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전교조’라는 주제의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내심 난감하였다. 아마도 주변사람들이 나의 본명보다는 전교조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나보다는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하게 인지되도록 살아온 지난 20년이지만, 미미한 개인을감히 전교조에 견주어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지난 인생을 중간평가 내리기를 요구받은 듯 무게 넘치는 과업으로 다가왔다. 내 자신에게 잔인한 요구일 뿐더러,밤 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온갖 사건들을 원고지 12매 분량에 압축 정리하는 것은 세세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기 좋아하는 직업병(?)을 지닌 교사에게 생소한 숙제이기도 하다.전교조 조합원들은 모두 전교조의 거울로 비춰질 수 있기에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정작 나에게는 전교조가 나를 비추어보는 거울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척박한 땅, 서울의 강남, 지금은 타워팰리스라는 자본주의 욕망의 상징물이 기괴한 모습으로 들어 서 있는 그 곳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고서 목격하게 된 학교교육의 온갖 부조리는, 자본가의 배를 불려주는 머슴으로 사느니 다음 세대와 함께 세상을바꾸는 게 낫겠다며 월급도 많이 주는 꽤 괜찮은 회사에의 입사를 포기하고 박봉의 교단을 선택한 호기로운 결정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던 차였다. 어느 날 운동장 조회를 하는데1989년 해직되었다가 1994년 바로 그 날 복직한 전교조 해직교사 2명에 대한 공식적인소개도 없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교사들도 없어 보였다. “선생님들이 전교조 복직 교사이시죠?” 말을 걸었고, 그 두 분의 남다른 인간적인 미소에 끌려 교류하는 가운데 교육을 바로잡을 단서를 찾게 되었다. 스스로 전교조에 가입하자 무기력하고 자괴감에 빠지기 쉬웠던 개인으로서의 나는 같은 고민, 같은 입장, 같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지성’과 ‘집단실천’의 일부가 되어, 보다 고등화된 인간이라는 ‘조직화된 인간’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인간의 본질은 분절화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협력하는 인간‘들’임을 한자 책에 실린 ‘사람 人’ 자가 아닌 전교조 활동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도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리도 비난했던 학창시절의 폭력적이고 비굴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닮아갔을지 모르겠다. 스스로 상정한 이상적인 교사상에서 내 자신이 너무 멀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처음 만났던 두 분의 모습에 나를 비추어 보고, 전교조라는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면서 나의 매무새를 고쳤다. 동네 북 전교조라고, 바깥 사람들이 수시로 오물을 던져 얼룩이라도 지면 잘 닦아 내고 다시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오래 되어 녹이라도 슬면 스스로 벗겨내고 다시 보는 거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파시스트 정부가 창립 25년, 합법화 14년 만에 전교조란 거울을 아예 깨어버리려고 나선다. 설사 깨어진다 하더라도 조각조각 주워 붙여 다시 들여다 볼 것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낯익은, 그러나 반갑지는 않은 얼굴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는 학력고사 10문항 중 ‘3개’ 맞는 과목이어서 ‘세개사’라고 명명할 정도로 모두가싫어하는 과목이었는데 그 원인은 ‘세개사 선생님’에게 있었다. 프랑스 파리 대학인지 모기 대학인지 나왔다고 늘 자랑 늘어놓고 해사인지 공사인지 교관 출신이라며 학생들을 군대처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분이었는데, 잊지 못할 예를 들면 수업 중 찍 소리 낸 학생을못 찾아내자 찍 소리 난 구역의 학생 10여명을 물구나무 세워 놓고 누군가 자수할 때까지걷어차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나의 짝꿍이 벌떡 일어나 “제가 했습니다” 했다. “정말 너야?” “……” “너 아니지? 아닌데 왜 거짓말 해? 괄호 열고 계속 패고 쓰러지자 그만 패고괄호 닫고” 이번에 그 선생님이 뉴스에 난 걸 보고 그 친구에게 전화하자 그 친구는 기억나지 않는단다. 고등학교 때 공부 못해서 너무 많이 맞았기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단다. 시험문제지는 당시 손으로 쓴 것이 인쇄되었는데 그 선생님은 엄청난 악필이어서 문제를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답이 보일 리도 없다. 전두환 시대, 학생회가 아닌 ‘학도호구단’이 있었고, M1 소총 분해 결합과 총검술이 교련과목에서 평가되던 시절이라, 항의도 힘들었고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잊혀지지 않는 시험문제다. 수업 중 한 시간 내내 칠판에 꼬불꼬불 알아볼 수 없게 판서하셨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족보를 시험 문제지한 면 가득 그대로 그려 놓고는 수많은 괄호 안에 왕족들 이름을 써 넣는 주관식 문제가나오자 우리 모두는 절망하였다. 우리 교육이 이랬다. 그 늠름하신 선생님은 일찍이 학자로 변신했다. 언론에 따르면 최근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역사왜곡 교과서 논쟁의 한 복판에서 좌파 역사교육 척결론의 투사로서 화려하게 전투 임무를 수행 중이다. 사실 이런선생님들 때문에 교사가 되고 싶은 ‘오기’가 싹 텄던 것 같다.
전교조는 최소 수준에서 이런 교사가 되지는 말자고 나를, 우리를 설득했다. 나아가 모든 학생들을 차별하지 말고 개개인의 소중한 인권을 존중하자고 설득한다. 우리 아이들모두가 학교와 사회에서 인간성의 존엄함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지적 역량과 실천 역량을 발휘하자고 독려한다. 이러한 교육이 참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전교조라고 생각한다. 참교육 하고 있는 교사들의 집합이 아니라 참교육 하고 싶은 교사들의 모임이 전교조라고 하겠다. 따라서 전교조를 지켜내는 것은 이러한 교육이 옳다고생각하는 사람들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