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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 | 특집 [저널의 눈]
전주 한옥마을, '슬로시티' 맞나요?
(2014-06-02 17:36:34)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지난 2010년 전주한옥마을을 최초의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지정했다. 전주한옥마을의 슬로시티로 인증은 조선왕조 520년의 발상지며,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전주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전주한옥마을은 ‘슬로시티’라는 이름을 내걸고 홍보와 관광마케팅을 벌였고, 미슐랭 가이드북에서도 추천하는 명실상부한 관광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한옥마을 관광객 증가로 무분별하게 상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한옥마을 일대 교통체증 문제는 ‘슬로시티’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에 걸쳐 있는 한옥마을에는 한옥 543채와 일반가옥 165채가 모여 주거공간으로써 자리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원주민의 주거지역으로 박제화 된 타 지역의 한옥마을과 성격부터가 달랐다. 애당초 전주한옥마을은 민속촌처럼 꾸며진 공간이 아니었기때문에 실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상업화 물결에, 관광객들이 소란스러움에 원주민들은 하나둘 한옥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한옥 숙박체험을 위한 민박 또는 게스트하우스로 채워졌고, 마을 공동체는 파괴됐다.  

전주시에 따르면 한옥마을 내 상업시설은 공예공방 70곳, 숙박시설 68곳, 음식점 55곳, 커피숍 28곳, 전통찻집 17곳 등 총 305곳으로,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될 당시 상업시설이 100여 곳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었다. 한옥마을의 초입인 태조로에 들어서면 프랜차이즈 빵집과 기념품 가게들이 제일 먼저 관광객을 맞이하고, 은행로를 거닐다 보면 국적불명의 지팡이 아이스크림과 꼬치구이, 초코파이를 사기 위한 줄이 늘어져있다. 이런 경관들이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을 대표할 수 있을까. 

슬로시티의 상징물은 마을을 이고 가는 달팽이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며,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만족만을 쫓는 게 아니라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 느림의 철학이다. 슬로시티 한옥마을을 숫자놀음에 빠진 관광지가 아닌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싶은 마을로 바꿔야 한다. 한옥마을의 상업화가 지금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오는 2015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재지정을 받아 ‘슬로시티’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문화저널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는 전주, 그중에서도 한옥마을이 무엇을 찾아야 할지 짚어봤다. 


상업화에 잠긴 전주한옥마을, 다시 ‘느림의 미학’으로

이정덕 전북대 문화인류학 교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선언문은 “시간의 의미를 되찾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장. 마당, 극장, 공방, 다방, 식당 영혼이 깃든 풍요로운 장소들, 이곳에 온화한 풍경과 숙련된 장인들이 사는 고장, 자비로운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 향토음식의 맛과 영양, 의식의 자발성을 존경하고 여전히 느림을 알며 전통을 존경하는 고장...”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선언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보고, 물질적인 풍요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삶의 여유와 품위와 깊이를 지키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시의 파올로 사투루니니 시장은 일관된 자연친화 정책과 끈질긴 노력으로 작은 도시들이 대도시를 닮지 않고 느린 속도로 자연을 이해하고 전통을 따르더라도 더 가치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의 문화를 즐기고 지역에서 나온 농산물로 포도주와 음식을 만들어 먹는 느린 삶의 전통을 강조하자 오히려 방문객이 늘고 지역 전통상품의 판매가 증가하였다. 보통 5만명 이하의 작은 도시나 농촌이 지정받을 수 있지만, 전주는 한옥마을로 한정하고 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한옥, 판소리, 한식, 공예, 체험 등 전통적인 삶과 전통문화를 강조해 슬로시티로 지정받았다.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슬로시티로서의 느낌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옥에서 자고 한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전통문화를 체험하거나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느림의 상징으로 방문객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식이나 막걸리나 전통문화는 대표적인 느림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걸어 다닐 수 있는 한옥마을의 여러 길, 그리고 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전통건물들이나 공예품점이나 물길과 정원도 전통과 어우러진 느린 걸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곳곳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도 찬찬히 장소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의 미학으로 소비된다. 찻집이나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도 느림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비해 1년에 500만 명이나 방문하는 대규모의 인파로 또한 이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상업화로 전주한옥마을이 슬로시티의 미학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방문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불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주 한옥마을이 단순한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싸구려 기념품과 정성이 없는 조미료 친 음식들이 많다. 너무 상업화되어 전통을 음미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많아서 줄만 서다가 음식 몇 가지 먹고 돌아오게 된다. 사람과 차들이 많아 걷는 것을 즐기기가 어렵다. 볼만한 한옥이 많지 않다. 새로 만든 한옥들만 많다.

