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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 | [문화시평]
그 누가 승리를 운위할 수 있으리오! 극복이 전부인 바에야! '93 전북 연극 회고와 '94 연극 덕담
김길수 연극평론가, 순천대학교 교수(2003-09-15 09:51:49)
93년의 가장 활발했던 전북 연극, 그것은 창작극회의 전국 연극제 대상 수상이나 창작 소극장 연극제, <맹진사댁 경사>의 중국 북경 원정 공연, 그리고 엑스포 폐막 축하 공연이라는 외형적 현란함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93년 전북 연극의 특징은 가장 우리다운 몸짓 언어와 소리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연극적 실험이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이 같은 거대한 활동량들이 축적됨으로써 질의 변화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실험이란 이미 한물간 벌거벗은 사실주의 문법 탈피나 재래적 액자 기법의 이탈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연극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레파토리 항목이나 신선하고 창의적인 무대 문법의 등장을 통해 확인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미개척 분야나 다름없는 꼭두극의 영역이 칭작극회의 <꼭두꼭두>공연을 통해 새롭게 개발되었고 월북작가의 작품이라고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고목>이 전주시립극단에 의해 무대화되어졌으며 동학 일백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동학 혁명이 부분적이나마 보조 모티브로 작용하는 김우진의 표현주의 연극 <산돼지>(류경호 연출)가 공연되었던 것이다. 창무극<춘향전>은 춤과 소리가 무대의 중심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가장 연극적이고 가장 역동적이며 이를 통해 입체성과 조형성을 그 배경으로 삼는 공연 예술 작품으로서의 풍미를 일깨워 주었다는 데에 새로움을 더했던 것이다. 창작극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93전국연극제 대상 수상작 <꼭두꼭두>, 이 공연에서 산받이 역의 류장영과 여꼭두 역의 전춘근의 상호 앙상블은 완벽한 예술 작품 그 자체이다. 이들이 만들어간 꼭두놀이의 심미적 영역은 전라 지역의 질펀한 사투리와 구수한 뉘앙스를 통해 유감 없이 창출되어 졌던 것이다. 이 연극 공연의 특징은 이 지역 연극인 곽병창에 의해 직접 쓰여지고 연출된 창작극이라는 점이다. 곽병창, 그는 '만인보'의 기충민들의 건강하고 투박한 모습과 막각극에서 허구 투성이의 왕 역을 밀도 있게 소화해 낸 바있었다. 상소문 종이를 구겨 만든 골프공, 그가 휘두른 골프채는 중립병에 찌든 관객의 몰가치함을 동타하기 위해 냉소와 희롱의 무기로 둔갑한다. 비정상적인 왕의 형태는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모순을 직접간접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창작극회의 대표를 맡고있는 그로서 창작소극장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일단의 대 작전을 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뮤지컬<레미제라블>(곽병창 연출)공연이다. 필자에겐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지역 순회 공연 소식을 접했을 때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 앞섰다. 이 대작을 과연 어떻게 소화해냈을까? 그런데 창작극회와 전주시립극단을 이를 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작 환경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레미제라블 공연은 92년 말과 93년 초에 이르기까지 전북 순회공연을 통해 전북 연극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데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얼마후 또 다른 대작이 터져 나왔다. 브레히트의 대작<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이호중 연출) 공연이 전주의 4개 극단이 전주시립극단, 창작극회, 디딤예술단, 극단 황토 단원들이 총출동하고 하나로 합심하여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브레히트의 이 공연이 변증법 연극이나 서사극에 낯설어하는 한국 관객들의 정서나 기본 취향으로 인해 과연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인상적인 것은 무대 한쪽에서 세명의 해설자 겸 노랫꾼들 사이에 끼여있는 곽병창의 모습이다. 그는 우리의 정감과는 거리가 먼 이질적 노래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소화하여 유창하게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연극 제작자, 연극 연출가, 연극 배우, 노랫꾼으로서 자기의 삶을 철저하게 꾸려 나갔던 곽병창의 무대 작업은 급기야 또 다른 연극적 향기를 발하였으니 창작극 <꼭두꼭두>작업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작품을 직접 쓰고 무대화하기 위해 작품의 배경인 사할린까지 다녀오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덕택이었는지 창작극회의 <꼭두꼭두> 공연은 전국연극제 대상 수상, 연출상 수상, 천춘근의 연기상 수상 등을 통해 93 한국연극계를 강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곽병창은 고 박동화 선생의 두주먹을 '싸우지 맙시다'라는 타이틀로 고치고 이를 현대적 상황으로 각색하는 열정을 보였다. 