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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 | 칼럼·시평 [문화시평]
1980년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
김선태(미술평론가·예원예술대학교 교수)(2015-05-07 11:21:04)

19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미술계 주변
지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는 한국현대 정치와 사회적인 변혁은 물론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일종의 상징적인 시기라 할 것이다. 특히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었던 5·18민주화운동은 현재 지구촌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중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화운동이 지향해야 할 정신적인 지표로도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사에서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었던 1980년대 미술계 상황은 어떠했는가를 현재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1980년대와 한국미술전”을 통해서 그 내용과 형식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80년대 미술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바로 미술계의 구조적 변화이다. 그 구조적 변화 중 하나가 바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작가, 화랑, 미술관 등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인구의 증가이다.
이러한 미술인의 수적 증가는 그 만큼의 많은 가치관들을 생겨나게 하였고 이는 자연적으로 기성세대와 신진세대란 갈등구조로 나타났다.

순수와 참여의 극한 대립
예술과 인간,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크게 순수예술론과 사회참여예술론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이분적인 구분은 19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미술계를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80년대 한국미술은 서구 모더니즘 계통의 단색주의 추상미술과 현실 참여적 민중미술의 대결장이었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극단적인 이원화가 창작과 비평 양쪽에서 동시에 보이며,  순수와 참여, 자유와 경향, 추상과 형상 같은 해묵은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예술적 담론으로는 루카치의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자크 데리다 장 프랑소와 료타르 등을 토대로 평론가들의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논쟁을 축으로 80년대 미술의 큰 흐름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되었다. 반모더니즘(리얼리즘, 민중미술=참여)과 탈모더니즘(수묵화 운동, 한국성 찾기=순수)과 절충적인 제3의 흐름(포스트모더니즘, 신표현주의, 형상미술=형상, 자기의지)으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신표현주의의(형상미술) 번성과 함께 그동안 경시되었던 구상미술의 복원이다. 다시 손의 회복이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전통적인 그리기 기법, 예를 들어 드로잉에 대한 재인식과 이미지로의 귀환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국내 미술계는 추상미술 일변도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으로 하이퍼리얼리즘 등 새로운 흐름이 모색되었다.
 
80년대 수묵화운동과 그 이후
한국화가 서양화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든가 진부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데, 물론 그 양식상의 특징들에서도 그 요인이 없진 않겠지만 더욱 본질적인 것은 서양화의 전개양식을 보면 당대의 문화와의 긴밀한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비판해 왔음에 견주어 동양화는 그러한 당대의 문화와의 관계가 비약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당대적인 문화를 초연하려는 태도에서 넓은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수묵화 운동은 한국화분야에서 몇몇 중견작가를 제외하면 주로 신진작가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두 운동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는다면 단색화와 수묵화가 다 같이 절제된 색채에 의한 표현이란 점과 그것이 단순한 색채의 개념을 떠나 우리 고유한 정서의 문제 내지는 정신의 항상성에 귀속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형상성 미술
살펴보았듯이, 1980년대 미술을 통상 전과 후로 구분을 한다. 이는 특징적인 몇 가지 현상 등에 의해 나눠지는데 이러한 특징은 대체로 전반이 70년대를 극복한 이른바 제도권 미술과 민중미술이 첨예하게 나타난 반면 후반은 모더니즘의 후기적 양상이나 민중적 이미지의 예술에 그 나름의 형식적인 점검이 활발히 전개되어 막연한 민중 미술의 형식이 구체적인 매체로서 부각되게 되었으며 일종의 현장그림, 걸개그림, 대중의 교화수단으로 설명적 그림으로의 형식을 띄다가 집회나 데모의 현장에 설치 그 기능이 점검되기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오히려 형상성 미술의 근거지로는 부산의 미술을 예로 들고 싶다. 1980년~90년대 초 부산미술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던 형상미술은 미술의 정치도구화(민중미술)와 모더니즘의 자폐성(단색주의, 앵포르멜)이라는 양 극단을 지양하면서, 황폐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날선 의식과 독자적인 조형성으로 버무려 다양한 해석의 문을 열어놓았던 부산만의 독특한 미술양식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한국화단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전국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져버렸던 아쉬움과 미완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더 형상성 미술의 가치에 대하여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간혹 민중미술의 중심에 서있던 작가의 작품도 보이지만, 이번 도립미술관에 출품된 형상성 미술은 미술계의 보수냐 진보냐의 양축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인간적 혹은 개인적 문제에 천착하는 경향이 강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결국 형상성 미술이 포스트모니즘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때 서구적 모더니즘의 연장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형상성 미술의 중요한 성과는 형식의 변화와 그 내용을 중점을 두고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와 진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매우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항상 역사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예술에 있어서도 보수적 개념과 진보적 개념은 대립하면서 발전을 해왔으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어느 시대나 예술에 있어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공존하면서 첨예한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본격적으로 1980년대 이후 순수계열은 보수로 참여계열은 진보로 대립하였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분법적 시각과 사고로 미술을 구분 짓기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미술에 있어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의 재현이 아닌 미를 추구하는 예술로서 조형어법과 논리, 표현이념, 그리고 미적 개념에 대하여 존중과 공존의 장이 구현되기를 바라고자 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해묵은 논쟁과 갈등에서 비켜서 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 그나마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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