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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 칼럼·시평 [서평]
소음, 드디어 음악이 되다
변재원 (2014-10-08 16:00:57)

우리는 음악의 3요소로 리듬, 선율, 화성을 꼽는다.

좋은 선율과 화성으로 구성된 곡인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음악적 음’의 배열과 그 조화였다. 음의 높낮이 느낌, 즉 음고를 통해 악음과 비(非)악음을 판단했다. 더 나아가 음고가 좋은 선율과 화성을 가지고 있음을 결정하는 가장 절대적인 평가요소였다. 하지만 음악에는 음고가 아닌 다른 범주의 구성도 있다. 특히,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음색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음색’, 20세기 현대음악 이해 위한 열쇠 


20세기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음색이다. 또 대중이 현대음악을 가장 어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이 음색이다. 익숙치 않은 음색의 구성은 자신이 듣던 기존 어떤 음악과도 다른 조화로 이질감을 부른다. 궁극적으로 이 음색 때문에 ‘과연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현대의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익숙한 악음들 사이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비악음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소음과 음색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마냥 좋은 음악 감상만을 하기 위한 숙제가 아니다. 음악은 감상만을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개인의 사상이 집약된 언어체계이다. 다만, 음악이라는 표현 수단이 기존 언어를 구성하는 말과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당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듣는다는 것은 좋아하는 말과 글만을 편식하여 읽고 듣는다는 것과도 같다.

다수가 지배했던 역사, 그 사이 문명권 음악가들이 쥐고 있던 음고 느낌이 강한 소리, 즉 너무도 익숙한 소리에서 벗어나 당신이 외면해 오던 소음까지도 음악으로서 인정하고 들을 수 있다면, 여지껏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생각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음악에 있어 상대적으로 음고가 낮은 소음, 즉 파도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등은 음악에 있어 재료로 여겨지지 못하고, 바깥 대상으로서 다루어졌다. 이러한 음고가 낮은 친숙한 소음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음악 표현방식은 여러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소음 묘사는 대부분 미학적, 예술적으로 단순한 것으로 폄하되곤 했다. 또 그에 비해 표현은 예술가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한, 더욱 예술적인 방식으로 평가되었다. 음악 외적인 것을 묘사하기 위한 관찰이 정말 단순한 것일까.

결국 음악 외적인 것을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복사하는 과정이 아니다.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작곡가의 주관이 개입되는 일이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묘사는 재창작되어진다. 즉 묘사하기 위해, 관찰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엄연히 사유의 한 형태로서 이루어진다. 


소음, 20세기에 이르러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다 


악기만으로 음악을 구성하던 방식을 깨고, 적극적으로 소음을 음악적 재료로 도입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당시 미래주의자였던 루이지 루솔로는 불규칙한 소리들 속에서 발생한 소음조차 특정한 주파수와 일정한 화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소음 역시 악음처럼 다루고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귀는 특정한 높은 차수의 배음들이 이루어진 주파수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 구간에 불협화음을 적절히 배치한다면 소음 역시 청중들에게 익숙한 소리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이에 더해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환경적 소음들이 대중들에게 소음의 존재를 더욱 친숙하게 만들었다. 만약 불협화음에 냉담하다면 음악 진화가 불가능하다고까지 보았던 견해와 이상적인 소음 구성은 단순히 루솔로만의 주장은 아니였다. 쇤베르크 또한 소음을 예술적 처리 대상으로 보고, 음색을 중요시하는 무조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또 우리에게 [4분 33초]로 익숙한 존 케이지는 소음을 우연에 의한 음악적 사건으로서 다루었다. 그 이전까지 음악적 재료로 인정받지 못했던 소음은 19세기 후반,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음악적 가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이전의 음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작곡가들의 정형화된 처리기술 아래 음들이 철저히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작곡가들은 체계적인 구조를 지닌 곡을 작곡하는데에 최선을 다했다. 허나 20세기에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이 등장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소음의 가치에 새로이 주목함으로써, 주류적인 문법적 체계에서 벗어나, 비주류적인 음색을 전에 들을 수 없었던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들은 작곡에 있어,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것만에 집착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전까지 소극적이었던 청중을 음악을 구성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급진적 개입을 유도했다. 더 이상 소음은 일개의 대상으로써 다루어지지 않고, 음악을 구성하는 악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곡 방법론을 불러온 과학기술의 발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작곡의 출발점이되었다. 피에르 쉐페르는 녹음기를 이용해 다양한 소음을 이용했다. 즉 이 소리객체는 음악적 문맥 밖에서도 작용하였고, 특히 작곡가가 직접 선택하거나 처리하지 않고 듣는 사람의 의도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음악적으로 인정되는 것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구체음악을 탄생시켰다.

녹음기의 발전은 자연적, 사회적 음향을 음악적 재료로 완전히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녹음기를 통한 소음들의 연결과 논리가 새로운 음악을 작곡해 냈다. 이러한 구체적인 소리는 기존의 악기들이 전해주던 개개의 추상적인 느낌을 넘어서 전체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소리의 복제화, 묘사를 넘어 새로운 음악적 세계를 지각하게 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다.

더 나아가 현대 전자음악의 발전은 어쿠스틱의 발음원리를 디지털로 구현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흉내 내기와 창조하기가 이루어지는데, 이와 같은 새로운 소리 요소를 통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것은 불연속적이고 빈틈이 많았던 음악적 공간을 채우고, 중심적인 작곡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예술 지평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왔다.

‘매혹의 음색’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크게 세 챕터로 나눌 수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의 기악음색, 1970년대 이후의 스펙트럼 음악 그리고 현대 음악에서의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음악 비전공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음악사적 흐름을 따라 소음을 음악적 재료로서 인지하는 것은 귀찮고 복잡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혹의 음색’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앞서 말했듯 위 책은 그럴싸한 음악감상을 하기 위한 교양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향학적 연구를 넘어서 그동안 서구 문명의 7음계적 사고가 외면해 왔던 다른 음계들과 소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익숙한 소리와 정형화된 화성학적 체계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다수의 지배적 담론의 한계에 저항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동조하는 셈이다. 우리는 음악 또한 사회를 탐구하듯이 귀 기울이고 학습해야 한다. 

현대음악가인 크세나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귀가 아니라 뇌다.”

소음이 불편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아직 당신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색 위주의 음악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단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혹의 음색’은 지배적 음악 문법 논리에서 벗어나, 외면해 오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소리를 앎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현대음악의 계보를 알 수 있는 개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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