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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 | 칼럼·시평 [강준만의 문화비평]
호남차별과 지역감정에 대한 단상
강준만(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2015-06-05 16:11:26)


 '호남 차별'이면 '호남차별'이고 '지역감정'이면 '지역감정'이지 왜 그렇게 제목이 복잡하냐고 문제삼을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에 '호남차별'이라는 말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그런 분들을 위해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계속 그런식으로 쓰는 건 너무 어려운 만큼 앞으론 '호남차별'로 통일해 쓰겠다. 나의 그런 편견(?)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나는 그간 호남차별에 대해 어지간히 많은 글을 써 왔다. 「 전라도 죽이기」라는 살벌한 제목을 단 책까지 내기도 했다. 그런데 난 지역문제에 관한한 효용이 끝난 글쟁이다. 부모 고향이 황해도라는 걸 밝혀가면서까지 내 주장의 설득력을 높여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전라도에서는 국민학교를 나왔고 현재 전라도에서 살고 있는데다 그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라는 김대중을 적극 옹호했던 죄(?)로 나는 지역문제에 관한 발언에 있어서 범국민적인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침묵할 내가 아니다. 권위있는 사람들의 발언을 골라 모아 소개하는 역할도 있지 않는가. 사정이 그러한 즉 내가 이 글을 남의 말을 잔뜩 인용하는 걸로 채운다고 행여 나를 불성실하다고 꾸짖는 독자가 없기를 바란다.

 "호남에서 97%나 김대중에게 찍었다는데 공산당이여 뭐여. 우리도 다음엔 본때를 보여줘야 해. 99%를 찍어 정권을 되찾아와야 해."

 어떤 대구 사람이 열을 내며 한 말이다. 대구출신인 김진홍 목사는 「중앙일보, 98년 1월 4일」자에 기고한 '민족 개조론' 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그 말을 소개하고 있다. 친지들 몇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그렇게 말한 친지를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선거가 지난 후에는 자기가 찍었던 사람이 누구였느냐에 관계없이 당선된 사람을 밀어야지요. 호남에서 97%를 밀어서 김대중 대통령이 나왔으면 이제는 전국민의 97%가 그를 밀어 새정치를 이루어나가야지요. 이제는 '호남사람' 김대중이 아니라 우리 대통령 김대중입니다."

 옳은 말씀이다. 김 목사에게 존경을 표한다. 아직도 다음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남인이 있다면 나는 그런 분들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이야기다. 울산 노동자 글쓰기 모임 '우리글'회원인 김은미씨는 「작은 책」97년 12월호에 '전라도 사람이란 이유 때문에'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말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악담들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독해서 경상도에서 살 수 있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 가면 살 수가 없대.' 또 김대중이는 빨갱이고, 그 영향을 받아서 전라도 사람들도 모두다가 줏대없이 무조건 김대중을 밀기 때문에 절대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나는 김대중 때문에 내가, 아니 전라도 사람 모두가 욕을 먹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친구들 속에서 천천히 주눅들었갔다. 우리는 결코 남에게 해코지 한 적이 없는데 어찌 해코지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전라도 사람이고, 왜 전라도가 고향인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해옹이 나쁘게 비칠까만 곱씹으면서... 이런 친구들 틈에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척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빨리 이야기를 끝맺기만을 아슬아슬한 맘으로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내 고향을 말하는 데 티끌만한 망설임도 없지만 가끔씩 아무것도 모르고 막연하게 전라도 사람을 욕하는 아이들을 대하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이 이야기를 듣고도 아직도 다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남인이 있다면 나는 이번에 전주 한일 신학대 김영민 교수가 「시사저널」97년 12월 25일자에 기고한 '부산내기의 전라도 사랑' 이라는 글의 일부를 들려 드리고 싶다.

 "나는 이른바 '지역감정'의 볼모가 된 적은 없었다. 경상도를 지역적 배경으로 살아온 탓에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 규모 없이 드러나는 경우를 '당연히' 목격하곤 했지만 무분별한 지역감정을 극력 자제해왔다. 이것은 내 심성 이전에 내 삶을 주도하는 사고방식이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전라도'는 낯선 땅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다소 기이한 낯섦이었다. 나는 이 기이한 낯섦이 소문과 편견으로 학습되고 조작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한 나라의 이웃 지역에서 느껴야 하는 이 기이한 낯섦을 혐오하고 또 부끄러워했다. 당연히, 고향이 아닌 곳에서 느끼는 인상이야 우선 낯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라도, 특히 전라북도에 살게 되면서 느꼈던 그 낯섦은, 표정과 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특별히 역사와 구조의 문제라는 점에 그 특이성이 있다. 이 곳 생활이 안정되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나는 생생한 체험을 통해 이 곳 전라북도의 소외상을 알게 되었다. 책이 일러주던 것이 이곳의 생활과 언어를 만나면서 그 실체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가 이 곳 지식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냉소적으로, 그러나 절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접하면서 나는 이입된 아픔에 몸을 떨었다."

