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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 | 특집 [저널의 눈]
진정한 가치는 '외연'과 '확장'에 있지 않았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김이정 기자(2015-06-01 11:36:50)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축제공간의 외연 확장이라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며 호평과 혹평 속에 막을 내렸다. 내용적으로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을 돋보이는 프로그램의 질적・양적 성장과 전주프로젝트 마켓의 흥행 등이 눈에 띄지만, 가장 주요한 변화였던 공간의 확장과 운영 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프로그램 양적 성장・전주프로젝트 마켓의 약진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흘 간 열린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총 6개 극장 17개관에서 47개국 200편의 영화를 440회차에 걸쳐 상영했다. 지난해 6개 극장 13개관에서 44개국 181편을 331회차로 상영한 것과 비교했을 때 양적인 성장을 거뒀다.
지난해 제3세계 영화로 주목됐던 남미 영화의 행진은 올해도 이어졌다.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문화적 명암을 드러낸 문제작들과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참신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영화 마니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부터 꾸준히 집중해온 한국과 아시아 독립영화 프로그램은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지만, 영화제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약진을 올해도 보였다.
특히 올해는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투자로 연결시키는 전주프로젝트마켓의 반응이 어느 해보다 눈에 띄었다. 
5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린 나흘간의 행사에는 160여개 투자와 제작, 배급사에서 460여명의 영화 산업 관계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만큼 집중력 있게 많은 영화인들이 마켓 행사에 참여했고, '인더스트리 서비스 데스크'를 통해서 행사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비즈니스 미팅이 진행됐다. 실질적인 극장 배급의 기회를 제공하는 '라이징 시네마 쇼케이스'도 첫 선을 보였다.
영화제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낮추지 않고 지난 7년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으로 나눠 꾸준히 진행해온 성과이다.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는 "전주 프로젝트마켓의 ID 신청인원이 지난해보다 느는 등 영화제에서 마켓에 대한 열기가 예전보다 뜨거워진 점은 긍정적"이라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상징적인 공간은 역시 '영화의 거리'
하지만 올해 가장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던 공간의 확장과 운영의 유연성에서는 호평과 혹평이 공존했다.
메인 상영관 교체로 늘어난 좌석수와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진행된 야외 상영, 정시입장 완화 등의 운영방침을 통해 역대 최다 매진을 기록, 영화제 조직위는 성공을 자평했지만, 이에 따른 우려와 지적도 적지 않았다. 
영화제 조직위에서는 올해 전주 영화의 거리, CGV전주효자점, 종합경기장 등 이 3곳을 잇는 '삼각벨트'로 상영장을 구상하며 국제경쟁과 한국경쟁, 단편경쟁 등 주요 섹션은 CGV전주효자점 주로 운영했으며 나머지 프로그램을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메가박스에서 상영했다. 낡은 상영 시설과 협소한 공간 등 한계를 이유로 지난해 개관한 CGV전주효자점으로 옮겼다.
또한 전주종합경기장에서는 야외 스크린을 설치해 개막식을 비롯한 영화제 이벤트와 4천 석 규모의 야외상영이 진행됐다.
이러한 상영장 배치를 두고 가장 빈번한 불만은 물론 '동선'의 문제였다.
영화제를 찾은 관광객 임현아(30세·목포)씨는 "지난해까지는 영화의 거리에 메인 상영관이 있어서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데 불편함이 덜 했다"며, "좋은 시설을 갖춘 상영관도 물론 좋지만 불편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민들의 참여를 위해 많은 예산이 투입된 야외상영의 경우에도 홍보 미흡 등으로 본래의 취지를 살려내지 못했다.
물론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도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올해 상영작 100편의 포스터를 디자인한 전시 프로그램 등 특별한 이벤트들을 마련해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주종합경기장과 영화의 거리 두 곳으로 영화상영을 제외한 부대 행사들이 분리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이다.
대중성과 축제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과감한 공간의 변화가 시도된 만큼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역할해온 '영화의 거리'에 대한 축제운영은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올해 역시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지만 전주국제영화제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영화제의 역사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닌 정체성과 상징성에 대한 고민은, 과감한 변화 속에서도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야외로 나온 스크린, 정시입장 완화, 최신 상영관 도입 등 이번 영화제의 주요한 변화들에 대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람객들의 편의, 쾌적한 상영환경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영화제가 지키고 가꿔온 '독립'과 '대안'은 편리성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운영 문제를 넘어 조직위 뿐 아니라 영화제를 즐기는 모든 이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지금껏 지켜온 주요한 가치들이 양적 성장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올해 영화제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빼놓지 않고 찾는 이들은 올해도 여전히 다른 영화제에서도 만나기 힘든 세계 변방의 영화들, 우리 독립영화의 구석구석에 '올인'하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수상작에 국제경쟁 부문 대상에 쥐 안치 감독의 '변방의 시인', 한국경쟁 부문에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감독 안국진), 한국단편경쟁 부문에는 '토끼의 뿔'(감독 한인미)이 대상을 차지했다. 비경쟁부문인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상영작 중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에서 시상하는 '넷팩상'에는 안슬기 감독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선정됐다.

