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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 | [문화칼럼]
다시 서편제를 생각한다
이재호 KBS 보도본부 기자(2003-09-15 10:01:57)
-그 화려한 선풍- '서편제, 그거 중국영화 아닙니까?' 지난 초여름 영화 서편제가 화제에 오를 때면 간간이 들을 수 있던 말이다. '아직도 서편제를 못 보셨나요?' 지난 가을에 유수의 중앙일간지는 한 기획기사의 제목을 그렇게 뽑았다. 그 후 그 질문은 '비디오 테잎은 언제쯤 나옵니까'로 이어졌다. 서편제 선풍은 그처럼 경이로운 저력으로 지난해의 우리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금은 모두들 수긍하는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서편제를 빼놓고서는 '93년의 한국문화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는 70년의 방화사상 최대관객을 모아 몇 달씩이나 기록경신 행진을 계속했고 14년 전에 출과됐던 원작소설은 뒤늦게 장기 베스트셀러 1위로 우뚝 섰다. 영화주제음반도 판매고 30만장으로 사상초유의 개가를 올렸는가 하면 새해 들어 출시된 비디오 테잎은 예약주문량이 6만개에 이르러 역시 이변의 긴 행렬에 동행했다. 문화사업보다는 흥행사업적으로 더 자주 폄하되기는 하지만 어떻든 이 땅의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 한 영화사는 경제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외에서 상복도 줄줄이 터졌고 그 여주인공은 현대판 콩쥐(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과 그것은 「우리 것 찾기」라는 서편제 증후군으로 폭넓게 번져 나갔다. -문화가 사건인가-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열기가 시작한지도 한참이 지났다. 우리가 언제나 그랬듯이 서편제가 불러일으킨 찬탄과 경악도 또 금새 잊혀지고 말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폐놀오염사고」가 3년 만에 다시 터져 법석을 떨 듯이 우리 풍토는 기특할 만큼 문화현상조차 사건적(事件的)으로 파악하니 말이다. 우리는 이제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적어도 문화는 사건이 아님을 선언하자. 예술행위가 더러 사건을 만들기는 하지만 예술 그 자체는 인간과 더불어 자생하고 성숙할 뿐이다. 문화현상은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돌출하는 「변고」가 아니다. 그것은 서편제 하나만을 살펴보아도 자명하다. 작가 이청준이 서편제를 「남도사랑」연작으로 처음 발표한 것은 무려 17년 전이다. 장흥에서 남도가락을 들으며 자란 그는 지금도 판소리를 늘 곁에 두고 그런 글을 쓴다. 역시 남도에서 자라난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를 읽은 이후 10여년 내내 그 영화화를 꿈꾸며 배역을 찾아온 꽉 막힌(?)사람이었다. 김명곤은 명문대 출신으로 보장받은 평안을 물리치고 뒤늦게 소리꾼으로 전업했고, 오정해는 목포에서 국민학생 때 소리를 시작해 전국국악경연에서 장원까지 따낸 천상 「토종」이다. 여기에 현대 국악작곡에 10여년을 매달리고 있는 「인기가수」김수철과 「걸어다니는 영사기」라고 불러야 좋을 촬영감독 정일성, 그리고 충무로의 대담한 승부사 이태원. 아, 우선 이들의 결합은 화려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의 단단한 엉킴에는 세속적인 쾌락과는 바꿀 수 없는 판소리 진양조의 끈끈한 가락이 짙게 베어 있다. 그들의 외롭고 쓰린 역정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판소리의 자취와 너무 닮았다. -서편제가 남긴 것- 서편제를 만든 고집이 장인들이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이었다면 250만의 영화관객은 유적답사단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딱딱한 내용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서편제 이전부터 작자도 놀랄 만큼 화제를 모았고 국악교습소는 운전면허시험장을 뒤쫓기나 하듯 성시로 치달렸다. 이 소책자 「문화저널」의 「백제기행」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리라 본다. 어느새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에 목말라 했던 것이다. 이청준은 이를 「고향을 떠난 자의 아픔」이라고 규정했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공인 받은 서편제의 작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 것에 가장 뜨겁게 공감하고 아낌없이 환호한 셈이다. 정작 영화제작진은 해외영화제만 겨냥했을 뿐 국내 흥행은 아예 기대하지 않았었다며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국악작곡가를 겸하게 된 음악교수는 자신의 독일유학시절에 그쪽 음악인들이 한국음악을 들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민요 한 가락도 소개할 지식이 없어 무안을 당한 채 중도 귀국했다는 일화를 자리에서 털어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것은 모르는 채 남의 것만을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문화적 자존심을 버린 국민은 정신적 식민(植民)과 다르지 않다는 일제 강점기의 교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초중고 음악교과서에서 국악과정은 15%가 채 되지 않고 국악을 전공한 음악교사는 10%미만인 현실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모두들 솔직하게 부끄러워 할 줄 알자. 지구상에 하나뿐인 음악 장르-판소리를 우리는 어떻게 대접했는가. 동편제와 숱한 명창과 동리 신재효를 낳은 이 땅에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양육했는가. 소리의 맥은 다만 가족에게까지 천대받던 광대들이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이어왔을 따름이다. 서편제 증후군은 아직 과거사가 아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다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논리는 5공에 부채를 진 정치권의 수사(修辭)로 그쳐야 할 것이다. 「서편제」는 과거사도 아니고 일과성 회오리도 정녕 아니고 현재진행형의 유장한 가락임이 분명하다. 그런 우리 것을 모두 버리고 언필칭 개방화 국제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문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난민들처럼 다만 받기만 할 수야 없을 것이 아닌가. 세계는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와 있는 것을. 판소리 연구의 대가 강한영은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판소리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믄 헐 수가 없어......" 대가의 속단인지 원로의 망발이었는지는 이제 후학들이 할 과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서편제는 이미 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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