연극론을 강의하는 세미나 장에서 혹은 연극학교 워크숍의 토론 과정에서 필자가 반드시 거론하면서 리포트를 써오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박병도가 연출하고 황토단원들이 만들어낸 <오장군의 발톱>(박조연 작),<태>(오태석 작),<사로잡힌 영혼>(이상현 작),<굴레쓴 사람들>(김승규작)등이다. 이 작품들은 한국 연극사에서 길이 남을 명작들이다. 이것들은 서울 등 기타 등지에서 올렸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탁월한 흡인력을 발휘하였으며 이 때문에 이 작품들이 던진 미적 파장은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연극학자들의 가슴까지 뭉클하게 하면서 그들의 온 사지 마저 뜨겁게 전율시켜 놓은 바 있다. 자기 내면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시적침참의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실과 초현실의 벽을 뚫고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접하였다는 느낌, 죽음의 사건과 그 비장미를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들, 이들이 던지는 역동성의 미학, 그리고 또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정태성의 미학으로 예술체험의 무궁무진한 영역을 일깨워 주었던 그가 도립국악원의 상임연출을 맡고 난 이후로 그 특유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한 작품이 나왔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창무극 <맹진사 댁 경사>의 북경 해외 공연과 엑스포 폐막 공연인<춘향전>(전북도립국악원 제작, 박병도 연출)이라 할 수 있다. 박병도는 국악 판에 몸담으면서도 연극판에 대한 열정은 결코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이끄는 연희단 백제후예의 창립공연인 <욕>(김상렬 작, 박병도 연출)공연은 상상력의 다채로움을 일깨우기 위한 연극 문법, 무엇보다도 가장 한국적이고 우리다운 정서에 부합하는 기호들을 개발해냈다는 점에서 일대 수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빛의 길, 음향의 길, 대각선을 이루는 하얀 천의 길이라는 무대 기호들은 굴종의 길, 자기 변명의 길, 죽음마저 뛰어 넘는 역사 속의 길을 상징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현실과 초현실의 교차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무대 배경으로 검정색 천들이 무대 천정으로 드리워져 있고 여기에 각양 각색의 탈들이 요소 요소에 자리하면서 비현실 영역의 인물 군상들을 상징적으로 일깨워 주는데 기여한다. 연극을 한편의 서정시라고 일컫는다면 그건 틀린 말일까?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딤예술단의 '19 그리고 80'(콜린 히긴스 작, 안상철 연출)공연, 이 공연에는 감미로운 분위기가 자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실존 회복을 위한 도도한 메시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안상철의 무대 형상화 방식 내지 무대 조율 능력 그리고 배우 정선옥의 진가를 확인시켜 준 이 공연에선 무소유, 생명 사상이라는 주제가 작품의 전면에 흐른다. 이 주제는 80세 모드부인(정선옥)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자연스러운 향기를 발한다. 박병도가 없는 황토, 어려움의 와중에서 대표를 맡은 이호중은 <그 입술에 파인 그늘>,<탁류>공연에 이어 <옛날옛적에 훠워이 훠이>(최인훈 작) 공연을 통해 황토의 저력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93창작 소극장 연극제 일환으로 공연된 <옛날 옛적에...>는 깔끔하게 완결된 무대 구성, 각 상황에 대한 언어와 음색의 강약과 완급의 조절, 더듬거림의 밀도, 침묵의 사이클을 통해 드러난 우리다운 정서와 상상의 설화세계, 이에 걸맞는 절제된 몸짓 언어와 신체 문법들, 비현실적 인물이나 초현실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그림자극적 처방 등을 선보임으로써 연극예술의 변용 가능성을 깨닫게 하였던 것이다. 황토는 자체 연습실을 확보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신더스>공연을 감행하는 열정을 보인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외형상 황토 이름으로 올려진 무대이지만 실제로는 디딤 식구들과 황토 식구들이 결합한 무대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호중은 극중영화 감독 역을 하고 있기에 안상철을 객원 연출로 영입하였던 것이다. 두극단이 상호 협동 체제를 이룬 점은 보기가 좋았지만 완전하게 작품의 심미성이 우러나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에는 연극 제작 환경상 불리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전북 에술회관 공연장 대관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연극은 무용장르나 음악 장르처럼 그 대관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 받고 있다. 행정 편의상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대 소품들을 제작하여 무대에 올리고 이를 배우들의 동선과 결합시켜 보고 여기에 조명 플랜을 짜 맞추어야 함은 상당한 시관과 인력 그리고 기타 부대 사항들이 복잡하게 뒤따라야 한다. 이런 작업은 최소한 만 24시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최근 전북 예술회관 공연 작품들이 조명이나 기타 무대 소품간의 앙상블이 맞아떨어지지 않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연극인들은 이 때문에 예술회관 행정 종사자들과 자주 부딪치게 되고 이로 인해 양질의 공연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주 차단되거나 점차 어려워져 간다. 