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여 공석이었던 전북도립미술관장에 장석원 전남대 교수가 취임하며 지역미술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되고 있다. 장 관장은 아시아현대미술전을 기최해 전북 미술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 청년작가 발굴, 레지던시, 현대미술사 복원 및 아카이브 구축 등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심사방식 강화로 잡음 사전 차단
차기 전북도립미술관장에 대한 관심은 6.4지방선거와 맞물리며 일치감치 관심의 대상이 됐다. 더구나 올해 개관 10주년인 도립미술관이 공공미술관으로써 새로운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관장의 인선이 중요하다는 여론이 문화계 안팎에서 일었다. 하지만 6월 18일 임기가 끝나고도 공모를 내지 않아 새 도지사의 ‘코드인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깊어졌었다.
지난 8월 4일 마감된 도립미술관장 공모에는 이흥재 전 도립미술관장, 장석원 전남대 교수, 이철량 전북대 교수, 김형권 한국힐링미술협회장, 이기전 삼례문화예술촌 VM아트미술관장, 최병길 원광대 교수 등 6명이 응모했다. 그러나 ‘코드인사’에 대한 소문은 증폭돼 사전 내정설이 나돌고, 전북도립미술관장을 둘러싼 문화계 안팎의 세 싸움이 거세지는 양상을 보였다.
전북도는 심사를 앞두고 공정한 심사를 강조했다. 송하진 도지사도 내정설을 일축하고 심사방식과 기준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전북도가 내놓은 심사기준은 그동안의 심사보다 한층 강화된 방안이었다.
1차 서류, 2차 면접의 방식이 아닌 1차와 2차 모두 면접위원이 직접 후보자를 심사하는 방식이었다. 1차 면접은 전문적 능력, 전략적 리더십, 변화관리 능력, 조직관리 능력, 의사전달 및 소통 등 5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2차 면접은 프레젠테이션, 집단토론, 주제별 심층면접을 치렀다.
면접위원 선출 방식도 대폭 강화했다. 분야별 면접위원 후보자 97명을 심사 전날 추첨을 통해 선출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잡음의 빌미를 없앴다. 추첨도 도청 출입기자 4명이 무작위 추첨하게 하는 이례적인 방법으로 공정성의 의지를 보였다.
공정한 심사가 가능했던 것은 지역 문화계의 관망세가 한몫했다. 도립미술관장의 유력후보였던 두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며 자연스럽게 견제의 기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역의 중견작가 ㄱ씨는 “낙점한 인물이 없다는 도지사의 발언의 배경에 두 세력 중 어디에도 손을 들어 줄 수 없었던 힘의 균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지역 화단 포용하며 남다른 행보 보여줘
심사결과는 의외였다. 유력했던 후보자들을 재치고 장석원 전남대 교수가 선정됐던 것. 1위와 2위의 차이는 근소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 원장이 전략적 리더십과 조직관리 능력·변화관리 능력 등에서 더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장 원장도 “내가 제시한 3대 비전이 설득력이 있어서였는지 내가 꼭 했으면 좋겠다는 면접위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도립미술관장 선정을 둘러싸고 미술계 내부의 갈등과 분파를 우려했던 지역문화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장 원장이 내세운 아시아현대미술전, 청년작가 2015 선정 등은 젊은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특히 장 관장의 취임 후 첫 기획이 ‘청년작가 2015’전 작가 공모가 되면서 지역의 젊은 작가들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청년작가 ㄴ 씨는 “어떤 세력도 등에 업지 않았기 때문에 얽히고설킨 지역의 미술판에 휘둘리지 않을 인물”이라며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대의 뜻을 밝혔다.
장 관장에 대한 평가도 “충분히 기대할만 하다”다. 그와 오랫동안 봐왔던 한 인사는 “미치도록 일하는 스타일”이라며 “능력과 추진력이 남다른 인물”이라고 장 관장을 평했다. 인맥이 없어 지역에서 활동의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해외 네트워크가 충분하기 때문에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원장의 행보도 지역 화단을 포용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전북미협 강신동 지회장과 만나 아시아현대미술전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약속하고 지난달 20일에는 전북비협 주최로 ‘전북미술-아시아 미술의 중심으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장 원장이 그의 핵심 기획인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며 전북화단과 소통을 시도하는 자리가 됐다.
공정한 심사에 의한 관장 선출은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한 ‘청신호’다. 도지사도 임명장을 수여하며 전북도립술관 운영에 도가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균형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10주년 걸음을 내딛는 도립미술관은 이제 새로운 도약기에 섰다. 신임 관장이 내건 비전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건강한 비판의 눈길로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터뷰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전북미술, 아시아적 사고가 필요하다”
8월 28일 장석원(62) 전남대 미술학과 교수가 신임 전북도립미술관장에 취임했다. 장 관장은 공석이었던 도립미술관을 향후 2년동안 이끌어가게 됐다. 장 관장은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주고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실험적 행위예술로 주목을 받았으며 사회문제를 예술로 표현하는 형상미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전시기획을 했으며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관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 새롭게 업무를 파악하느라 힘드신 시간일 것 같다.
