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상관 관계가 존재할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대부분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이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대부분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마도 공부를 웬만큼은 하는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우리에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정비례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으리라.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 좋아하니?”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을까? EXO, B1A4 등등...아이돌의 이름의 줄줄 흘러져 나온다. 이제 갓 10살을 넘긴 우리 초등학생들의 대답이다.
우리 어릴 때는 어땠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푸른 하늘’ 노래를 친구들과 부르며 신나게 손유희를 했던 기억, 소풍 가는 길목에서 목청껏 부르던 ‘아기염소’, ‘오이 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불러대며 열심히 고무줄을 뛰었던 기억. 요즘 우리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기억일테지.
이제 교직 10년차, 아직은 짧은 경력이지만 내 아이도 낳아 길러보고 아이들과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의 시선에서도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그런 나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유행가 노래 속에서 동심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음악을 좋아하고, 또 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굳이 음악을 좋아하거나 잘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네가 가졌던 음악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질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첫단계는 음악 느끼기부터!
아이들에게 음악을 자주 접하게 해주고 싶어서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음악감상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월, 수, 금에는 동요를, 화, 목에는 클래식을. 나름 비장하게 음악을 틀기 시작했는데 첫 반응은? 아이들은 음악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생활한다. 엥? 이게 뭐지? 음악 소리가 안 들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반응이 오겠지. 그래도 꿋꿋하게 음악을 틀어준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클래식과 동요를 번갈아 가며.
반응은 동료교사들에게부터 온다. “오~오늘 음악 좋은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악인데 제목이 뭐야?” 서서히 반응이 온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반응이 오겠지. “선생님, 이 음악 텔레비전 광고에서 들어봤어요.” 앗싸~! 우리반 아이에게서 첫 반응이 나왔다. 역시 시간이 약이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이들은 음악감상 시간을 즐길 수 있었고, 음악을 듣는 폭도 조금씩 더 넓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체계적으로 음악을 들어보자. 매달, 이 달의 음악가와 이 달의 동요를 선정하여 음악감상을 시작했다. 음악가는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등 유명한 음악가들로, 동요는 우리네 어렸을 적에 많이 들었던 창작동요들로 구성하였다.
그 다음은 음악 표현하기!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악기연주는 듣는 음악에서 행사는 음악으로 옮겨가게 하는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음악 감상이 소극적인 음악활동이라고 한다면, 악기연주활동은 적극적인 음악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악기연주를 꾸준히 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출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오카리나와 리코더처럼 손가락을 이용하여 부는 악기는 우리 아이들의 뇌를 자극하여 뇌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해주고, 손가락의 힘을 길러주어 손이 꼼꼼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손가락의 힘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부는 악기는 한참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폐활량을 늘려 줄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를 안고 아이들에게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가르쳐주기 시작하였다.
감동의 피날레!
일년동안 꾸준히 아이들과 다양한 음악활동을 전개해나가면서 나 스스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선 아이들이 음악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아이돌 가수들과 유행가만 흥얼거리고 찾아 듣던 아이들이 이제는 가끔은 나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현장학습 가는 버스 안에서 동요 몇곡 정도는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 있으랴.
음악에 대한 관심도 또한 많이 증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들려주어야 음악을 듣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떤 음악이 듣고 싶은지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미술 활동을 할 때는 음악을 들려달라는 적극적인 아이들도 둘셋 생겼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교사가 관찰하고, 발견해주고, 이끌어주는 만큼 더 많이 성장하지 않나 싶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무엇인가 해보고 싶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교권이 실추되고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지쳐 아이들과의 추억 쌓기를 망설이는 선생님들이 늘어가고 있어 이 또한 참 아쉽다. 교육현장에 있는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 모두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난다면 우리 모두에게 플러스가 되는 멋진 교육현장이 되지 않을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