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가 지닌 전통고도의 이미지를 뒤집으면 그것은 한편으로 폐쇄성으로 통한다. 그만큼 전주는 상대적 저발전을 겪어왔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약하고 타성에 젖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탓일까. 빠르게 94년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영상산업단지는 지금, 무성한 논의만 낳은 상태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고 때문에 이렇다 할 용역보고서 한 부 마련해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이고 예산이고를 다 떠나서 일반 시민 누구 하나도 영상산업에 대한 명쾌한 이해나 필요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상황이다.
2006년 건립을 앞두고 있는 영상산업단지는, 지금 전주시가 계획중인 영상종합랜드와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영상종합랜드는 한마로 서울랜드나 에버랜드, 민속촌 등과 같은 관광산업단지이고, 영상산업단지는 애니메이션 산업과 컴퓨터 게임 및 소프트웨어 생산 등 멀티미디어 산업을 꾀하는 첨단 정보산업과 영상산업 그리고 문화산업의 결합체이다.
영상산업단지의 추진과정을 편의상 세 단계로 구분하면 94년부터 95년 중반까지의 모색단계, 95년 중반 이후 영상산업단지에 대한 연구와 협의가 구체적으로 시작된 준비단계, 그리고 96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의 구체화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처음 전주에서 영상산업단지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익히 알려진대로 94년 전북 과학기술발전포럼에서 이상희 위원장이 전주가 영상산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사실은 아직 영상산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조차도 분명치 않았던 시기였다. 다만 당시 이강년 전북도지사와 이건재 전주시장이 이 사업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94년 하반기 과기처는 전북대에 영상산업단지 연구용역을 맡겼고, 전북대는 영상산업단지 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때만해도 전주의 영상산업단지는 행정기관의 무관심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고 여기에 이강년 지사와 이건재 시장이 경질되면서 전주시나 전라북도 행정에서 영상산업은 실종되고 말았다.
95년 하반기 전북대에서 영상산업단지에 관한 용역결과가 발표되고 민간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계속 주장되면서 영상산업의 불씨는 어렵게 살아나가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상산업연구센터의 곽훈성 교수(전북대)나 전주문화방송 이종성 부장 등이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민선 단체장들과 전주시에서도 막연하게나마 영상산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암중모색되기 시작한 영상산업은 96년 9월 전주시가 정보통신부에 미디어밸리 유치를 신청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디어밸리 인천 송도로 확정되었지만 이 사건은 전북의 영상산업단지 구상에 큰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전주 영상산업은 97년 2월 전주시가 영상 종합랜드의 청사진을 발표하고, 8월에는 여기에 영상산업단지 20만평을 조성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보다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전주시는 만성동 일대로 영상산업단지 지역을 선정하고 관련법규를 검토했으며 심포지움을 여는 등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4일 열린 <97 전주 영상 축전>은 전주시와 영상산업연구센터의 노력으로 이루어 졌다. 이 행사는 짧은 기간에 준비되었고 그만큼 영상산업의 모든 것을 완정하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영상산업이 대중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앞으로 인천 송도로 확정도니 미디어밸리의 지역 거점으로 전주가 확정되고 아직 국회에 묶여있는 [멀티미디어폴리스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전주의 영상산업은 어쨌든 한 고비를 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전주의 영상산업 발전에 가장 큰 장애는 많은 사람들이 영상산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전주의 경우 영상산업에 필요한 잠재인력의 풀(pool)이 충분하고 오염되지 않은 쾌적한 환경을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조달이나 실질적인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그리고 영상산업단지는 전주시 만성동, 전주대와 서부 우회도로 사이의 황방산 부근 일대에 19만평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거기에서 영화 스튜디오, 인터넷 전시장, 정보통신도서관, 소프트웨어 파크, 미디어 아카데미 등이 들어설 계획인데 하나디로 요약하자면 연간 자동차 수출액의 5배로 추정되는 영상 애니메이션 제작산업과 그 10배의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영상산업과 관련된 연구원, 엔지니어 등의 고급인력 유치로 지역의 학교수준이 향상될 계기가 마련되고 영상 관련산업 문화관광은 물론 금융서비스업 등 3차 산업비중이 높아져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멀티미디어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컴퓨터, 통신 기술분야의 활성화도 기대해 봄직 하고 특성상 멀티미디어 기술은 모든 산업전반에 걸친 고급화가 이루어 질 전망이다. 물론 고부가가치 산업을 통해 지역경제의 성장축으로서 상당한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단 영상산업단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금물.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행정, 학계 등 모든 구성원들이 장기적인 정보화 마인드를 조성해야 하고 차근차근 풀어가야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