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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 | [교사일기]
참교육 현장 세상은 싸가지 없는 후세대들이 만들어 간다
정승희 오수중학교 교사(2003-09-15 14:56:51)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몇 년에 한 번씩 무기력과 권태를 반복하게 되지만 내가 정말 교사로서의 갈등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진 것은 교직생활 10년이 지나면서 부터이다. 한가지 일을 10년쯤 하면 적어도 그 일에서만큼은 프로의식이 생겨야 할텐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교사로서의 무력감은 깊어만 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해볼만한 일인데 왜 자부심은 안 생기고 갈수록 초라해질까. 원인은 밖에 있었다. 교사를 정권의 시녀로 만들고 교장, 교감의 하수인으로 만들 뿐 교사의 자존심을 챙겨주는 정권은 없었다. 결국 교직의 보람을 우리가 찾아야만 했다. 자연스레 전교조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힘을 얻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교육 현실의 문제로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대부분 나의 후배라는 사실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위 교육원로라는 인사들일수록 '적당히'에 보다 더 길들여져 그들에게는 아예 패배감도 분노도, 저항도 없었다. 어느덧 나는 싸가지 없는(?) 젊은 놈들 축에 끼게 되었다. 자기 반성적이 다른 반보다 앞서기 위해 아이들을 점수 벌레로 만들고, 수업시간에 조용히 말 잘 듣게 해서 선생님들을 편하게 해드리고, 학급회의 시간에는 거의 사항이 없는 모범반을 만들어야 유능한 교사 소리를 듣는 대열에서 나는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 학교에 근무할 때 나도 그런 유능한 교사에 속했었다. 지금도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나면 적잖이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얘기가 있다. 기원 전 알타미라 동굴의 낙서를 해독해 놓고 보니까 '요즘 젊은 놈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다.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는 기원전에도 있었다는 얘기다. '요즘 젊은 놈들은 왜 그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갈수록 싸가지가 없어져'해도 세상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끝없이 발전해 오지 않았는가? 학년말 학급문집을 만들면서 우리 반 10대 사건을 뽑는데 까마득히 잊어버린 체벌사건을 아이들은 맨 먼저 얘기한다. 학년초에 쪽지 사건으로 반 전체 아이들을 때린 일이 있는데 그것은 꼭 넣어야 한단다.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꼭 서운한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닌데 저희들이 잘못한 이상의 과중한 처벌을 받는 데 대한 야속함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학년초에 무섭다는 걸 한번쯤 보여줘야 1년 담임이 편하다는 나의 흑심을 아이들이 정확하게 알았다는 얘기다. 또 EXPO견학을 갔을 때 개별 행동을 하여 1시간이니 내 애간장을 태웠던 몇 아이들은 호되게 혼낸 일이 있는데 그것도 넣어야 한단다. 내가 애가 감정을 섞어 혼낸 데 대한 미움이다.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많으니 둘 중에 하나만 넣자고 사정을(?)해도 아이들은 절대로 안 된단다. 나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깨끗한 거울이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50명 학생을 교단으로 끌어올리게 할게 아니라 교사가 교단 아래로 내려서면 그만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수업 준비를 할 때 먼저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부터 한다. 30여 년 동안 익혀온 나의 고정틀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아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필까를 궁리한다. 아이들은 꼭지만 건드려 주면 예상하지 못한 기발한 생각들이 나온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황순원의 '소나기'가 나오는데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시시하다는 것이다. 또 교과서에 나오는 소년 소녀의 사랑은 순수하다고 하면서 왜 우리들의 이성교제는 불순하게 보느냐고 항의한다. 황순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지만 실수한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함께 찾아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어떤 아이는 '소녀는 양반의 후손이고 소년은 소작인의 아들인데 소년이 소녀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사랑이라기 보다는 상전을 떠받드는 것 같아요' 한다. 또 '소녀가 겨우 소나기 한번 맞았다고 그렇게 쉽게 죽어요? 거짓말 같아요'한다. '그래. 우리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고쳐 써 보자' 그러면 기가 막힌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은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발함에 불을 댕기는 수업을 할 때면 나도 절로 신바람이 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잘못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희들이 판단하고 알아서 더 잘한다. 얼마 전에 우리 학교에 손님들이 온다고 교실마다 왁스를 한 통씩이나 발랐다. 그래서 마른걸레질을 하는데 복도 청소하는 아이들이 서로 끌어주기를 하면서 미끄럼을 탄다. 어쩔까하다가 '벽에 부딪쳐 다치지만 않게 해라'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러기를 며칠, 청소시간에 올라가 보니 아이들은 의외로 얌전히 앉아서 걸레질을 하고 있다. 웬일로 오늘은 미끄럼을 안 타느냐고 하니까 한 녀석이 '저희들도 다 생각이 있죠. 인제 미끄럼 타기도 싱겁고요'하면서 싱긋 웃는다. 우리 교단에는 별 것도 아닌 일로 교사와 학생들의 진을 빼는 일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10대들의 정서를 기준으로 삼아야지 50대와 60대의 관료적인 사고 방식에 어떻게 아이들을 뜯어 맞추라는 것인지 한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선생 하느니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일로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 싸워야 하는 일이 있는 한 교단에 설 명분이 있다. 그리고 싸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한 교단에 남아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학부모는 자식들을 학교 보내는 일이 즐거워야 하고 교사는 교단에서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싸가지 없는 10대들과 한 통속이 될 수 있는 한 교사로 남아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싸우고 싶다. 그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심지에 불을 댕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세상은 싸가지 없는 후세대들이 만들어 가기 마련이니까. 정승희 / 56년 전주출생으로 79년 전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참교육 실천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그는 이 땅의 교사들이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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