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3 | [저널초점]
문민정부 1년을 본다
운영개혁에 치중, 제도개혁에는 미치지 못했다.
신기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정치학(2003-09-19 09:33:41)
정부여당은 지난 1년간의 김영삼 정부의 개혁을 민주주의의 공고화, 도덕성과 기강 확립,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구조 정립 등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으로 평가한다.
반면에 야당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작업을 깜짝쇼, 인기에 영합하는 국정 운영, 특정인을 목표로 하는 표적 사정 등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일관된 역사성을 가지고 국민을 결집시키는데 실패하였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정권의 공과를 정당하게 평가하는데 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하고 빨라도 임기가 끝난 뒤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김영삼 정부의 개혁 1년을 돌아보는 것은 건국이래 46년 동안 단 한번도 진정한 개혁을 해본 적이 없던 상태에서 지난 1년 동안 국가 전체에 걸쳐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아는 것처럼 4.19혁명에 의한 모처럼의 기회는 5.16쿠데타로 그 싹이 잘리고, 소위 5.16과 5.18을 주도한 군부의 개혁은 권력 합리화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 정부의 개혁작업은 국가 전반에 충격과 자극을 주었고 분야에 따라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소위 위로부터의 부패 척결과 도덕성 회복을 겨냥한 준 혁명적인 결단으로서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김영삼정부의 출범자체가 가장 큰 개혁일 수도 있다.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30여년의 군부 출신에 의한 권위주의정치 시대를 마감하고 민간인이 지배하는 정부가 들어섰다는 사실보다 더 큰 개혁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개별적인 개혁조치들이 지니는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30여년에 걸친 특정 집단 출신의 권위주의체제를 구조적으로 붕괴시키면서 새로운 차원의 국가 기강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지역적 편중에 기반을 둔 지배연합의 구성을 재편성한 점이다. 셋째. 깨끗한 정치 실현의 시작이 또 다른 성과로 지적된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정치의 실현 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경유착의 지배체제의 성격을 변화시키면서 이를 붕괴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의 한계 또한 많이 지적되고 있다. 방법론에 있어서 지나치게 운영개혁에 치중하여 제도개혁에는 미치지 못하고 소수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과거 치유적, 즉흥적, 비체계적이며 이관된 국가통치나 경영전략의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혁작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작업이고 따라서 정치행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모든 정치작업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의도보다는 그 결과에 의해 평가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출발해도 결과가 나쁘면 그 의도는 무의미해진다.
이점에서 그동안의 김영삼정부의 개혁과정에서 나타난 한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문민정부의 개혁이 주로 인사개혁이나 사정개혁과 같은 운영개혁의 수준에 머물면서 표적사정, 인치논쟁, 사정의 형평성 문제, 위로부터의 개혁 등이 끊임없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제도개혁의 내용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개혁 의지의 강력한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제도개혁의 폭과 지속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개혁이 대통령이나 소수의 개혁으로 그쳐 다수가 개혁의 주체로서보다는 개혁의 객체로 되고 있다는 비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셋째. 개혁r이 미래나 세계를 향한 창의적 생산적인 개혁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처벌과 치유적인 개혁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신한국이 한국병의 치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개혁세력의 기본전략 때문에 더욱 부각되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넷째. 정치권의 역할상실과 무기력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사정개혁과 부패척결 운동 때문에 정치권이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략하면서 정치권이 탈정치화와 무력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문민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개혁세력의 인적, 물적제약이다. 정치권과 정부고위층의 개혁 주도세력이 양적, 질적으로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의 기반확충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혁세력과 개발세력의 연대가 모색되고 있지만 이들간의 갈등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통일정책과 노동정책의 혼선이 바로 그러한 사례가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의도적인 실수라기보다는 이상주의적 또는 도덕적 관점이 앞선 결과로 기존의 방대한 행정 관료기구를 움직여 가는데 시행착오를 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점에서 개혁정치의 주역들은 상당한 정도의 도덕적 고결성, 행정력, 지도력, 그리고 해당 문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정치발전이 곧 정치과정의 제도화로 구체화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개혁이 인치로 진행되는 한 개혁이 인치의 주체인 최고권력자의 자의적 결정권의 범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 정치상황이 지역이나 인물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치를 원론적이고 교조적으로만 주장하게 되면 자칫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과 제도는 이미 존재하므로 기왕에 존재하는 법과 제도를 통해 풀자는 이른바 법치주장으로는 사실상 정치개혁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누가 개혁하는가와 관련하여 개혁의 주체는 변하지 않고, 객체만 변하라고 하는 경우 기득권의 부동 내지는 구습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무엇을 개혁하는가의 존재론적 물음에서 장작 고쳐야 할 본질을 고치지 못하고 언저리만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개혁의 대상은 구정권으로부터 누적되어 온 정당치 못한 법과 제도, 형태와 습관 등인데 그것을 만든 사람, 그 의식과 사고, 그리고 행동양식을 과연 고칠 수 있는가 의문이 앞선다. 현재까지도 사람이 아직 같고 그 사람이 쓰는 방식이 같아 개혁의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여전히 높고 어느 세력이든 명시적으로 개혁을 부정하기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개혁 주도 세력의 이미지는 강하게 투영되고 있지 못하다. 개혁 주체가 단순히 권력 주체일 수만은 없다. 그들은 단순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개혁 지향적인 세력은 국민 각계계층과 여야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혼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산재해 있는 개혁세력과 개혁인사들을 하나의 틀로 집결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개혁 세력의 결집을 통한 역량강화는 기득권 옹호 세력과 자칫 대립하기 쉬운데 이 경우 선거 과정에서 본 것처럼 지역주의 정치 구도와 같은 걸림돌 때문에 자칫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적절한 언어 구사나 대중요법을 통한 존재론적 본질을 흐려나가는 단선적 사고를 청산하고 종합적 사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한국정치는 대통령에서 비롯되고 대통령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핵이 분열되어야 힘이 생기고 축이 분산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정치에서 개혁이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 운영에 관련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자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과감한 결정은 강력한 정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정부의 정책이 특정 사회집단에 이익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정부는 강력한 정책의지를 추진하면서도 비민주적 또는 권위주의적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 정치권력은 단순히 국민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세력의 정권 연장에도 관심을 보이게 되어 있다. 특히 선거에 임박한 정부에게 인기를 하락시킬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면 현 정부가 사회전반의 구조개혁에 어느 정도나마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가 않다.
1995년도의 지방의원 및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출범 2년을 맞이하는 김영삼정부의 개혁이 보다 적극적이고 철저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