학교생활 할 때는 11시에 잠들어서 8시쯤 일어나는데, 여기 근무하면서부터는 10시만 되면 잠이 든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게 된다. 일어나는 시간도 대중이 없는 것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긴장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일정이 빡빡하니 일과시간 내내 생각할 틈도 없다. 31년간 생각을 했으니 이제 제대로 실현하도록 뛰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북도립미술관 관장 공모에 응모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예술이 지역성도 중요하지만 지역 예술이 세계성과 어떻게 교류하고 세계를 향해 어떻게 나갈 것인가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전북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을 했다. 마침 도립미술관 관장 공모를 알게 돼서 제안서를 냈다. 제안서에서 아시아현대미술전, 전북청년작가 2015, 아카이브 구축을 3대 비전으로 내세웠다. 내가 제시한 3대 비전이 설득력이 있어서였는지 관장에 발탁됐다.
아시아현대미술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미 중국의 미술시장은 미국을 넘어섰고, 아시아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곳이 될 것이다. 아시아에서 두각을 내는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공공미술관이 그 출구를 만들어줄 필요성이 있다. 아시아현대미술전은 아시아 작가들을 전북으로 불러들이고 전북의 작가들을 아시아로 내보는 역할을 할 것이다. 도립미술관에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지역 화단과 함께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미협과 이야기가 오갔다. 미술전을 위한 인력을 구축해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전시회 방향성, 작가에 대한 논의를 할 생각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가미해서 아시아작가나 국내의 작가를 불러들이고 전북의 작가와 교류하게 하고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해외로 보내는 일을 추진하고자 한다. 레지던시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아시아현대미술전이 차별성과 경쟁력이 있는 것인가.
여러 차례 심사 등을 통해서 전북화단은 작가 층도 두텁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북은 전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숨이 막힌다. 출구만 만들어지면 굉장한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있다. 우선적으로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시작하는 것은 에너지를 분출할 출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작가를 불러들이는 것은 지역 작가를 아시아로 보내겠다는 신호다.
‘전북청년 2015’전 참가 작가 응모, 아카이브 구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청년작가들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전북청년 2015’다. 51세 이하면 추천위원으로부터 추천도 받고 스스로도 지원할 수 있다. 3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통해 5명 이내의 작가를 뽑아서 집중 지원한다. 연말에 도청에서 전시회를 하고 내년에는 미술관 전체 전시실에서 한 달 동안 전시할 생각이다. 마음껏 기량을 펼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생각이다.
해방이후 현대미술사를 복원하겠다. 원로작가 녹취, 자료 취합을 통해 논문을 만들고 논문과 연계한 전시도 열 생각이다. 작고작가 작품 구입에 자원을 더 쓸 생각이다. 아시아 자료를 포함한 아카이브 공간을 만들어서 명소가 되게 하고 도민들에게 개방할 생각이다. 내년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리라 생각된다.
그동안 외부의 시각으로 전북의 미술을 바라봤을 것이다. 전북의 미술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역량, 작가층, 전통적인 것 등이 전주비빔밥처럼 잘 혼합돼 있는 것이 전북의 미술이다. 딱 한 가지 너무 갇혀 있는 것이 문제다. 광주만 해도 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의전당에 외국작가들이 기웃거리고, 시립미술관도 북경에 창작스튜디오를 만들어 1년에 4~5명의 작가를 보낸다. 그런데 전북은 이런 출구가 없다. 도립미술관이 이런 출구역할을 할 것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미술관이 살려면 기획력이 핵심이다. 미술관이 명소가 되려면 어떤 전시를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기획력을 강화시키려고 한다. 아시아현대미술전 외에도 내년에는 ‘한국여성미술제’를 생각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성, 여성성, 유교의 가부장적인 대항 등 다양한 이야기를 미술로 풀어보려고 한다. 여성의 담론을 매개로 한 미술제가 드물거니와 모악산이 상징하는 것도 있어 여성미술제를 기획했다.
전문인력을 늘리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학예사 한명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해놓은 상태다. 상황을 보면서 차근차근 짚어볼 생각이다.
도민들에게 더 가깝게 가려는 노력도 필요할 텐데.
국내외 예술계의 뜨거운 인물을 불러다 도민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하는 자리를 년 10여회 만들 생각이다. 대중 수준에 맞춘 강사가 아니라 중요한 사람을 불러 중요한 이야기를 좀 쉽게 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이달 31일에는 아시아 퍼포먼스를 20년간 주도해온 세이지 시모다 씨를 초청해 퍼포먼스와 강연을 함께 열 생각이다.
도민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
작가는 아시아적, 세계적 사고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지역미술을 아시아라고 하는 예술판에 당당하게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도민들도 마찬가지다. 지역민으로 살지만 동시에 아시아인으로서 감각을 지니는 도민이 됐으면 좋겠다. 지역을 오랫동안 떠나 살았지만 전북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도민들이 이런 사고를 지닐 수 있도록 도립미술관을 기반으로 작은 힘이나마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