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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 | 문화현장 [문화현장]
모든 이들이 이별하는 역
김이정 기자(2015-04-01 13:30:56)

모든 이들이 이별하는 역

눈이 오는 겨울밤, 별어곡 역 안 톱밥 난로 주변에는 옹기종기 모여 막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초라하면서도 구수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국팔도 사투리로 진행되는 연극 ‘별어곡’은 정겨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연 없는 삶의 이야기는 없을 터. 이 연극은 그렇게 역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됐다.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은 연극 ‘별어곡(연출 오성완)’이 지난 3월 7일 아하아트홀에서 공연됐다. 연극 ‘별어곡’은 전국 7개 극단이 모여 공연을 올리는 대한민국소극장열전에서 선보이는 첫 합동공연이다. 일곱 개의 극단이 힘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각자의 지역색을 지닌 배우들이 모여 조화로운 하나의 작품을 이루어낸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작품은 시인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이미지화하고 소설가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을 바탕으로 한다. 오지 않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서민들이 가진, 각각의 사연을 잔잔하고 먹먹하게 풀어냈다.
각자 사연과 고단한 일상을 품고 ‘막차’를 타기 위해 작은 간이역으로 모여든다. 간이역을 지키는 역장, 가방할멈, 미세스양, 미스터정, 치매 노인과 아들 종구, 천안댁, 춘심, 그리고 미친여자….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단 하나 공통점은 ‘막차’를 타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별의 골짜기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오지 않는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 모여든 서민들의 애환을 잔잔하게, 혹은 먹먹하게 풀어냈다.
연극에서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인물은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방할멈이다. 그는 대합실 나무의자에 앉아 쪽찐 머리 매만지며, 기차표만 사놓고 타지 않을 기차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막차는 오지 않고 특급열차만 매번 허망하게 오고 간다. 공연은 무거워질라치면 춤과 노래가 등장해 극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었다. 클라이막스에 이를 때 쯤에 가서야 베일에 쌓여있던 가방할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정체는 위안부였다. 고향에 가고 싶지만 차마 갈 수 없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정체와 술집 작부 춘심이는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의 노리개로 떨어져 버린 이 두 여인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서로의 삶이 이어지는 삶의 단편은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의미로 느껴졌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떠나버린 텅 빈 역사를 보며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내뱉으며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읊조린다.
연극 ‘별어곡’은 인간의 이기심과 슬픈 현실을 결합시킴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무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해학적인 결말을 위치시킴으로 연극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다소 완곡하게 처리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별어곡’은 1970~80년대 우리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가치의 진실성을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네 삶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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