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 도립국악원 개원 10주년을 기념하는 창극 <심청전>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처음에 도립국악원이 설립될 때에는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 지 매우 걱정이 많았었지만, 그 동안 도립국악원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하여, 이제는 전국적으로 볼 때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번 도립국악권에서 공연했던 창극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첫째, 전문연출가가 아니라, 경험이 많은 명창을 초빙하여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번 창극에서 연출을 맡은 은희진 명창은 판소리와 창극에서 이미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도창으로 명창 오정숙 씨를 초빙하였다. 전문 연출가만을 초빙하여 도립국악원 단원들과 함께 만드는 창극과는 처음부터 길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연출방향에서 밝힌 대로 소리 위주가 되었고, 이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지역 출신으로 중앙 무대에서 이미 소리와 연기력으로 최상의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은희진씨의 혼신을 다 한 열창과 연기는 오래 관객의 가슴에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도창을 맡은 오정숙 씨의 소리 또한 판소리의 진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두 번째는 삼성문화회관이라는 크고 좋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도립국악원의 주요 공연 무대는 전북예술회관이었다. 전북예술회관은 무대도 좁고, 시설도 좋지 않아서 제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성문화회관은 이러한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해 주었다.
세번째는 많은 제작비의 투입이다. 구체적으로는 얼마나 투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대 장치나, 소품, 그리고 의상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는데, 이는 충분한 제작비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경장사 선인들의 의상은 도사공과 다른 사공들을 의상만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하였으며, 천자와 황후의 의상은 조선왕실의 의상을 채택하여 한국적인 의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대장치, 조명, 소품 등은 가장 적절히 활용하여, 웅장하고도 신비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성공한 대목은 아무래도 인당수 투신장면을 들어야 할 것이다. 대형무대를 꽉 메운 웅장한 배와 조명과 소품, 음향 효과를 잘 이용하여, 깊고 푸른 바다의 장엄함과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효녀 심청의 비장함을 동시에 연출하는 데 성공한 이 장면은, 이번 공연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한 마디로 말하면,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몇가지 문제점은 앞으로도 계속적인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배역들간의 소리 기량의 격차이다. 연출자이자 주인공인 심봉사역을 맡았던 은희진은 이번 공연은 소리의 비중을 높여 판소리의 참맛을 살렸다고 했다. 은희진의 소리 기량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소리와 달라서 창극은 혼자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해서 조화를 잘 이뤄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은희진과 다른 사람들과의 소리 기량의 차이가 너무 컸다. 물론 도립국악원 개원 당시와 비교해 보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단원들의 소리 기량은 충분치 못하다. 소리 기량의 향상이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더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창극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해서 파생된 장르다. 게다가 아직도 장르로서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창극은 늘 판소리와 비교되기도 하고, 혼동되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의 창극 연출은 크게 보면 세가지 정도의 관점에서 이뤄졌다. 첫째 판소리의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 둘째, 극으로서의 특성을 중시하여 서구의 리얼리즘 극을 목표로 하는 입장, 셋째, 각종 민속극을 동원하여 마당극 형태를 시도하는 방향이 그것이다. 이번 창극 <심청전>은 1막에서는 소리 중심, 2막에서는 마당극 부분은 지나치게 해학성이 강조되어 전체적으로는 일관성, 혹은 통일성을 잃는 결과에 이르고 있다. 본래 <심청전> 자체가 앞 부분과 뒷 부분 사이에 심한 단절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출의 방향을 하나로 분명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는 과거에 성공적인 예를 받아들이기만 했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관성, 혹은 통일성과 관련해서는 등장인물의 소리 부분에 해설과 대사가 섞여 있다든가, 배경이 중국인지 우리나라인지 애매모호하다든가(이는 본래 <심청전>이 그렇기도 하다), 심봉사가 황후에게 아뢰는 데서 황후를 등지고 과낵ㄱ을 향하여 소리를 한다든가 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여서 아쉬웠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황봉사와 뺑덕이네의 연기가 돋보였다. 다소 과장이 너무 심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 데도 있었으나, 해학적인 연기로 관중을 시종일관 사로잡아 나가는 능력을 보여주어, 앞날을 기대해도 좋을 만하였다.
창극은 아직까지도 실험 중에 있는 미완성 장르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될 만한 준거 또한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창극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실험적인 것에 불과하다. 창극 연출에 과감한 실험 정신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정형의 창극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임무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작품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하지만, 실험성에 있어서는 보다 과감해 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