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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 | [서평]
언론과 학문의 이상적 결합 『동학농민혁명과 사회변동』 (1993.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편, 도서출판 한울)
지역사회연구모임(2003-09-16 16:35:06)
1994년을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올해가 바로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의 해이기 때문이다. 백주년을 목전에 둔 지난달에 무척 뜻 깊은 책이 한권 선을 보였다.『동학농민혁명과 사회변동』이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에 깃들여진 뜻이 깊다는 것은 이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담고 있는 내용이 조금은 특별하고 덜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이라는 말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은, 올해가 백주년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주년을 준비해온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내용도 그런 노력의 하나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된 것은 지난해 5월 전주문화방송이 주최한「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자료집과 그날의 토론내용이다. 이 책의 만들어지는 과정이 특별하다고 하는 것은 지역의 언론매체가 이러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까지 만들어 냈다는 것이고, 그 내용이 덜 상식적이라는 까닭은 책의 거의 절반가량이 학술대회에 참가한 학자들의 토론으로 채워져 있다는 파격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운동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운동의 주체 및 조직, 가장 주된 이슈와 사상적 지향 그리고 그 시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배경 등의 문제는 마땅히 짚어지는 주제들이다. 이렇듯 새삼스러운 주제가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있어서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했던 것은 일제 식민지시대와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가 줄곧 뒤틀려 왔다는 시대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져 있다. 고석규 선생의 첫 번째 발표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였는가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이 발표에서 농민들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를 이른바 '농민적 노선'이라는 표현으로 함축한다. 한편으로 김정기 선생의 세 번째 발표는 동학농민혁명이 반침략적 성격을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그는 그 논거로 당시의 조선사회가 처한 이른바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에 서구열강과 맺었던 불평등 조약과 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의 내용들을 연관시키고, '반양이'의 실체를 복원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고 주장한다. 1부의 두 번째 발표는「동학농민혁명에 있어서 동학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글이다. 이 글을 발표한 박맹수 선생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있어서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보배와도 같은 자료와 연 구성과를 끊임없이 내놓는 뚝심 있는 연구자이다. 그가 집요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사상의 관계이다. 그가 시종 강조하고 싶어 하는 바는 수운사상에서 보여지는 '다시 개벽'과 '무위이화'가 조선사회의 반봉건 반외세 의식과 결합하고 있으며, '시천주'를 근간으로 한 평등과 민족주체의 사상이 조선왕조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현실부정사상으로서 보다 실천적으로 해석되었고 전봉준 등의 하층 동학지도자들에 의해서 질적으로 변화되어 동학농민혁명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1부 토론의 가장 볼만한 대목이 바로 박맹수 선생의 논의에 대한 것이다. 예상대로 박맹수 선생은 가장 집중적인 공략을 받았다. 두 사람의 약정토론자는 동학에 나타나는 평등사상은 모든 종교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써 그것이 사회적인 평등의 의미까지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무위이화'의 사상은 이른바 신앙적인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으로 동학의 혁명성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비약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2부의 주제는 동학농민혁명과 사회변동에 관한 것이다. 1부가 다소 총론의 성격으로 거시적으로 사회학적인 분석에 집중했다면 2부는 조금은 아기자기한 각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2부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은 동학농민혁명을 놓고 마치 "그 혁명이 성공했다면"하고 묻는 것처럼 보인다. 2부의 첫 번째 주제「집강소의 성립과 개혁의 성격」은 관록의 사회학자 신용하 선생의 발표였다. 선생의 논의는 집강소야말로 동학농민이 '권력'을 장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개혁을 단행한 '농민권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집강소를 통해 농민들은 각종 중세적가봉건적 제도를 폐지하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며, 그것은 농민혁명의 근대적 신체제의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발표는 재야 역사학계의 야전사령관적인 백전노장 이이화 선생의 글「폐정개혁과 갑오개혁의 연관성 규명」이었다. 이이화 선생이 다룬 주제는 농민군과 개화파와의 연합 또는 연대가 과연 가능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요컨대 이이화 선생의 주장은 최근 몇몇 학자들 사이에 농민군과 개화파의 연관을 논하고 있으나, 이들 두 세력은 현실인식을 달리 하고 있었고 지향이나 행동이 그 방향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었다고 본다. 또한 개화파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부르조아 계급이 두텁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 외세영합적이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애초부터 두 세력의 연합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3부 토론에서 이이화 선생과 신용하 선생 사이에서 불꽃 튀는 쟁점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몇 장면의 하나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신용하 선생의 주장은 연합의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연합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특수한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민족주의자의 토론은 책 읽은 사람을 긴장시키지만 그 치열한 토론과 의미 있는 차이는 우리에게 묘한 뿌듯함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두 분의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차이일지도 모를 일이다. 3부는 종합토론으로 이어진다. 3부는 명실상부하게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전문연구자들을 모아 대규모로 진행한 종합토론이었다. 종합토론은 동학농민혁명의 모든 문제를 몽땅 끌어내어 한 곳에 모아놓고 차곡차곡 정리해가는 느낌을 주었다. 종합토론을 두 번쯤 읽으면 한껏 어지러워진 머릿속은 한결 정리되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정주시 문화원장인 최현식 선생님의 토론도 들어 있다. 그분에게 있어서 동학농민혁명은 인생 자체였다. 그런 어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그나마 동학농민혁명의 연구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책이 갖는 가장 중요한 강점 중의 하나가 현장감이다. 이 책은 이 행사에 참석치 못했던(필자도 참석하지 못했다)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아쉬움을 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출판된 이 책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은 지역의 언론매체가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학술행사를 치러내고 그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언론과 학문의 이상적인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지역사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역사적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구조와 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에 지역 언론의 역사적 책무가 이런 학술대회와 책 한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마시라. (정리: 원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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