전주 한옥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슬로시티들도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각종 상업시설과 편의시설의 증가로 자연과 함께 하는 느림의 미학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빠름의 미학이 관철되고 있다. 전남 신안 증도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재인증을 보류당한 적이 있고, 전남 장흥군은 슬로시티를 내세워 관광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가 재인증 과정에서 탈락했다. 슬로시티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느림의 미학을 유지하지 않으면 탈락하게 되어 있다. 

전주 한옥마을도 느림의 미학이 제대로 담보되지 못하면 지나친 상업화와 관광화로 재인증 과정에서 쉽게 탈락할 수 있는 곳이다. 어느 방향으로 한옥마을을 발전시킬 것인가를 정확하게 정하기 위해 먼저 상업화와 관광화를 절제하면서 슬로시티의 인증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예술, 전통공예, 한식, 체험 등 농경시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슬로시티의 기본철학인 농경시대의 자연과의 조화를 유지하고 직접 손으로 만들고 발로 걸어 다니는 느림의 미학을 되살리는 것이 한옥마을의 가치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슬로시티를 유지하는 것이 한옥마을에 유리하다.

슬로시티 가치를 지키고 명칭을 유지해야 한옥마을이 장기간 가치 있는 장소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옥마을의 개발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특히 한옥마을 내의 상업화를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 이미 지나치게 상업화되었으므로 한옥마을 지역만큼은 상업화 되는 것을 차단하고 음식이나 공예품도 지역의 재료로 손으로 만들고 지역의 문화를 발로 걸어 다니며,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업화는 한옥마을 바깥 지역으로 유도하고, 한옥마을은 상업공간보다 전통문화공간으로 철저히 유지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한옥마을을 불편하고 느린 공간으로 유지하는 것이 전통문화의 가치와 느낌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옥마을 자체가 인사동처럼 상업화가 되면 전통문화로서의 가치와 느낌도 사라지고 한옥마을로서의 가치도 사라져 결국 전통문화관광지로서의 가치도 사라질 것이다. 현재 너무 빠르게 주민이 감소하고 주택이 상가로 변하고 있다. 

음식점이나 찻집도 각자 지역의 재료로 손으로 만들어 각 집마다의 풍취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계속 가치를 유지하기에 좋다. 업종제한을 통해 커피하우스나 길거리 스타일 음식 판매점은 더 늘어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음식재료와 조리방법에 있어서 지역적 연계나 적은 곳은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 숙박시설이나 게스트 하우스도 불편하더라도 온돌을 유지하고 숙박시설의 음식이나 인테리어나 정원도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 이야기와 미학이 숙박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식 숙박시설은 한옥마을 바깥에 두면 된다. 체험을 위한 각종 문화프로그램들이나, 걷고 듣는 전통문화와 이야기도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여야 한다. 견훤산성, 치명자산, 남고산성 등의 이야기와 길이 더욱 적극적으로 한옥마을과 연계되어 역사와 전통 속에서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직접 만들어 파는 공예점이 증가해야 하고, 외부의 것을 사서 파는 공예점은 가능하면 한옥마을 외부로 빼는 것이 좋다. 관광객의 편의만 쫓아가게 되면 오히려 관광객이 싫증을 내게 된다. 

한옥마을에서 주민이 감소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해서 주민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계속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사 나가게 되면 전통을 살리는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업화를 막고 전통을 살리는 슬로시티 전주가 명품전통문화도시로서의 가치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만들자던 초심으로 돌아가자 

문두현 지역관광마케팅연구소 소장


참 난감하다. 

