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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 | [문화저널]
옛말사랑 죽은 자식 눈 열어보기, 죽은 자식 고추 만져보기
김두경 서예가, 편집위원(2003-09-15 09:52:37)
우리 속담에 '죽은 자식 눈 열어보기'라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죽은 자식 고추 만져보기'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 말씀인지라 쉽게 생각하면 비슷한 속담이 둘이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의미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죽은 자식 눈 열어보기'라는 말은 단순히 죽은 자식 한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하는 소망과 안타까움에서 해보는 짓이라 말할 수 있고, '죽은 자식 고추 만져보기'는 죽은 자식 그 하나 말은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과 인연 지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가정과 인연의 끊김, 그로 인하여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하나의 끈이 단절됨을 의미하며, 중생의 본능적 욕구이며 어찌 보면 중생들에게는 삶의 중요한 의미인지도 모르는 식욕과 색욕의 단절에서 오는 아픔까지도 포함한 것이라고 말씀드린다면 너무 거창한 추상일지요? 요즈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아마 이러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잠잠했던 시위대의 모습을 얼마 전부터 심심치 않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쌀 수입개방 결사 반대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농민, 학생을 비롯 모든 국민이 울먹여 보지만 이미 죽어버린 자식 눈뜨고 일어날일 없듯이 이미 협상이 끝나버린 지금 삭발이건 혈서건 모두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옛 말씀에 천석꾼 하나에 열 고을이 가난하다는 말씀이 있듯이 한나라 한민족 서로 얼크러져 사는 이웃도 서로 베풀고 나누며 살기 쉽지가 않아 이런 말씀이 생겼는데 하물며 지구 저쪽 그놈들의 하는 짓이야 원망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병주고 약팔아 먹는 그놈들의 빤한 수작에 속것 보여준 우리가 안타까웁고, 속것 못 주어 안달하는 - 얼굴 생김새말고는 단군 자손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웁고 서러울 뿐이지요. 삭발 아니라 목숨을 끊으며 울부짖어도 이제는 되살릴 방법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죽은 자식 눈 열어 보는 현실이지 삼대 무매독신 외아들 주검 앞에서 고추 만져보며 통곡하는 그런 현실은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정신만 바짝 차리고 다시 일어선다면 오천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의 저력이 200년 남짓한 그들 앞에 허망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쌀시장 개방이 단순한 쌀값의 하락으로 인한 농민의 무너짐이나, 몇 년후 있을 식량 무기화가 우려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책 없이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농사짓는 것도 문화도 삶의 나머지인 까닭에 농사지으며 이루어 온 삶이 농사를 짓지 않고 삶으로써 허물어지는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단순한 쌀 그 자체는 언젠가는 과학이 발달하다보면 공장에서 대량생산 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도 거기에 따라 변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크고 작은 악기가 제 목소리를 철저히 내며 서로 조화할 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지 가장 크고 좋은 한 소리를 흉내내면 되지도 않거니와 그 음악은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됨을 알아야 되지 않을런지요. 힘없어 서러운 들판에 솜사탕 같은 눈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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