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날아온 한통의 메일을 받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한 시민단체로부터 온 장문의 편지를 받고 설렘이 있는 것은 아마도 도시재생의 의미도 모르고 내가 처음 인천의 원도심 재생작업에 뛰어 들었던 때가 생각이 들어서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15년의 세월이 주마간산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 사는 도시이야기의 ‘릴레이 토크 콘서트’에 함께 해달라는 얘기인데 사정이 어려워 사례비는 못 드리고 식사대접은 정성껏 하겠다는 말에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각 지자체들을 돌며 지역문화와 관련된 포럼에 참여하여 익숙하게 들어왔던 지역문화에 대한 단편으로 ‘지역은 지역의 생각이 있는 거여’라는 단편적인 말이 생각났다.
지역의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문화·예술의 성향을 보면 삶의 무늬를 그리는 과정으로, 소유론적 예술보다 존재론적 예술로의 일상성으로 향하고 있다. 공간에서조차 내부에서 외부로, 전시장·공연장에서 공원으로, 도서관으로, 아파트로, 서점으로, 온라인상으로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반면 생활의 급속한 변화와 문화예술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들여다보면,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의 인프라 구축에 온갖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성과 위주와 결과 중심적인 생각으로 여기저기 벽화마을을 만들어 지역의 정체성을 왜곡한 채 저급한 상술을 내세워 땅값이 올라가는 것을 자랑삼아 도시재생의 업적을 과시하는가 하면, 전통주의 굴레에 빠져 천년왕국의 부활을 꿈꾸며 수천억짜리 다리(경주 월정교)와 감영을 복원하여 문화우월주의를 꿈꾸고 있다. 전주한옥 마을이 성공했다고 하니 전국 여기저기에 한옥마을을 조성하고, 수백억의 예산을 꾸어와 예술의 전당을 만들었다. 이렇듯 지자체들의 경쟁은 지역성을 배제한 채 표준화 되고 획일화되고 있으며, 급기야 구겐하임미술관을 거론하며 문화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하고 만다.
1983년 그리스 문화부 장관 멜리나 메르쿠니(Melina Mercouri)가 유럽사회내 의 문화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유럽문화수도를 지정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지역을 문화적 성격에 따라 특화·발전시켜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2004년부터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 경주, 전주, 부여·공주를 지역거점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문화도시의 가치와 철학의 허약함속에서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하면서 많은 과제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가나자와와 교토의 문화예술정책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도쿄에 지나친 문화집중이 이루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지방정부들이 일제히 초호화판 오페라극장이나 심포니홀 건설이라는 하드웨어 중심의 토건사업에 몰입할 때 가나자와와 교토는 하드웨어 사업보다 소프트웨어사업을 중시하였다. 시립미술공예대학을 설립하고 후계자 양성과 기술을 지도하고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또한 근대산업시설을 이용하여 시민놀이터라는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어 ‘생활문화’를 꽃피운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생활문화에 대해 역점을 두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생활문화의 중요성과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를 방문하면서 놀랐던 사실은 전국의 지자체가 생활문화에 대한 고민을 할 당시에 ‘시민놀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주시민놀이터는 24시간 개방하고 동아리 위주가 아니라 시민의 문화에 대한 참여와 향유할 권리를 시민 개인에게 보장하기 위해 자원봉사를 통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위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운영과 지원체계의 미비한 것이 많이 있을지라도 이러한 시도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운영, 관리의 효율성만을 주장하며 수요자에 대한 이해와 수요자 중심의 운영이 아닌 공급자 위주의 토건사업에 몰입해 왔기에 이 시대에 전주시민 놀이터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창조의 장을 제공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느 지자체에나 있는 공설운동장에 대한 지역의 고민을 들여다보면서 전주의 또 다른 시민놀이터를 보게 됐다. 공설운동장은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삶과 동고동락을 같이 해 왔다. 이러한 장소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 있으나 이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개발논리와 경제적 가치만으로 한 기업에게 점유된 상업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아파트로 변하기도 한다.
사는 사람이 행복한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우리와 함께했던 공간을 앞으로도 함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전주시의 모습 속에 동문거리의 시민놀이터가 머릿속에 가득차 온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창조의 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공설운동장을 덩치가 큰 시민놀이터로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본의 가나자와와 교토에서 얻은 교훈과 그동안 추진해온 역사문화도시의 오류를 통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역사성과 장소성이 있는곳, ‘오래된 미래’를 꿈꿔보자. 오래된 역사와 훌륭한 공간은 있으나 그 곳에 시민의 삶의 무늬, 일상이 없다면 전통에 박제되어 창의성을 잃을 수 있다. 전통적인 거리나 공간,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하여 전통과 근·현대의 삶의 문화가 공존하는 개성적인 터전을 만들어 갈 때 경쟁력 있는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공유의 공간, ‘플랫폼(Platform)’을 만들자. 도시는 다양한 공유의 공간, 플랫폼의 시스템을 통해 공급자와 사용자가 상호 소통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또한 서로 다른 장르와 장르가 융합하고, 전통과 현대가 교류하면서 하이테크한 산업과 예술이 융합하여 더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게 해야 한다.
공동체와 사람, ‘네트워크(Network)’를 만들자.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 형성되고 유형무형의 다양한 문화자산이 풍부한 도시는 때로는 전통문화의 중압에 눌려서 문화적 보수주의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단체의 활동이 중요하며 예술가와 시민, 기업을 연계하는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열려있는 자유로운 비영리조직에 연결되어 지탱된 네트워크는 풀뿌리 주민들의 참여가 실현되는 곳,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연결지점에 창조적인 융합의 장이 생겨난다.
우리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들여다보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물어 보아야 한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며칠 전 받은 메일에 답신을 보내야겠다.
‘별의별 사람들과 별의별 공간에서, 별의별 상상을 실현하는....’ 별의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