 

<전주국제영화제평>

라제기 한국일보 엔터테인먼트 팀장

알차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들과 행사들을 살피면 드는 생각이다. 대중적인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은 적으나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즐비하다. 저평가된 수작들의 면면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현재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전주영화제는 좋은 영화제이나 화려하지 않다. 외형적 성장을 위해 대중성을 따르자니 정체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만만치 않은 딜레마다. 전주영화제는 최근 자신의 색깔을 더 진하게 하며 활로를 찾는 듯하다. 학구적인 영화들을 더 많이 상영하고 고도(古都)의 도시적 특징을 활용하면서 영화프로젝트마켓을 확장하고 있다.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나 방향은 옳은 듯하다.
6년 전이다.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를 취재하다 만난 독일 출신 한 여행작가가 물었다. 한국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외에 가볼 만한 영화제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전주영화제를 추천했다. 당연하게도 그 독일인은 전주의 존재조차 몰랐다. 1,000년 된 도시라고 말하자 그의 눈은 반짝였다. 오랜 고도에서 열리는 영화 축제는 여행작가의 직업적 호기심을 자극할만했다. 전주의 전통성은 영화제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4월 서울에서 열린 전주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도시 재생’을 언급했다. 시간이 저장된 오래된 장소들을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헤치지 않고 영화제에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개막식이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치러지고 이곳에서 여러 차례 야외상영회가 열린 배경이다. 남포동에서 출발해 해운대를 거쳐 최근 센텀시티로 거점을 옮긴 부산영화제가 덩치를 키운 대신 정취를 잃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고사동 영화의 거리는 비좁다고는 하나 전주 구도심의 옛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주영화제만의 강점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는 영화제의 매력을 떨어트린다.
시네마톨로지도 차별화를 위한 좋은 시도다. 전주영화제는 국내 ‘넘버2’영화제다. 부산영화제 다음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나 격차도 심하다. 예산 규모부터 5배 차이가 난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예산은 120억 원인 반면 전주영화제는 35억 원 정도다. 지역 인구와 지역 경제의 크기를 따져도 부산영화제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멀찌감치 떨어진 2등으로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거장들의 옛 영화들과 활동 궤적을 살피는 시네마톨로지는 미지의 대가를 소개하고 신진들을 개발하는 전주영화제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진지한 영화들의 향연이 영화 마니아들을 꾸준히 불러모을 수 있다.
마켓은 영화제의 생존을 위해선 필수다. 영화제 역사가 말한다. 마켓이 없는 영화제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고 성장을 모색할 수 없다. 세계 최초의 영화제이자 한 때 1등 영화제로 꼽혔던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추락 요인 중 하나가 마켓의 부재였다. 부산영화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안필름마켓을 창설한 이유도 분명하다. 아시안필름마켓에 기대 제2의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전주프로젝트마켓의 ID 신청인원이 지난해보다 늘었고 열기가 예전보다 뜨거워진 점은 긍정적이다.
좋은 영화제를 만들기는 어렵다. 시간이 필요하고 인재들의 노력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영화제가 망가지는 데는 오랜 시간도, 그리 큰 힘도 들지 않는다. 16년을 보내며 전주영화제는 전주의 자산이 됐다. 제법 앞길이 밝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한계를 딛고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전주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영화제의 효과적인 운영이다. 전주영화제는 다시 도약대 앞에 섰다. 올해는 좀 더 도약대에 좀 더 다가서는 한 해였다.

