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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3 | [문화저널]
전선에서 숨을 거두다 김남주형을 보내며
박남준 편집위원, 시인(2003-09-19 09:41:08)
사람들이 자꾸 떠나간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전선의 한 복판에서서 온몸 온 가슴으로 질주하며 소리소리 지르던 추상같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간다. 못 다한 노래. 못다 이룬 노래.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이 몫으로 남겨둔 채……. 작년 겨울 어느 무렵 전북청년문학회에서 주관한 모음의 술판이 끝나갈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심한 낭패감과도 갗은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몇몇 사람들이 김남주 시인의 투병소식을 아느냐고 물었고 며칠 전에 전해 들었다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무섭게 말꼬리를 자르며 도대체 이 지역에서 문학한다는 사람들이 무얼 하고 있느냐는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쏘아댔습니다. 물론 나는 알았습니다. 그들도 암주형의 일이 자신들의 일처럼 안타깝고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었는 줄. 소리가 되어 악을 써댈 것 같은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냐는 말을 가까스로 삼켜넣으며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기억이 고문처럼 떠나지 않는 그 후로부터 한달여가 넘었을 무렵에도 나는 병문안을 가보지 못한 채 어정어정 거리며 간혹 들려오는 소식으로 병의 위중함을, 이젠 면회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남주형의 소식을 속절없이 들었을 뿐 이었습니다. 서울에 있었습니다. 현기영 선생님 댁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고 잠에 드는 듯 마는 듯 "남주가 죽었대"이른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현선생님은 마치 꿈을 꾸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분향을 하면서도 나는 물끄러미 사진속의 남주형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져서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나 와야 만나기 되다니 그러나 반가움은 잠시뿐 안타까움과 속절없음과 가슴 답답함과 깊은 우울과 슬픔에 싸인 채 모두들 술병을 비워나가는 일 외에 이미 무엇도 돌이킬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져들었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우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던 오철수 시인과 내가 술이 곤드레가 되어 목을 놓아 우는 동안 한편에서는 술병을 깨며 싸우며 초상집은 술렁대가고 다음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충청도에서 강원도에서 제주도에서 해외에서 사람들이 오고가고 아! 생각이 나요. 부의금 겉봉투에 지나가던 늙은이라고만 쓰인 채 근근이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음이 분명한 이름모를 노인께서 놓고가신 그 봉투 속에서 꼬깃꼬깃 그러나 가지런히 펼쳐쳐있던 돈 천원. 우리들은 그 돈 천원을 보며 다시금 남주형 생각에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고개 숙인 체하던 일에 손길을 가져갔었지요. 장례식 전날 경기대에서 열린 추모문학의 밤엔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렸습니다. 작년 겨울 김남주 문학의 밤에 이미 고인이 되신 문목사님의 '야 김남주 어서 일어나라'고 불호령하신 육성 녹음이 다시 지축을 울리며 살아 나올 때도 그리고 당신 남주형의 목소리로 마치 당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한 전사2의 시낭송이 울려 나올 때, 또한 김사인형이 그 애잔한 목소리로 남주형의 시낭송을 할 때도 사람들 많이도 많이도 소리죽여 흐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곳에서 치룬 영결식의 마지막 헌화가 시작되었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남주형의 아들 다섯 살 난 토일이가 꽃을 들고 아 그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이 그저 기분 좋고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려 햇살 같은 투명한 웃음을 피워 올릴 때 사람들은 사람들마다 가슴이 미어져 내렸습니다. 광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창밖으로 스쳐가는 햇살 좋은 겨울풍경이 비에 젖은 겨울 숲으로 보였던지 말문을 저마다 닫았고 이따금 무거운 정적들을 깨뜨리며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작은 목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도청으로 가는 길목에는 방패를 든 전경들에 벌 떼처럼 모여 길을 막아대고 최루탄과 페퍼모그차로 중무장을 한태 비켜주지 않아 안타까워했지만 우리들은 금남로를 달려 도청 앞 광장 80년 오월 그 잔인했던 오월의 현장을 달려서 달려서 전남대에서 노제를 지내고 망월동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주먹으로 눈물자위를 훔치며 노래했습니다. 함께 가지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 울먹이던 어깨들을 서로 부둥켜안았습니다. 서로 등 다독여 주었습니다. 남준아 이제 앞으로는 그 나약한 연애시 같은 것 쓰지 말고 힘차고 건강한 시 희망의 노래를 불러라 남주형이 한 일 년 전쯤 전주에 와서 하던 말 아직 내게 끝내 못 다할 숙제로 남아 있는데. 그러나 남주형 다 잊고 가세요. 이제는 그만 훨훨 그 무거웠던 짐 다 벗고 부디부디 잘 가세요. 이땅 곳곳에 아직도 싸워 해쳐 나가야할 전선 아닌 곳 그 어디도 없으므로 모두가 전선이므로 그리하여 전사로서의 형의 시는 도처에서 시퍼렇게 살아서 살아서 끊임없음으로 당신 김남주는 전선의 시인. 바로 전사이므로. "오늘밤/또 하나의 별이/인간의 대지위에 떨어졌다/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 투쟁의 과정에서/자기 또한 죽어 갈 것이라는 것을/그는 알고 있었다/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김남주 전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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