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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특집 [먹거리 이야기]
조미료, 그 빛과 그림자
김두경(서예가)(2015-05-26 16:49:23)


 '조미료' 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화학 조미료를 떠올릴 것이다. 화학 조미료가 그만큼 보편화된 까닭이다. 끊임없이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으면서도 어느새 우리의 삶에 서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해 버린 것이다.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비롯한 천연재료들이 일정량 들어 있다느니, M.S.G가 들어있지 않다는니 하면서 우리를 유혹했기 때문인지 그 신비한 맛에 우리가 스스로 이끌려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러한 화학 조미료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화학 조미료에 빠지지 않았거나 유해성 논란이 있을 때 조미료를 벗어난 사람도 있긴 있지만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고 그러한 사람들도 외식을 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화학 조미료를 맛있게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화학 조미료는 정말 유해한가? 유해하다면 무엇이 유해하고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에서는 화학적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유해성 여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수많은 실험을 거치며 어느 정도 안전성을 확인했기에 더 이상의 논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러한 화학조미료가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성분이 인체에 들어가 해가 되지 않는지는 철저히 따져 결론이 안전하다고 나오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직접적인 피해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인 피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을텐데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본래 우리는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을 삶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런데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 삶의 기본을 가꾸어 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깊이 생각해 보면 화학 조미료의 피해는 물론 양념으로 불리는 천연 조미료의 남용에 대한 피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물건이 좋다는 것에도 질의 차이가 있듯이 사람의 감정에 좋다는 것도 질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즐겁다' 라든지 '즐기다' 라는 것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 의한 좋음이고 '기쁘다'는 것은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희열을 뜻한다. 사람은 때에 따라 기쁨을 추구할 수도 있고 즐거움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중에는 기쁨을 위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즐거움을 위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기쁨을 위주로 사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정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안정되고 탐구적인 정신적 삶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위주로 사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동적이고 가벼우며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육체적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 음식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먹던 음식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음식 보다는 손질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진득하고 정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즉흥적인 인스턴트 식품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 보급되는 음식을 주로 먹고 사는 현대인들이 보다 더 즉흥적이고 정이 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감각적 입맛을 자극하도록 연구된 화학 조미료가 들어있는 식품이나, 상업화를 위한 설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식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감각이나 감정을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만든다면 틀린 말일까?

 옛 성인들은 인공 조미료가 아닌 천연 조미료라 할 지라도 자극적인 것은 금했는데, 그 까닭은 자극으로 인한 심성의 편벽됨을 막고자 함이며 미세한 감각을 잃지 않게 함이었다. 또한 귀로 듣는 음악 조차도 자극적이거나 인위적인 굉음은 피하고 가장 자연스럽고 내면의 영혼에 감동을 주는 음악을 듣게 하며 성품을 기르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어떤 성분의 직접적인 유해성만 철저히 따진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이미 내면적 삶이나 정신적 삶 보다는 육체적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오던 전체는 보면서 부분을 보는 삶에 대한 기본 사상의 부재를 의미하며 물질문명 우선의 부분적 정밀 관찰을 위주로 하는 서구 문명에 완전 지배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된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도 있고 시대 조류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건강도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무너진다. 조미료를 적절히 써서 맛있게 요리를 하면 식욕은 돋우어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식도락과 과식으로 이어지는 향락적 삶은 결국 몸을 병으로 이끈다. 사회나 국가, 인간, 자신도 마찬가지다. 삶의 목표나 가치의 기준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은 불균형을 의미한다. 불균형으로 인하여 삶의 목표나 가치 기준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극단적 향락주의로 흐르게 돼, 인간도 사회도 다 무너진다. 그 시발이 음식문화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왜 마약을 금하는가? 그것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현재 그 순간만을 생각한다면 마약은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쓰면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용이라든지 사용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조미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정신을 좀 먹는다는 점에서 정도가 약한 마약이라 부르면 기우일까? 모든 것이 급하고 즉흑적이며 감각적인 이 시대에 왠지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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