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 | [서평]
우리시대의 자화상
『지극히 작은 자 하나』
(1993. 도서출판 살림. 유서로)
이양재 전북대 불문과 교수(2003-09-15 09:48:50)
8.15 6.25 4.19 5.16 10.26 12.12 5.18「역사가 탱크처럼 청춘의 들판을 가로질러 가버린」 세대, 일회적인 삶 그것을 역사에 동원 당해야만 했던 세대. 그래서 인생을 누린다거나 즐길 줄 안다거나 하는 것이 미덕이기는커녕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임을 스스로 굳게 믿어왔던 세대. 문득 자신들의 삶의 역정이 뒤돌아보아질 때,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어느 나이의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씁쓰레한 상념 속에 자신들 세대의 자화상이 그려진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리라. 그리고 그 상념이란 것도 대개는, '풍요사회'의 제 1세대라는 소위 신세대가 보여주는 그들 삶의 행태들, 의상이며 음악 그리고 언어와 사고에 당황해하고 못마땅해하는 속에서도 우리 내심에는 질투라고 불러도 좋은 어떤 것이 꿈틀거릴 때, 아니면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 풍속도로 다가와 있는 자가용 출퇴근 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마이카' 운전대와 넥타이가 괜히 낯설어 보일 때, 바로 이러한 때에 불쑥 떠오르는 것이라면, 그 상념 속의 우리의 지난 청춘은 회한에 찬 것일 수밖에 없다. 그 회한은 사랑스런 손녀딸 사는 모습 보면서 무심코 흐리는 '너희는 좋겠다'는 할머니의 넋두리 속에 들어있는 쓸쓸한 회한이며 동시에, 넥타이를 매고 그리고 '마이카'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삶이라는 게 뭔가? 역사가 미쳐 날뛰면서 퍼부어대는 총탄의 앞길을 가슴으로 감히 받아내지 못한 대가로 혹은 공으로 따로 불려나가 은밀하게 받은 부끄럽고도 초라한 상이 아니던가? 라고 생각할 때의 회한이기도 하다. 소박하고 자연스런 삶에 대한 열망과 그 삶의 조건으로서의 역사의 무거움 사이에 찢겨져 회한마저도 이렇듯 이중적이 되어 있는 우리, 그러한 우리 앞에 내밀어져 있는 한 권의 소설이 대뜸 첫 마디에「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살아 남은 40대 문학 소년의 회고록」하면서 우리의 손을 잡아끌 때 우리에게는 벌써 예감이 오고 있다. (「살아남은」이라니! 이 가슴 철렁한 울림!) 「회고록]이 푸쉬킨의 과거처럼 그렇게 아련한 추억담은 결코 아닐 것이며, 『햄릿』의 아버지 유령의 현현이 그러했듯이 독살을 묵인하고 있는「살아남은」자들에게 들이미는 지불명령서일 것이며, 베드로야 너 어디 있었느냐는 예수의 뼈아픈 질책일 것이라는 그러한 예감이. 그렇다. 장편소설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면서도 2인칭 단수 「당신」을 화자로 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의 예감은 확신으로 변한다. 자신을「당신」이라 부르기로 했을 때 작가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짐작이 가는 바 있지만 - 이론 적으로- , 그것은 우리를 독자의 자리에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동반을 권유하는 아니 공범 관계를 솔직히 시인하라는 구충으로 읽힌다. 2인칭 화자 「당신」, 그리고 「당신」이 들려주려는 우리 시대의 비명, 그 사이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갇혀야 한다. 편안한 독자가 아니라, 작가가 내미는「심장 깊숙한 곳에 간직한 한 자루붓」을 작가와 나눠 쥔 채. 우리 역사가 두고두고 치욕스러워 해야 할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학살 정권 치하에서, 문학과 정의를 사랑하는 한 청년의 성장 아니 좌절의 기록인 이 소설에서 작가가 겨냥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을 독자에게 호소하려는 그의 피맺힌 간절함을 넉넉히 눈치챌 수 있었던 우리에게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만민운동><우호세력><이데올로기의 고향>으로 표현되고 있는 운동적 전망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거기에 넘어선 곳, 아니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2인칭 화자「당신」이 갖는 포섭력이 우리에게는 오금저린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의 독서 공간을 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픽션인 소설 속에 전혀 가공을 거치지 않는 역사가 성큼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당신'의 이야기 공간은「상상력과 초현실을 훨씬 앞질러버린」그 폭압의 역사를 우리 앞에 다시 보여줌으로써, 그때는 「어줍잖게 엉거주춤 정의로운 사람」 밖에 못되어서 그것을 부끄러워나마 했던 우리들이 오늘날 망각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을 꾸짖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젊은 영혼들이 역사에게 당했던 그 고통과 치욕을 다시 일깨워, 본질적으로 그때와 달라진 것이라곤 없는 오늘의 역사를 향해 눈을 치뜨게 해주었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당신」의 「회고록」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마련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해방이후,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 못되었기에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일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우리들 앞선 세대의 비극을 생각해 본다면, 「당신」이 우리 세대의 자화상을 그려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가장 어두운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견지하고 있는「당신」의 그 뚝심에 우리는 또한 감사한다. 당신이 내미는 아버지 유령의 지불 명령서를 우리는 어떻게 결제해야 할 것인가를 못내 마음 무거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