쳐진 한옥자원활용상설공연도 무사히 막을 내렸다. 하반기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시작으로 지역마다 열띤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올해 굵직한 사건 종심으로 전북문화계를 돌아봤다.
전주문화재단 공금횡령 사건
전주문화재단의 봄은 잔인했다. 지난 4월 9일 전주시는 전주문화재단 경영팀장 김모씨를 횡령혐의로 고발했다.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시는 자체 감사결과 김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재단 출연금과 이월금 총 4억40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주시 출연금 8억 중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어서 지역 사회를 아연케 했다. 전주시는 물론 재단 간부들까지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이번 횡령사건은 출연기관과 민간위탁시설의 1인 전담 회계업무 시스템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이다. 이와 관련,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가 전직 공무원들의 회전문식 인사라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라며 “전현직 간부들로 구성된 출연기관에 대한 전주시의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주시는 출연 위탁기관 자체 회계감수에 착수에 들어갔으며, 상임이사와 사무국장이 해임되고 유광찬 이사장이 사임했다. 전주문화재단 이사회는 횡령 손실을 메우기 올해 재단 출연금 사업 중 1개 사업을 취소하고 7개 사업 예산을 축소하기로 의결했다. 전 경영팀장의 공금횡령사건으로 불거진 이번 전주문화재단 사태는 상임이사와 사무국장의 해임 그리고 이사장의 사퇴로 일단락되는 듯한 분위기지만, 지역문화인들 사이에서 재단의 집행부뿐만 아니라 재단을 관리감독하는 시청의 간부들에게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지역문화예술계에서는 재단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상을 정립해야 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현재 전주시는 8월 이용숙 전 전주교대 총장을 재단 이사장으로 임명하고 10월 신임사무국장 최태주씨를 선임했다. 한편 경영팀장 김모씨는 11월 11일 2년 실형 구형을 받았다.
신규시설 우후죽순 개장
한스타일진흥원으로 건립됐던 ‘한국전통문화전당’과 아태문화유산전당으로 건립됐던 ‘국립무형유산원’이 운영주체와 콘텐츠문제로 오랜 기간 표류하다 내년 개관을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옛 전북도청 부지에 지상 5층 2개 동으로 315억 지방채를 포함 456억원이 들었고, 국립무형유산원은 동서학동 옛 산림환경연구소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국비 759억원을 들여 건립됐다.
객석 1000석이 넘는 대형 공공공연시설도 잇따라 들어선다. 지난 5월 1일에는 1200석 규모의 대극장과 450석 소극장을 갖춘 군산예술의전당이 개관했고, 익산에서는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1200석 규모의 익산예술의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군산예술의전당에 들어간 비용은 40억원 지방채를 포함해 총 810억원이 들었고, 익산예술의전당은 민간업체에 BTL방식으로 390억원을 포함해 456억원이 들어간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라 말하고 있다. 더 큰 규모의, 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또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시설의 성패는 많은 돈을 들인 건물의 완공이 아니라, 건립 이전의 철저한 준비와 이후의 운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협동조합 바람 불다
지난 2008년 전북의 문화예술단체 중 가장 먼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이음을 필두로 현재 우리 지역에서는 13개의 인증사회적기업과 6개의 예비사회적기업이 활동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에 의존해야하는 문화예술단체의 현실에서,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자립의 기반을 갖출 수 있는 사회적기업육성제도는 대안 중 하나로 여겨졌다. 전북의 문화예술단체의 사회적기업 전환은 2011년에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조업과 용역서비스에 맞춰진 현행 사회적기업 평가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사고파는 문화예술사회적기업에게는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지원이 끊긴 이후의 자립에 대해서도 아직 낙관할 수만은 없는 단계다. 그리하여 문화예술계에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책으로 떠올랐다.
일반협동조합의 경우 법인보다 설립절차가 간단하고, 1인에게 집중되는 기업보다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이 요구되는 문화예술계의 특성과도 잘 맞는다. 다중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창작자와 향유자의 거리를 좁히고, 장르간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창작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경제활동을 통해 자립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협동조합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지역 문화예술단체 중에서 ‘사이’ 가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는 지난해 11월 전주의 문화예술사회적기업 6곳이 모여 만든 문화예술협동조합. (사)꼭두(대표 심재균)와 문화포럼나니레(대표 김성훈), (사)공연문화발전소 명태(대표 최경성), (사)타악연희원 아퀴(대표 박종대), 전북예술문화원(대표 지은정), (유)가온교육(대표 양승훈)이 그들이다.
문화예술단체의 사회적기업 전환 또는 협동조합의 전환이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사회적기업이 모인 협동조합 ‘사이’에 눈길이 모아진다.
‘브랜드 공연’ 만들 수 있을까?
