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 | 연재 [시]
똥차
정양(2015-05-20 10:30:30)
80년대식 내 빛나던 소나타는
요즘은 털보 카 센터의 단골이다.
다른건 몰라도 엔진 하나는
요새 차보다 낫다고 가끔 위로도 받지만
시동도 유난히 오래 걸리고
여기저기 칠도 벗겨지고
시도때도 없이 덜덜거리고 쿨룩거리고
잘 나가다가 덜컥 시동이 멎기도 한다
노상 먼지가 끼어 있는 엉덩이에 누가
손가락으로 '똥차' 라고 써 놓고도 간다
누가 '똥차' 라고 끄적거리든 말든
저혈압의 이 고물차는 그래도 다시
시동이 걸리고 쿨룩거리기도 하면서
그런대로 한세상을 견디고 있다
아내가 아들딸들이 틈 날때마다
무슨 짓이라도 해서 차를 바꾸자고 한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똥차를
망신스럽게 끌고 다니냐고 성화다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몰고 다닌다고
이 세상에는 이런 차도 있어야 한다고
누가 뭐래도 엔진이 좋다는 이 고물차로 나는
세기말을 21세기를 달릴거라고 버티지만
아침 저녁 쿨룩거리며 가래를 밷을때
혼자 열받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을 때
그짓하던 잠자리에서 문든 시동이 꺼질 때
가파른 계단에서 숨이 찰 때 문득문득
나는 남몰래 내 고물차가 안쓰럽다
80년대식 자랑과 열정과 사랑만으로
한 세상 덜덜거리다가 마침내 시동이 꺼질
영영 시동이 꺼진 그 먼지 위에 누가
무심히 '똥차' 라고 끄적거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