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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 문화현장 [문화현장]
시대를 대표하는 명필, ‘강암은 정신이다’
(2014-10-08 16:03:00)

~10.12

전북도립미술관

 

시대를 대표하는 명필로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시골구석에 사는 까닭에 견문이 매우 좁아 글씨가 먹으로 장난치는 수준’이라고 평하는 겸손한 서예가. 20세기 마지막 선비였던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의 탄생 101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제1전시실은 아카이브실로, 강암의 의복과 붓글씨 도구, 생전에 지인과 나눴던 서신 등 소탈한 선비이자 서예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방법이 생긴다)’을 좌우명으로 삼아 평생 선비로 살았던 강암의 인품을 면면히 살펴볼 수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광복 후 한국 서단을 풍미했던 강암의 작품 중에서 예서, 해서, 행서 등 비교적 가독성이 확실한 작품을 골라 전시되었다. 여기에 젊은 시절부터 노력한 강암의 서예 역정 가운데 초기 면모를 보여주는 2·30대 작품 몇 점을 더해 ‘서사(書寫)’와 ‘서예(書藝)’사이라는 주제의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실용적 서사를 위한 서예와, 예술적 표현을 위한 서예 사이의 관계를 가늠하도록 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기록을 위한 서사로서의 서예의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21세기의 환경, 그 변화를 담아낸 구성도 눈길을 끈다. 강암이 쓴 원시 미감이 풍부한 전서와 추상의 미를 더한 초서를 중심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서양의 원시주의 미술과 연계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흥미롭다.

제3전시실에는 강암의 ‘쌍낙관(雙落款)’ 작품만을 한 자리에 모은다. 쌍낙관은 제자나 가족 등 지인에게 송축 또는 위로를 전할 때, 자신과 상대방의 이름까지 써서 낙관을 찍은 것이다.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했던 옛 선비들은 돈으로 해결하기보다 정신에 감동을 주는 선물을 중하게 여겼을 터, 작품에 담긴 강암의 뜻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제4전시실에서는 글씨뿐 아니라 대나무 그림에도 능했던 강암의 문인화로 채웠다. 그의 문인화는 1927년과 1957년에 중국의 오창석과 제백석이 죽은 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경지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적 인상주의 이론인 ‘신사(神似)’와 ‘흉중성죽(胸中成竹)’, ‘상리상형(常理常形)’을 구현한 결과로 창출된 그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된다.

강암 송성용 선생은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나 부친인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으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일제 단발령에 항거해 평생 보발과 한복을 지키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유학자다. 광복 이후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서예의 5체와 사군자, 소나무, 연, 파초 등을 소재로 한 문인화의 대가로 꼽힌다. 국전 초대 작가를 지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비롯해 전라북도 미술대전, 동아 미술대전 등 국내 최고 권위의 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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