 

주성철 씨네21 편집장

안정을 바탕으로 한 성장이랄까. 2013년 적잖은 내홍을 겪은 전주국제영화제가 고석만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가 이끄는 집단 지도체제로 탈바꿈한 뒤, 그러한 안정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해가 바로 16살을 맞은 올해가 아닐까 싶다. 국내의 각종 국제영화제들은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의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인데, 5월의 칸국제영화제를 분기점으로 '상반기의 전주, 하반기의 부산'이라는 공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야외상영장과 CGV전주효자점을 사용하게 되면서 상영관 수가 대폭 늘었음에도 매진작이 늘었다. 그것은 단지 관람객의 증대라는 가시적인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칸국제영화제나 로카르노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여러 영화제의 '야외상영'은, 지역민과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 영화제의 어떤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단적으로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메인 경기장을 '전주성'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전주 시민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4000여 명 수용 가능한 전주종합경기장을 올해부터 대규모 야외상영 무대로 끌어들인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평소 답답한 실내 상영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외상영의 해방감은 영화제가 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전주성'이라는 작명법처럼 그 야외상영장 또한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변모할 것이다.
오래도록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 GV(관객과의 대화) 등 몇몇 행사를 맡아본 입장에서 보자면, CGV전주효자점 또한 상영관의 확대로만 얘기할 수 없다. 이제 전주는 수많은 스타들이 찾는 영화제가 됐고, 그들을 향한 배려 또한 중요하다. '영화의 거리'는 종종 관객과 스타가 직접 마주치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 배우 입장에서는 가끔 곤혹스러운 경험을 주기도 했던 것. 그런 점에서 지하주차장과 메인 상영관을 한 번에 연결하는, 쉽게 말해 배우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상영관에 당도할 수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가 주는 안정감과 신속함은 규모 있는 영화제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길거리에서 느닷없이 스타를 마주치는' 깜짝 놀랄 경험이 줄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규모와 초청 행사를 더 늘려가야 할 영화제로서는 반드시 이를 수밖에 없는 단계인 것이다.
물론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영화의 거리' 그 자체에 대한 집중도 또한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의 여러 국제영화제 중에서 전주만큼 마치 '서클' 모양으로 '영화의 거리'가 조성된 곳은 없다. 돌고 돌다 보면 누군가를 계속 만난다. 여러 영화제들을 다녀 봤지만 전주처럼 계속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또 마주치는' 영화제는 없다는 얘기다. 마치 해운대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기 전,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의 남포동 극장가 못지않은 정겹고 흥미로운 환경적 요인이다. 상영관의 확대만큼이나 영화의 거리를 지금보다 더 멋스럽게 만드는 것도 영화제의 미래를 위해 중요해 보인다.
프로그램 측면에서 보자면,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를 비롯하여 이상용, 장병원 프로그래머가 이끄는 프로그램팀의 감식안은 가히 국내 영화제들 중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영화 전문지 <씨네21>을 비롯하여 <필름2.0>에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탁월한 팀웍을 과시해왔다. '굳이 프로그래머들끼리 가깝고 호흡이 잘 맞아야 프로그램이 좋은 것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덧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디지털 삼인삼색'부터 여러 특별전, 회고전에 이르기까지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영화인과 관객이 길게 대화할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까지 마련하는 등 그들은 단순한 내실 다지기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부터 내년 전주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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