도내 곳곳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마당창극과 뮤지컬들이 풍성했다. 지난해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시작한 한옥자원을 활용한 야간상설공연은 국비 5억을 지원을 포함해 11억원의 예산으로 도내 5곳에서 공연이 진행됐다. 전주, 익산, 남원, 임실, 고창에 산재한 전통 한옥과 역사, 인물 등 우리 도만의 특색 있는 이야기를 결합해 기획한 공연으로 마당창극에서부터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로 매주 토요일 저녁을 수놓았다.
지난 5월 중순 시작해 연속 매진을 기록한 ‘천하맹인은’ 음식과 공연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고,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전주문화재단의 뜻대로 전주마당창극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급한 과제들도 많아 보인다. 운영수입이 제작비 대비 22.4%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제작비의 지원이 불투명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천하맹인’의 공연이 펼쳐진 소리문화관이 공연을 위한 무대가 아닌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주마당창극이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시설, 인력, 체계를 갖추기 위한 전주시, 전주문화재단 그리고 지역의 의견이 모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설공연추진단이 9월 5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리울예술창고에서 공연된 창작공연 ‘아리울쿡’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부족한 준비기간으로 완성도가 미흡했을 뿐 아니라 지역 특색을 살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추진단 측은 내년 공연 이전까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아리울쿡에 대한 아쉬움은 상설공연추진단이 함께 준비하고 있는 도브랜드공연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북도브랜드 ‘춘향’은 12월 20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28일까지 전북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총 8회에 걸쳐 시범운영된다. 연출은 전주 출신의 권호성 감독, 극작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인 김정숙 작가, 작곡은 양승환씨가 맡았다. 도내·외에서 선발한 35명의 예술인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작품은 ‘춘향전’의 근원설화 중 하나인 ‘박색설화’를 모티브로 한다.
그러나 ‘춘향’ 역시 준비기간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 지난 8월 제작진이 구성됐고 9월 초에 단원 오디션을 치렀으니 연습기간은 ‘아리울쿡’과 마찬가지로 3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브랜드공연다운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전북예술회관이 리모델링을 통해 상설공연장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브랜드공연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그 성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 전북도의 브랜드 공연 ‘춘향’이 막을 올리게 되면 브랜드 공연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질 것은 분명하다. “성공한 공연이 브랜드공연이 되는 것이지 브랜드공연을 성공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은 브랜드 공연을 준비하는 우리가 잘 생각봐야할 대목이다.
성장통 겪은 JIFF, 정체성 다시 불거진 소리축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큰 상처를 입었다. 프로그래머 해임과 집행위원장의 사직, 그리고 스태프들의 집단사직까지 이어지면서 조직위 내의 진통은 영화제 안팎의 우려를 샀다. 올해 신임 고석만 집행위원장과 새롭게 구성된 조직위의 최대 과제는 2012년의 아픔을 성장통 삼아 앞으로 더 튼튼하고 성숙해진 영화제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 중심에 영화제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는 두 사람도 있었다. 영화평론가이자 명지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약해온 이상용 프로그래머였다. 새로운 집행부의 첫 영화제였던 만큼 감시의 눈이 매서웠다. 새 집행부가 영화제 정체성을 흐리게 할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디지털 삼인삼색’ ‘숏!숏!숏!’의 인기는 물론이고 개막작 <폭스파이어>를 비롯해 월드시네마스케이프, 카프카특별전, 인도영화 특별전 상영작도 매진 행렬에 동참하며 영화제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직접 지적한 국제경쟁부문의 프로그램의 부실함이나 거리 이벤트의 예산 축소, 지역영화인들에 대한 홀대에 대한 불만들을 잠재우지는 못하며 내년 영화제의 과제를 남겼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김형석 박칼린 공동집행위원장의 3년 임기가 올해로 끝난다. 두 집행위원장은 취임 당시 국악의 대중화와 소리축제의 세계화를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서울을 근거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집행위원장은 한두 달에 한번 꼴로 전주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조직위 관계자들은 서울을 오가며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축제 준비에 필요한 빠른 의사결정이나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집행위원장을 상근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올해는 도에서 사실상 집행위원장 역할를 대신할 프로그래머를 인선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아리아리랑 소리소리랑’을 주제로 37개국 200여명의 뮤지션이 참여해 48개 프로그램, 270여회 공연이 관객들을 맞았다. 하지만 축제의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양한 볼거리에만 치중해 타 음악축제와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막공연 ‘아리아리랑 소리소리랑’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서양음악과 국악기의 조화를 잘 버무렸다는 평과 세계 여성보컬의 노래를 단순 나열식으로 풀어 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비난도 높았다.
사령탑이 바뀐 전주국제영화제와 바뀔 전주세계소리축제. 이미 호된 신고식을 치른 전주국제영화제의 내년 상차림이 기대된다면 매년 정체성 문제로 질책을 면하지 못하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에 어떤 인사가 오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