500만 명이라는 다소 과장된 방문객 숫자가 입을 막아버렸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전주에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온 적이 있느냐며 이제야 비로소 전주가 그 가치를 발하기 시작하는데 또 발목을 잡으려 한다며 초치지 말라는 일부의 싸늘한 시선에 묻혀 말문을 닫아버렸다.  

거슬러 올라가 14년 전, 2002년 한일피파월드컵 개최도시로 선정되면서 시작된 전주한옥마을 조성사업이 지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이렇게 까지 각광받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주택을 소유한 상당수의 주민들이 전주시에 매수청구를 할 정도로 관광지로서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전주시의 초기 개발 방향도 사실 지금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전통문화의 향기가 진하게 베어나는 가장 한국적인 체험관광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경관이나 공공시설 못지않게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이어갈 사람중심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전통문화의 보존과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끈 자매도시인 일본 가나자와시를 비롯하여 성공적인 도시들을 벤치마킹하는 등 많은 노력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인사동이나 홍대 앞 도로를 연상케 하는 전주한옥마을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난 2002피파한일월드컵은 슬럼화 된 전주한옥마을에 새로운 변화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오래 전부터 전주는 문화예술의 고장, 맛의 고장으로 널리 회자 되어왔다. 그러나 급변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도 전주는 더디기만 했다. 지켜내려는 자존심이었을까?  

2000년 어느 날 천년도시 전주는 깊은 잠에서 깬 듯 뿌연 안개 속을 헤집고 비상의 날개 짓을 시작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말없이 천년의 꿈을 간직한 채 묵묵히 제자리에서 세월을 지켜보았던 도시에서 이제 그 무거운 허물을 벗고 하늘을 향해 날개 짓을 시작한 것이다. 

전주는 한국의 맛과 멋이 보존되어 전승되어온 도시다. 더욱이 전국 최대의 도심 속 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관광 명소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과연 그럴까?  분명 전주한옥마을의 시작은 전통문화의 향기가 진하게 베어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린 넘쳐나는 방문객들을 보며 놀라움과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방문객의 대부분이 20대들로 인사동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에 꽂혀버린 어정쩡한 경관중심의 방문자 가치추구에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지속가능한 가치로 이어질지 상당히 염려스럽다. 한옥마을의 숙박시설 역시 지금처럼 단순히 한옥에서 숙박한다는 의미 이외에 더 이상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향후 이 역시 큰 골칫거리로 남을 수 있다. 특히 한옥마을의 상업화 촉진에 행정이 기여한 공로는 대단하다.  전주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는 가치로 만들어 내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에 앞서 한국의 별, 미슐랭 가이드, 슬로시티 등을 통해 최고의 관광지로 등극하게 되면서 밀려오는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 및 주차 등 온통 편의시설 확충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방문자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버린 장터 같은 한옥마을의 모습을 볼 수 밖 에 없는 우를 범해 버린 것이다.

몇 명이 다녀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그 가치를 잘 지켜내고 오랫동안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조금 덜 오면 어떠며 인위적으로 덜 오게 만들면 어떠한가. 오히려 주차나 일부 주말과 휴일에 국한된 부족한 숙박시설 때문에 골치 아프지도 않을 것이며 지금처럼 몇몇의 가게들이 한옥마을의 브랜드로 자리 잡아 버린 탓에 전주한옥마을의 소중한 가치마저 사라질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골목 안은 겉모습만 한옥이라는 허울로 위장되어 있을 뿐 골목사람들의 향기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이제 처음 시작할 당시 단절된 골목길을 연장하고 그 골목길 안에 전통문화의 향기가 흐르게 함으로써 소박하지만 천년을 이어 온 전주사람들의 진한 삶의 모습은 보여 주자던  골목길과 사람중심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곳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중심지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만들자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

전주한옥마을이 더 망가지기 전에 이제라도 슬로시티를 홍보의 수단으로가 아닌 인간 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오래갈 미래를 위해 자연과 전통문화를 잘 보호하면서 경제를 살리자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 향상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정신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켜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이 자칫 브랜드나 명품이라는 상품화의 길에 빠져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전주한옥마을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무엇인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원칙 없고, 개성 없는 무늬만 슬로시티가 아닌 지자체와 주민 그리고 방문자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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