애석한 일이라기 보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 예술 행정은 예술 창작, 양질의 예술 체험을 위해 있는 것이지 예술 행정가들의 편의를 위해 애쓴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연극을 위한 대관 절차는 다른 예술 장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융통성과 탄력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전주 시립극단을 본 궤도로 올려놓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현재의 상임연출을 맡고있는 정초왕을 들 수 있다. 그는 시립극단 체제를 정착시켜 놓았으며 투명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단원들을 관리해 나감으로써 전북연극의 발전에 주요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하였다. <까라부인의 무기>,<마라/사드>,<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만인보>,<고목>등은 그가 직접 연출하기도 하였고 총감독이라는 자격으로 뒤에서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들로서 다양하고 신선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시립극단의 작품들 중 도이치 연극이 많이 공연됨은 그가 독문학자였다는 외적인 이유일 수 있겠지만 새롭고 참신한 레파토리의 선정 과정은 중립병이라는 우리의 허구 의식을 깨뜨리고 성찰케하기 위한 의도이자 그의 가치관에 기인한다. 이들 작품들은 거의가 다 국내 초연이자 국내 첫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지대한 의미를 지니며 이는 전라 연극사 뿐만 아니라 한국 연극사에서도 길이 남을 업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연출한 <까라부인의 무기> 공연은 전주시립극단이 브레히트의 희곡을 자체 번역한 국내 초연 공연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만인보>공연은 고은의 시를 연극 대본의 기초 자료로 삼아 시립극단 단원 모두가 끙끙대며 만들어낸 일대 수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고금석이 객원 연출을 맡고 동시에 정초왕 교수가 드라마두르기로서의 이론적인 배경을 담당하였다. 여기에 심인택 교수가 이끄는 국악연주팀들이 가세하였으니 주제음과 효과음을 담당한 이들의 생음악은 객석과 무대 중간에서 가장 우리다운 정감과 유년기적의 끈끈한 체험을 회상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던 거이다. 아울러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로 인해 감히 올리기 어려웠던 함세덕의 작품<고목>이 전주시립극단의 상임연출 정초왕에 의해 무대화됨으로써 희비극 부재의 시대에 희비극 극작술의 방향이 무엇이고 이를 위한 배우술의 과제 역시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 바 있다. 순천에서 전주를 향하는 12시2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지만 굿보러 간다는 기분에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 체계 모두들 연극에 걸고 사는 연극인들을 대할 때 이 같은 기분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최소 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시립극단원들의 쥐꼬리만한 월급 체계, 자체 소극장이나 연습실 폐쇄 위기에 직면하였기에 공연은 제껴두고 연극 경영 마저 손을 대야하는 연극인들의 몸부림, 이 같은 황폐한 삶과 경영체계의 악조건임에도 공연 무대를 지키고 삶의 엑기스를 재창출하려는 이들의 의지는 대단하다. 94전북 연극의 향방은 이 같은 연극인들의 열정과 탐색 의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리한 연극 환경을 현재로선 크게 개선될 조짐이 없다. 단지 연극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 복제 매체와는 다른 살아 숨쉬는 행위예술로서의 연극, 현실 속에 안주하거나 현실 속에 침몰해 버리는 대다수의 삶과는 달리 거꾸로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고 비평하는 현장 예술로서의 연극, 일방 통행으로 일관한 복제 매체의 소모 형태와는 달리 쌍방 통행 내지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변증법 연극, 이런 연극의 심미성이 극장성과 공연성을 통해 힘을 발휘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건강해질 것이고 소통 부재로 허탈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소통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현재 극작가 부재의 전북 연극 실정에서 최솔과 곽병창의 극작 작업은 보다 첨예하고 치열한 극작 작업으로 담금질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연출가로서의 박병도의 상상 체계는 수많은 연극 병사들을 이끌어 들이는 포용력이 발휘된다면 더욱 날개를 치세우며 새 힘을 발휘할 것이다. 불리한 연극 외적인 변수들, 이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요인들은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자기 반성과 자기 극복의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누가 승리를 운위할 수 있으리오 극복이 전부인 바에야!" 릴케의 이 말은 푸념과 좌절로 일관한 무력한 그 동안의 행보에 대해 94년 새해 덕담이자 일종의 답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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