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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 | 칼럼·시평 [20대의 편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유여진 |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생(2015-01-05 10:06:03)

드디어 허니버터칩이 공중파 방송을 탔다. 허니버터칩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 한 사람당 두 봉지씩만 살 수 있다는 안내문을 카메라가 차례로 훑었다. 그날 입고된 물량이 동나면 돈이 있어도 못 산다. 헛헛한 마음을 다른 과자로 채우기 때문일까. 외면당하던 국산 과자의 판매량이 소폭 증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실은 나도 허니버터칩 한번 먹어보자고 온 동네 편의점과 슈퍼를 뒤졌다. 근데 진짜 없다. 한 편의점 앞엔 “허니버터칩 없습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문도 붙어 있다. 추운데 이게 무슨 고생이람. 돈이 있어도 못 산다니, 그깟 과자 따위가 뭐라고!

그깟 과자 때문에 난리 치는 당신은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하다. 자유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돈 주고 과자를 못 산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등 경쟁을 하다못해 과자 사려고 경쟁을 하는 꼴이다. 소모적인 경쟁의 끝판왕이다. 돈 주고도 못 사서 사람 안달 나게 하는 허니버터칩은 한동안 나를 회의주의자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만 슬퍼하고 돈 벌자는 논리를 앞세워 세월호 유족을 광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법원이 나서서 돈을 더 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며 해고노동자가 아닌 기업가의 손을 들어주는 세상인데. 이만큼 했으면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어야 마땅하다. 한데 허니버터칩이 돈보다 우위에 있다니.

그래도 사람보다는 돈이 먼저인 세상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소송과 관련한 최종 판결을 앞두고 해고노동자들은 1주일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2000배를 올렸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법원은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본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적법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기업 경영의 합리성을 인정한 이 판결로 인해 정리해고는 더 쉬워질 것이고, 노동자의 위치는 더 취약해질 것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카트>의 여주인공 선희가 겹쳤다. 5년 동안 마트에서 근무하며 정규직 전환을 꿈꾸다 갑작스레 해고된 그녀. 모범사원이었던 그녀가 노조를 결성한 것은 해고가 앗아갈지도 모를 평범한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잘되면 저도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잘리고…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외치는 저희를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 얘기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저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우연의 일치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분신 44주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위에 돈이 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다시 살 수 없는 것을 잃었음을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누군가는 돈을 더 벌 수 있음에 기뻐했겠지만 누군가는 삶을 잃었다. 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인간답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 말이다. 품절, 무기한 품절이다. 언제 다시 들어올지, 그때 가면 얼마를 줘야 살 수 있는지, 아니 돈으로 살 수 있기나 한 건지조차 요원하다.

사실 허니버터칩은 안 먹어도 그만이다. 남들 먹는 거 페이스북으로 보고 있자니 배 아파서 먹어보고 싶긴 한데, 편의점 서너 군데 가보고 없으면 “에잇, 그깟 과자 따위가 뭐라고!” 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혹은 우리네 삶을 감히 ‘그깟 삶’이라 부를 수 없다. 누구 하나 투명인간인 사람은 없고, 삶의 무게는 언제나 무겁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2015년에는 허니버터칩이 아닌 ‘삶’이 돈 위에 자리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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