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2 | [저널초점]
1994년 대학입시제도가 남긴 것들 수학능력시험의 의의와 그 한계 혹은 개선점
전교조 전북지부 참교육실천위원회(2003-09-15 14:40:06)
교육정책의 변화는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제반 여건 변화와 일정한 함수관계를 갖는다. 해방이후 근대 교육정책의 변동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징후는 더욱 뚜렷해지는데 특히 정치구조-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김영삼 정권의 개혁정책은, 3공화국에서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경제 발전과 그 정치지형을 중심축으로 형성해온 군부와 관료집단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자본(재벌)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투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이러한 본질 때문에 개혁이 민중을 배제하고 동일에 있어서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층으로부터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이후 교육계의 변화를 그나마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입시제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고도화가 전진되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재벌의 학교교육에 대한 요구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최대이윤을 보장하는 값싸고 순응적인 기능인력 양성이 주되 요구였다면 이제 산업의 고도화와 컴퓨터 시스템의 일반화에 적응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주된 요구가 부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학능력시험 등을 포함한 최근의 일련의 변화는 본격적으로 재벌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유학파가 주축을 이루는 교육연구, 정책관료들이 미국의 이론과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입시제도는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그간의 획일적이고 단순 암기위주의 교육풍토에 충격을 주고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수능이 입시경쟁과 그에 따르는 학교교육의 파행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올해의 입시제도는 수능은 기껏해야 '경쟁의 내용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가지고 경쟁하도록 하는 점에서 제한적이나마 개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수능이 자기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평가의 타당성을 높여야 한다. 언어영역의 경우 쓰기에 대한 평가가 글을 쓰는 사고 과정에서 필수적인 중요한 능력보다는 세부적인 기능을 측정하는 식으로 출제가 되었고, 비판적인 사고나 추리 상상적 사고에 대한 평가에서는 필자의 관점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나 다른 맥락에 적용시키는 능력을 재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 과학탐구 영역의 경우에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가설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유도하는 무제가 거의 없고 단순사고를 재는 문제가 많았다. 둘째 사고의 방법적 측면에 대한 일방적 경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어영역과 탐구영역의 문제를 보면 자칫 사고의 내용적 측면은 무시하고 방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가치 중립적이 s고수로 보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지만 체계적인 지식은 그렇지 않다. 체계적인 지식은 학생에 제대로 공부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며 거기에는 인류의 고차원적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고력이라는 것은 이런 체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했을 경우에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내용 없는 방법을 측정의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사고를 단순한 기능으로 여기게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넓고 깊은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이고 체계적인 지식도 평가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 셋째, 수능이 대학입시에서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실정을 비추어 볼 때, 수능이 선발기능을 전적으로 떠맡는다면 수능의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게 될 것이다. 선발 고사에서는 무엇보다도 신뢰도, 객관도, 변별도를 중시하게 되는데 자칫 수능이 전적으로 석차를 내기 위한 변별력을 최우선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통합 교과적 성격을 좀 더 강하게 살려야 한다. 통합의 본래적 의미가 여러 과목을 기계적으로 합쳐놓는 소재 적이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여러 가지 자료를 주고 그것을 해독해 해석하게 하고 여기서 어떤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절차 모형에 맞춘 종합적인 문제여야 한다. 이러한 보완점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수능은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개혁도 이루어 내기 어렵다는 점을 깊게 새겨야 한다. 가령 과밀학급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교사의 창의적인 수업모형도 실제 적용하기 힘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육과정의 개발, 독서환경 개선, 교육관료들의 인식변화 등 교육의 총체적인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수능은 입시로 왜곡된 교육풍토를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새로운 문제 유형의 제시로서 밖에 기증하지 못할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