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반전문점 <세바스티안> 이구 씨
객원기자. 문동환 / 사진. 장근범
음반시장이 침체된 지 오래다. LP판은 CD에 자리를 내줬고 CD가 지배하던 음반시장은 이제 음원으로 대체됐다. 음원의 지배력이 확고해지면서 시작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불편한 동거는 음반시장을 왜곡시키고 있고, 온라인의 지배력 하에서 오프라인은 한 가닥 생명줄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는 형국이다. 덩달아 거리의 음반매장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기술의 발전은 거리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때와 유행에 따라 음반 매장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맞춰서 흥얼거리거나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선율을 음미하던 행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음반매장이 없는 거리 풍경. 막상 상상해보니 왠지 삭막해 보인다. 하지만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있는’ 음반매장이 있다. 그것도 잘 팔리지 않는 클래식 음악만을 취급하는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 열정일까 바보 같은 고집일까. ‘세바스티안’의 사장 이구 씨가 말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골목 모퉁이에서도 여전한 '음악'의 기쁨
세바스티안은 아중리 인후초등학교 맞은 편 골목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외관만 봐서는 음반매장인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한 켠에 LP판과 CD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물론 명색이 음반 매장이라면 사방으로 음반이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진열대의 행색이 구색을 겨우 갖춘 정도여서 마치 클래식 음반계 최후의 1인을 자처하고 나선 것 같아 보인다.
“처음 시작한 게 제가 서른 살 때, 1997년 3월이었는데 시청에서 코아백화점 쪽으로 가는 길에 매장이 있었죠. 그 때는 매장 이름이 세바스티안이 아니고 ‘세상의 노래’였는데, 음반판매만 가지고도 괜찮았어요. 외환위기 왔을 때도 잘 버텼으니까” 돈을 좀 벌겠다는 요량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호사가들만 즐긴다는 클래식 음반만을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매출의 압박이 심해지며 음향장비 등의 설비 쪽으로 매장의 영역은 넓어졌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오디오하고 클래식이 정말 밀접해요. 손님들이 오디오 정보 물어보고 저도 이래저래 알아봐서 알려주고 하다 보니까 설비 쪽을 하게 됐죠. 의도하거나 계획했던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흘러들어 왔네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수 천 장에 달하던 음반의 수가 줄어들고 음향 장비들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구 씨에게 음반판매는 단순한 영리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장비를 팔면 CD 몇 천 장 파는 것보다 돈이 되죠. 그런데 CD 한 장 파는 기쁨이 훨씬 커요” 이구 씨에게 음반판매는 단순한 영리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반을 사고 파는 행위는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음악이 공유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세상의 노래에서 세바스티안까지, 18년의 세월도 어찌 보면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 느낀다는 기쁨으로 버텨왔을지도 모른다.
이구 씨는 상과대학을 나왔다. 직장생활도 한 적이 있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미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클래식에 대한 그 자신의 취향은 뒤늦은 발견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듣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는데 용돈 생기면 음반 사는 데 다 썼죠. 그 때 LP판 한 장에 4천원 했는데 아마 수백 장은 사 모았을 거예요. 그러다가 아!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구나, 알게 된 거죠” 스스로의 취향에 눈 뜨게 된 건 뒤늦은 일이었지만 뜬금없는 발견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음악교사였고 어머니도 클래식 감상을 즐겼던 탓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했다. 단지 클래식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흘려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연은 내적 필연의 소산이라고 했던가.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미 어떤 필연성이 축적되어 있어서 꼭 그렇게 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운명과 같은 것. 이구 씨에게는 바로 그것이 성장과정에서 흘려듣곤 했던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알고 듣는 클래식은 다르다
클래식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고상함이나 우아함이다. 대개가 그렇다. 일반 대중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그래서 마치 높은 성벽이 에워싸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다.
클래식이라는 말 자체에 ‘계급적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걸 보면 이런 이미지나 시선이 꼭 그릇된 편견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몇 해 전,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백건우의 섬 연주회 사례는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반드시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건우는 갯바람이 불고 비린내 나는 물고기 가득한 어시장이 있는 항구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연주했는데 의도 자체가 클래식 연주의 전형을 깨는 파격이었고, 그래서 그 자체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와 항구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어민들도 백건우의 연주를 즐겼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클래식의 폐쇄성은 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편견과 상상의 영역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그 폐쇄성이란 깨뜨려야 할 장벽일까, 아니면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계일까.
대학 시절부터 30년 간 클래식을 해왔다는 이구 씨도 클래식이 지닌 폐쇄성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클래식이 지닌 폐쇄성은 분명 있다고 봐요. 하지만 시골 촌로도 얼마든지 클래식을 즐길 수 있죠. 클래식 들을 때 반드시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선험적인 학습을 통해서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알고 나서 듣게 되면 가장 덕을 보는 장르가 바로 클래식이거든요. 클래식은 대부분이 적어도 1세기 전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까 당시의 사회상, 역사, 작곡가의 생애 이런 부분들을 알고 듣는 거하고 그렇지 않은 거하고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어요.”
클래식이 특정 계층과 집단의 전유물로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클래식과 친숙해질 수 있어야 한다. 예술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제도를 통해 다양한 예술장르를 접하게 하고 예술에 내재된 가치를 발견하게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교육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예술교육의 본령은 악기를 연주하는 테크닉이 아니라 악기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오케스트라 교육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필수로 하잖아요.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협업에 대해서 알게 하는 거죠. 오케스트라는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부족해도 같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이런 게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이구 씨는 예술을 매개로 협업의 가치를 이해하는 교육방식은 분명, 사회 전반에서 예술의 저변확대가 가능하게끔 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장르의 예술이 한정된 계층에 한해서만 향유된다면 그것은 이른 바 문화 민주주의의 가치에 위배되는 일이며, 가능한 한 최대 다수가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소양을 지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클래식의 폐쇄성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구 씨가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클래식음반 전문매장을 지켜온 것도 어쩌면 클래식의 궁극적인 지평을 넓히는 데 있을 것이다.
음악감상회는 작지만 큰 책무
이구 씨의 클래식 이력은 음반매장 영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한 때
처음 매장 안에 들어서기 전에 매장외부를 전부 썬팅으로 처리한 이유가 궁금했다. 술집도 아닌 바에야 굳이 시선을 차단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되는 시각적 요소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구 씨의 클래식 사랑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일에 치이다 보니 클래식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는데 요즘은 한 곡 한 곡이 모두 새롭게 들린다고 한다. 마치 클래식을 처음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하니 또 한 번 불붙은 사랑을 시작할 기세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CD 한 장을 선물로 건네주는 이구 씨.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와 드보르작인데 구하기 힘든 음반이라고 한다. CD 표지의 젊은 정명훈을 보니 족히 이삼십년 전의 음반일 것 같다. 차에 타자마자 CD를 재생시켰다. 드보르 작을 먼저 들었는데 친숙한 선율이었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지만 당분간 드보르작에 빠져있을 것 같다. 이구 씨의 클래식 사랑이 옮아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