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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 | 칼럼·시평 [문화시평]
의자 하나로 시작되는 인생극장
창작극회 <의자는 잘못 없다>
진 주 작가(2014-09-01 18:04:15)

보도 블럭을 달구는 햇살과 화난 듯 내려 꽂히던 장대비가 반복되던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뜨거운 한 편의 연극을 만났다. 뜨거운 관객 반응으로 연장 공연이 이루어진 「의자는 잘못 없다」는 대학로에서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로서, 전북의 첫 문화예술협동조합인 전북연극협동조합의 정기공연 작품이다.


특별한 무대 장치나 배경이 없이 최소화된 무대 위에 놓인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의자 앞을 지나다 의자에 반해버린 한 남자로 인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직 상태로 현재는 독서실에 다니고 있는 30대 중반의 ‘강명규’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구점 주인 ‘문덕수’에게 의자를 팔라며 흥정을 시작한다. 이 의자는 미대지망생 딸이 만든 ‘비매품’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며 다른 의자를 권해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강명규’는 마치 그 의자를 자신의 분신이자, 아주 오래전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한 조각’처럼 여기며 의자에 집착한다. 기어코 의자 제작자인 ‘문선미’를 직접 만나보지만,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그녀는 ‘작품’을 ‘쓰레기’라며 팔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학원비나 보태볼 요량으로 남자와 흥정을 시도하다가, 남자가 부른 의자값 30만원에 혹하여, 계약금을 받아 낸다.


그러나 실직한 남편 강명규의 호기와 집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송지애는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 나서고, 그런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던 문선미는 공짜로 의자를 넘기겠다고 한다. 그녀로부터 의자를 강탈하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던 강명규는 문선미와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고, 결국 다음날 의자를 가져가기로 약속한다. 


의자를 욕망하는 ‘강명규’, 형편상 30만원을 주고서는 절대 그 의자를 살 수 없다는 ‘문지애’, 의자값을 반드시 받아내려는 ‘문덕수’, 차라리 줘버릴 수는 있으나 의자를 팔 수는 없는 ‘문선미’. 별 것 아닌 ‘의자’를 둘러싸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은, 나비효과처럼 누가 의자를 소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단 한번 뿐이지만, 극에서는 선택지에 대한 모든 결과물들이 짤막하게 제시된다. 

이 인생극장은 ‘강명규’의 행동에 따라 재구성되는데, 그 결정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강제한다. 강명규와 문덕수의 적당한 흥정이 파기되어 결국 돌아온 의자에게 감정이입을 한 문선미가 자살을 하거나, 계약금 3만원에 딸의 감수성을 팔아치운 몰인간성을 비난받은 문덕수가 정신병원을 가게 되거나, 웃돈을 주고 의자를 사는 강명규에게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며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결단들은 선미의 자살, 덕수의 정신병원행, 지애의 이혼 결심 등 각 개인의 희생을 담보하는데, 이후 세 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희생하는 무협신은 의자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희생의 확장을 은유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결과적 상황을 무대에서 경험한 강명규는 의자를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소유의 즐거움을 역설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목가적 삶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아니다. 이 작품은 사물과 현상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 안에 배태된 욕망을 문제로 인식한다. 그 자리에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사람은 오간데 없고, 시장논리와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군상만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흥정되는 대상물은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다. 


또한 소유와 집착의 문제가 인물 속에 숨어있던 관계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소통의 부재와 단절적인 관계, 고독감이 불러오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고발한다. 의자 하나를 둔 다툼 속에서 소유하려는 욕망의 실체와 허무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물의 가치는 감동의 가치가 아니라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며, 그것을 구매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면서 애초의 것을 상실하고, 그것을 얻기 위한 금액의 가치만 남는다. 소유를 위한 흥정과 작전이 펼쳐짐에 따라 감동의 가치는 스러져가고 결국 누가 갖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참을 수 없는 소유의 무거움이다. 소유가 어려워질수록 더 욕구는 커지고 간절해진다. 그 과정이 집착으로 변하면서 욕망을 내려놓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타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게 찰나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의 무게를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한다. 소유는 결국 욕망을 채우는 방법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장르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시공간을 넘는 배우들의 열연도 볼만하다. 다만, 무협신을 통한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극적 충돌은 활기가 있고 매끄러웠던 극 전체에 하나의 물음표를 안긴다. 이 장면에서 의외성으로 관객을 이끌어야 할 이 키치적 상상력은 의아함으로 마무리 짓는다. 다만, 이 극의 독창성과 발상은 근래의 공연 중에 유쾌하면서도 풍성하게 누릴 것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모두를 희생시키고 나서야, 강명규를 통해 의자의 가치는 다시 존재의 가치를 회복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의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그 의자가 무엇이든 간에 ‘의자는 잘못 없다’. <끝>



진 주

좋은 연극을 하고 싶은, 글 쓰는 소시민. 극단 T.O.D랑 소속으로 전북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희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안녕엄마」, 「호랑」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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