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이제 글도 읽을 수 있고 조금 자라기도 했다. 책을 달라고 졸라대니 그들의 호기심과 독서욕을 이용하자.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니까 성을 만들어 주자. 하지만 그 성은 우리 방식대로 짓는 거다. 궁전에는 교묘하게 위장한 공부방을 만들어 주자. 뒷골목 모퉁이에는 질서, 지혜, 온갖 지식, 물리나 화학 같은 것들이 나타나도록 계획해 두자. 겉으로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수준 높은 학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 자신은 놀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는 셈이다.”
폴 아자르의 <책·어린이·어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교직생활 6년차에 접어드는 미천한 경력이지만 해가 갈수록 “어른이 어린이의 세계를 억압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 학교에 등교 하는 것, 9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40분 간격으로 들으며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동안 움직이고 싶은 몸을 마음껏 움직이며 하고 싶은 대화를 해야 하며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40분 안에 청소와 점심식사와 운동과 수다와 춤추기 또는 책읽기를 해야 한다는 것, 점심을 먹고 나른한 몸으로 풀린 눈을 억지로 뜨게 한 채로 오후 3시까지 버텨내야 한다는 것, 학교를 탈출하면 아스팔트를 지나 또 다른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학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 곳에서 수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틀리면 혼나면서 남은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 집에서는 학교에서 준 숙제를 해결하고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커가는 본능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6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들고자 파격적인 학급운영 방식을 선택했다. 숙제 없고 시험 없고 일기도 없다! 중간고사를 없애고 형식적으로 쓰는 일기를 없애고 몇 번 쓰고 풀어오는 기계식 숙제를 없앴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우리 반은 숙제가 없다고 좋아한다. 물론 학교에 매어있는 시간에도 다양한 활동을 계획했다. 어버이날, 졸업식엔 꽃다발을 염색해서 직접 만들고 국어, 수학 시간에도 미술활동과 함께 하고 하모니카도 배우고 도서실에서도 책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분명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이들은 분명 즐거워했고 행복해 했으므로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자위했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나면서 아이들로부터 이상한 고백이 들려온다. “집에서 해야 할 숙제가 더 많아 졌어요. 중간고사 안본다고 학원에서 시험을 봐요. 학원에서 보는 시험이 더 많아요...” 깊이 이야기를 해 보니 집이나 학원에서 “다른 학교처럼”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중간고사를 보는 학교처럼 공부를 해야 중학교에 가서 적응을 할 수 있고 옆 집 아이처럼 공부하고 그 아이처럼 학원에 다녀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놀기만 하는 것보다 공부를 하면 지식 축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보다 활동하고 놀면서 공부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증명이 된다면 “옆 집 아이처럼”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남들처럼” 인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것일까. 그 업그레이드는 왜 초등학교, 유치원, 아니 뱃속에서부터 부모는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의욕이 없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 될 때 부모는 교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 아이가 왜 이러는 걸까요? 우리 아이 좀 변화시켜주세요.” 학교에서 교사와 있는 단 5~6시간으로 아이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그 이후에 아이의 모든 변화를 관장하는 부모와의 시간에 아이는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아이가 행복을 느끼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다린다면 아이답게 놔두어야 한다. 어른이 바라는 숙제나 시험, 학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게 놔두어야 한다. 온갖 놀이나 활동으로 무장한 지식을 집어넣는 어른의 계획에서 벗어나서 아이들이 아이답게 놀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게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이나 수업이 되는 것이고 가정에서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지만 가장 큰 배움은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부모나 교사의 계획이나 의도보다 더 대단한 것들을 쏟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본성을 어른들이 짓밟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살기를 강요하지 않고 그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역량으로 놀고 품고 쏟아내기를 바라봐 주는 것, 그저 안전하게 건강하게 지내는 환경을 제공하며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어른들에게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숙제를 내지 않아도 시험을 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