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 | [서평]
가슴저린 빈가슴으로다가오는 시인의 꿈
『빈집의 꿈』(1993. 정양. 푸른숲)
김경석 전북대 영문학과 강사(2003-09-16 16:33:36)
요즈음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삶의 무게를 제대로 지탱해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살아가고 있다. 모두들 반거충이 되어서 자기 탓도 남의 탓도 아닌 삶의 병신처럼, 치열하게 살고자 분투했던 80년대보다 더 병신처럼 살고 있다.
시집 『빈집의 꿈』은 정양 시인의 근작이다. 필자는 그의 이전에 쓴 시들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고, 인사를 나눈 적도 없어서 그나, 그의 시에 대해서는 모른다. 또 시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혹여 시인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다. 그러나 시라는 것이 일단 시인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된다는 말에 힘을 얻어 나름대로의 소감을 몇 마디 적어본다.
『빈집의 꿈』은 제1부 '천해진 것들을 위하여.' 제2부'망할 것들은 연간해서 안 망하고' 그리고 제3부'꽃들은 왜 해마다 피고 지는지'등 3부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20편을 약간씩 웃돈다. 소제들은 시인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제1부에는 주목받지 못해 황폐해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빈집'과 어우러져 표현되면서 동시에 시인의 텅 빈 가슴이 빚더미에 눌려 야반도주라도 한듯한 농부의 무너져내린 빈집에 빗대어 그려져 있다. 에2부에는 80년도를 숨죽여 살아야 했던 우리 민중들의 한 맺힌 삶이 시인의 자기반성과 5.6공에 대한 질책이, 그리고 제3부에는 세상의 악에 밀려 떠나가고 떠밀려간 사람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과 파편들이 시인의 삶의 편린 속에 녹아든다.
제2부에 수록된 시들에는 80년대에 쓰여진 것들을 94년 벽두 소위 문민시대에 얼쩡거리며 방향 없이 살고 있는 우리가 추억 비슷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작가의 기분처럼 다소 '허망'하기도 하다. 제3부에는 무엇인가 꼬리가 잡혀가는 인생에 대한 성찰이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시인의 느낌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제1부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이다. 전북에 살면서 쌀가마에, 황소에, 전집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없으련만, 이제 붙잡을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이 천길 낭떠러지에 서있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바로 우리의 일이라서, 정양 시인의 『빈집의 꿈』은 많은 의미가 있다.
흔히 사람의 독기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없다고 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거리가 내린다든지, 독사에게 물리면 그 뱀의 머리통을 씹으면 독기가 빠진다는지 하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어느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 쓰려져가는 초가도 웬만한 비바람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적이 끊긴 집은 성한 집도 2개월만 지나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쉽게 무너져 내리지는 않고, 그 무너져 내리는 꼴로 하세월을 버틴다. 사람의 독기라는 것이 그래서 무서웁다.
사계절은 관통하고 있는 정양 시인의 빈집은 지난 가을 추수를 끝내고 떠난 집인지 겨울눈을 못 견디어 "지붕이 폭삭 내려앉고" "방문도 부엌문도 시립문도/ 다 떨어져 나가고/ 앞뒤로 휑하게 "뚫려 있다. 그러나 사람이 떠난 뒤에도 개나리 울타리는 여전히 눈부시게 피어올라 "미치게 눈부시는 집"이 되어 보이고. 시인은 "어느/ 뼈빠지는 강산에 사무쳐/ 영영 돌아오지 않는"그 누구를 하나 그리워한다. 시인은 "오뉴월 땡볕"에 피말리는 땡볕아래/ "혀 깨물고 서 있는 집"의 "흙벽이 찍소리 없이 또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억센비"가 "무슨 빚더미에 짓눌려/ 주저앉은 지붕"을 사정없이 할퀴는 것을 보고 제삿밥 받아먹던 조상들도 더 이상 찾지 않는 빈집에서 "시퍼런 목숨이 괴롭다는 듯이/ 아우성치며 몸부림치며/ 질펄거리는 땅바닥을 때려쌓는" 풀잎과 나뭇가지들에 괴로워한다.
그는 밤마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고, 징징징 그시랑 우는 밤마다 가슴 속 빈집을 헤집는다. "어둠 몰고 다니던 얼굴들이/ 옆에 들떠서 제풀에/ 자지러진 뒤에야" 빈집은 잠을 잔다.
빈집의 "마당 가운데 시커멓게/ 모닥불 자리가 남아 있다." 시인은 농촌의 무너져내리는 황량한 빈집을 보고 자기의 가슴이 비어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시인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 사연은 한국의 현대사, 특히 8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태여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의로 타의로 시공을 달리 한 사람들을 못내 그리워한다. 그는 시집의 들머리부분부터 끝머리까지 그의 가슴을 숯검정으로 만들고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면서 어린 시절 주린 배를 채우려 땡감을 우려내었듯 그리움을 빨갛게 익는 가을 저녁놀보다 더 이쁘게 우려낸다.
그러나 시인은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천벌처럼 막막"하다는 것을 안다. 시인에게 그 막막함은 눈덮힌 빈집을 눈부시게 만들고 "짓밟힌 빼앗긴 뼈빠지는 무덤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미움"이며 "그리움"이며, 그 "덧없음"을 눈 녹듯 스러지게 할 눈을 빈집에, 자기 가슴에 차곡차곡 쌓는다.
다시 그 빈집에 봄이 올 때 낯설은 채 외면해도 기어이 가슴에 파고드는 "눈물겨운 풀빛"이 세상사 막막해지고 허망해하는 시인의 빈 가슴을 빼곡이 채워준다. "눈부시는 무산의 무덤"이 "미움"과 "그리움"을 넘어 "눈물겨운 풀빛"으로 다가와 시인의 빈집은 새로운 생명과 활기로 우리 앞에 우뚝 선다. 시인은 모든 일이 제대로 풀려 세상사가 허망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빈집의 꿈」이라는 연작시 열두 편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끌어안는 다른 시들과 더불어 2부와 3부로 넘어간다. 제2부의 「눈보라」, 「봄날은 가고」등 스물 네편의 시는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5.6공의 맹위들을 명쾌한 필치로 다시 살려내고 있다. 그 시절에 발표가 되었다면 아귀에 힘들어가게 할 만큼 힘있는 시들이다.
시라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 명쾌한 한가지 해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애환을 먼저 보았으나, 시인은 살며시 나의 애환을 벗어나 우리들의 가슴저린 빈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 가슴저린 빈 가슴을 시인의 꿈으로 채워보기를 바란다.
정담 객담을 담을 수 있는 사투리하나 찾아보기도 힘들고 흥겨운 노랫자락 하나 귀기울여보기도 힘들만큼 진지하게 꽉찬 시인의 가슴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