 김 교수에게도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호남의 소외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김대중 후보가 영남에서 TV 토론회를 가졌을 때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인구 1백만인 울산에 대학이 2개 밖에 없는데 인구 2백만인 전북엔 대학이 21개라고 한다. 이건 영남 차별이 아닌가?" 인용한 통계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런 요지의 질문이 나온 건 분명하다. 전북이 경제 규모에 비추어 대학이 많은 것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닐 게다.

 경제 사회적 통계 수치만으로 호남 소외를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통계로 이야기하자면 대구 사람들은 무엇이 전국이 꼴찌라고 아우성 칠 게 분명하다. 대구, 경북을 합해서 계산해야 한다고 반론을 펴봐야 씨알도 먹히질 않는다.

 지역간 불균등 발전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권력과 부가 몰려있는 서울에서 일어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인 백현락씨가 '대한민국이 망한다' 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쓴 「한국분 한국인 한국놈」(도솔,1997)이라는 책을 읽다가 그가 영남 패권주의에 대해서도 직언을 아끼지 않는 걸 보고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부산 출신이기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리라.

 "서울로 올라와 전라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 나에게 가장 큰 수학은 얄궂게도 경상도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한 방송국의 PD회의에 참석한 18명중 놀랍게도 13명이 경상도 출신들이었다. 한 신문사는 부장 이상 임원중 반 이상이 경상도였다. 그 후 나의 호기심은 꼬리에 꼬릴 물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조직의 경상도 사람들의 비율을 캐묻고 다녔다. 재벌회사, 경찰, 군인, 검찰, 법조계, 심지어 문화계까지 다 뒤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나라 인구의 30퍼센트에 불과한 경상도 출신들이 요직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최고위층, 즉 결정권을 가진 실세 요적의 80퍼센트 이상이 경상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앞장서서 전라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부패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을 결성하고 그 지위를 수구하기 위해 개혁을 거부한 죄인들로 낙인 찍혀, 그들이 큰 형님으로 모시던 두 전직 대통령의 꼴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아니 영남 패권주의도 좋다. 진짜 문제는 '전라도 놈들은 어떻다"는 식의 인간적 모멸이다. 리영희 선생은 「한겨레」89년 1월 7일장에 쓴 칼럼에서 호남차별과 관련하여 뜨거운 불을 토했다. 나도 말을 어지간히 뜨겁게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지만 감히 그렇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그 발언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보겠다. 

 "인과관계의 구조에서 말하자면, 호남 지역감정이란 영남인들과 그들의 수혜자 격인 그 밖의 지방인의 '경상도 지역주의'가 강요한 결과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그들이 독점한 국가권력의 위력을 업고 전라도 사람들을 마치 '불가촉천민'시하는 듯 했다. 그 허구의식으로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선인'인양 착각하는 오만과 악덕에 빠졌다…김영삼 정권 5년에, 이른바 왕년의 'TK'로 불리는 경상북도 사람들이 모든 혜택을 경상남도에 빼앗겼다고 불만이 크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동정이 안 가는 바 아니다. 하지만 30년간을 권력과 돈을 독점했던 'TK 지역' 주민들이 불과 5년간의 '푸대접'에 격분할 때, 한 번 쯤은 40년 가까이를 경상남북도 영남지역 지배하의 나라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삼켜야 했던 전라도 호남인들의 심정을, 한 번쯤은, 생각 해볼 만도 하다…많은 호남 출신이 직장에 남기 위해서 또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그들의 호적을 바꾸었거나 전라도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살려고 애쓰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알고 있다. 그들은 '3등 국민'의 처지였고, '내국식민지'적 멸시를 당했다. 주장할 의견이 있어도 참고 소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동포 집단의 큰 부분에 강요된 '자기 부정'이고 현재적 '소외'였다.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서 한번 생각해보라.... 오랫동안 나라의 따스한 양지를 독차지하여 호남지역 주민들에 음지의 삶을 강요했던 영남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먼저 자기 비판과 반성의 소리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리영희 선생에게도 뜨거운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무척 억울하게 생각할 영남인들이 많은 것이다. 특히 생계에 허덕이는 가난한 영남인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께선 행여 오해없으시기 바란다. 리영희 선생은 대체적인 경향을 이야기한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 경제 난국 관련하여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지만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는 말에 얼마든지 수긍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막상 써놓고 보니 이 글 자체가 또 괜한 소리들의 모음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역문제는 워낙 절벽이라서 말이다. 그냥 몇가지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한마디 결론은 내려보자. 지역문제는 영남인들이 풀어야 한다. 호남인들에겐 주도권이 없다. 그들은 반사적인 대응만을 해왔을 뿐이다. 나의 이런 시각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준 영남인들도 적지 않았기에 나는 희망을 완전히 버리진 않고 있다. 그들에게 존경과 아울러 뜨거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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