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쏟아질 때가 있다. 정영헌 감독은 이러한 감정들을 이해하려고도, 이해시키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레바논 감정’이라고 부르자고 말한다. 마치 <레바논 감정>은 동명의 시처럼 함축적인 영화였다. 최정례 시인의 시 ‘레바논 감정’의 마지막 구절처럼 영화 <레바논 감정> 관객과의 대화가 열리는 날도 종일 비가 내렸다.
“2010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서 가족 모두가 힘들어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정말 아무 일도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감정들을 단어들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마침 ‘레바논 감정’이란 시를 접했다.”고 정영헌 감독은 대답했다.
“<레바논 감정>은 그때 당시 내가 꼭 찍었어야만 했던 영화였다. 극 초반의 정서적인 부분이 돋보이는 장면들로 영화 전체를 끌어가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결과물은 스릴러나 장르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되어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레바논 감정>은 어머니를 잃은 외로운 남자와 쫓기는 여자, 여자를 쫓는 가죽남자,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도 단순하다. 실제 감독의 거주지이기도 했던 뒷산과 집, 차안, 저수지 이 네 곳이 고작 영화에 나오는 배경의 대부분이다.
정 감독은 “<레바논 감정>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20회차 정도로 빠르게 찍은 영화다. 꼭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의 느낌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을 찾기 위해 로케이션에 꽤 많은 시간을 들였고, ‘여우재 고개’라는 곳을 발견했다”고.
그는 “영화의 주요 배경인 설산을 비롯한 설원의 풍경들은 평창에서 주로 찍었다. 사실 영화에서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엄청 넓은 배추밭이었다. 밑에서는 썩은 배추들이 굴러다녀서 배우들과 스텝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날씨에 영화를 찍느라 고생했던 이들은 영화 <레바논 감정>이 그저 친한 스텝들과 배우들에 대한 영상기록 정도로 여겼다. 개봉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 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한국영화로는 무려 10년만에 제35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제32회 밴쿠버국제영화제, BFI 런던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영화 <레바논 감정>의 개봉 카피는 “당신을 찾아가는 낯선 위로”다. 정영헌 감독에게도 전주라는 곳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곳’이라고. “영화를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마다 뜻하지 않게 상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2010년, 2013년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받았다. 그래서 ‘전주’라는 지역에서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지 달려올 것”이라고. 정영헌 감독은 올해 가을쯤 새로운 영화 촬영에 들어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