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시민들에게 TV는 아주 쓸만한 물건이다. TV화면속에는 우리 삶의 모습들이 숨쉬고 있고 때로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도 있고 또 유용한 정보 전달의 창구역할도 하고, 무엇보다도 심심할 때는 더 없이 좋은 친국가 되어준다.
TV를 '물건'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TV를 우리가 이용하는 단순한 생활용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TV는 켰다 껐다하는 용품이 아니라 그 속에 수많은 상업논리와 매카니즘을 내재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아주 중요한 마인드 메이커이다. 미디어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TV는 매체의 한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특히 지난 97년 대선을 통해 TV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공감했던 바이다.
이렇듯 우리는 스스로가 TV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로 TV에 의해서 우리의 현실인식과 판단이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듯 싶다.
그러면 우리가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접하는 TV장르는 무엇일까? 그것은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주부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오전에만도 재방을 비롯한 7-8편의 드라마가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의 즉각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드라마이고 다소 비현실적이고 사회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크게 질책받지 않는 것도 드라마이다.
TV드라마란 대중의 삶과 연계해 있으면서 지극히 일상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중파 4개 패널을 통해 매주 25편이상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면 비현실적, 비사회적 내용만을 쫓아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재미와 눈요기만을 제공하려는 드라마도 상당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방송중인 드라마 중 KBS의 <진달래꽃 필 때까지>는 그러한 문제점을 여러 가지 안고 있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 '북한가극의 완벽한 재연'과 '권력에 짓밟힌 한 인간의 삶'에 초점을 둔다고 대외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문제를 다루고 더구나 실제 내용을 드라마화 한다는 것은 지극히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라 해도 잘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의 실제 인물인 귀순 무용수 신영희 씨가 KBS를 상대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놓은 상태에서 이 드라마의 방영은 한 개인의 사생활 정도는 우습다는 방송사의 지배논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허나 이렇듯 시끌벅적하게 시작된 이 드라마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말처럼 과연 제작의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구심 마저 들게 한다.
북한 가극의 완벽한 재연은 몇 커트의 단순화면 처리에 그치고 오히려 북한 기쁨조 공연의 완벽한 재연에 치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드라마 흐름에 상관없이 전라에 가까운 기쁨조 무용수들의 노출과 강간장면 등은 차라리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대선 이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할 때이고 남과 북이 서로 경제적 위기 상황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해외 로케비용을 들이고, 한 귀순 무용수가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펴낸 책을 이용해 드라마를 만들고 방송해야 할 필요가 있나 너무나 궁금하다. 더구나 북학의 보복 위협까지 받으며 꿋꿋이 방송해서 우리 시청자들에게 꼭 알려야 할 내용이라도 담고 있는가 말이다.
TV가 거꾸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는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다. 방송의 가장 큰 책임은 정확한 사회인식과 거짓없는 전달이다. 우리 시청자들은 이 단순한 논리의 책임을 묻고 함께 나누어야 하며 화면 속에 나타나지 않는 이면의 내용까지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TV를 보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수 있게 된다. 또한 <진달래꽃 필 때까지>와 같은 시대착오적 드라마에게는 우리의 '화'를 참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