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8.2 | 칼럼·시평 [문화비평]
전북 연극의 새로운 바람
극단 '하늘'의 <남자충동>공연을 보고
김정수(전북도립국악원 기획실장)(2015-06-09 16:46:58)


 극단 '하늘'의 창단 공연을 보러 나서자. 불현 듯 5년전 이 무렵 같은 장소에서 <디딤 예술단>의 두 번째 공연 <상자 속의 사랑 이야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창단 공연은 아니었지만 대극장의 창단 공연 이후 본격적으로 소극장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첫 작품이었기 때문에 기억에서 비워지지 않았다. 더구나 5년전이라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때 역시 대선 직후의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년 후, 그 극단의 이름은 찾을 길 없고 또 다른 극단의 의욕에 찬 출발을 지켜보게 되었다.

 뒤돌아 전북의 극단사를 살펴보면 최소한 10년 이상을 활동한 극단이 전주의 '창작극회', '황토', 그리고 익산의 '토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지속적인 공연 활동이 중단되고 구성원들이 완전히 바뀐 상황까지도 포함해서 그렇다. 십년은 고사하고 창단공연이 고별공연이 된 극단도 많았으며 심지어는 단 한 차례의 공연조차 해보지 못한 극단들도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단 한명의 대표가 홀로 극단의 깃발을 들고 서있던 '빈 깃발의 시대'(?)도 있었다.

 85년 '전주시립극단'이 생기고 그래서 관립극단의 시험기를 지나서 이제는 관립극단과 민간극단 구성원들이 나름대로 연극에 관한 입장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극단 출현에 관한한 상당 기관의 공백을 깨고 이번 겨울, 젊은 연극을 표방하는 극단 '명태'와 극단 '하늘'이 잇달아 창단공연을 하면서 연극계에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월 2일부터 11일까지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하늘'의 <남자충동>도 이 바람 중 하나다.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바람의 색깔과 방향을 주의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남자충동>은 가난하고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주먹을 통해 입신을 꿈꾸는 한 남자의 짧은 삶과 좌절을 그림으로써 가정과 사회에 만연된 폭력과 왜곡된 남성상을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노름꾼의 아들로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란 이장정은 무능력하고 충동적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남성다운 용기로 충만한 자신이 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알파치노'의 영화 <대부>를 자기 삶의 전범으로 삼고 끊임없이 영화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 비교는 곧 모방이다.

 연출은 작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작품을 끌고가는 힘을 단연 속도감에 두었다. 속도에 시린 전라남도 사투리는 작품 전체를 힘있게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이 사투리는 "쪼사버리고 싶은" 세상을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와 정복의 욕망을 표현하는데는 더 없이 좋은 언어였다. 더구나 독백과 대화 사이를 발빠르게 오가는 화법은 두 시간을 넘기는 공연의 지루함을 덜어 주었다.

 작품 안에 생성되어 고인 힘은 곧장 주인공 이장정이 꿈꾸는 힘으로 전환된다. 관객들은 따라서 이장정의 반사회적 꿈에 은근히 매료되고 그에게 심정적으로 기대어 극을 지켜보게 된다. 그가 아버지에게 행사하는 폭력에 순간 눈살을 찌뿌리다가도 아버지의 부정적 모습에 슬그머니 그 폭력을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욕투성이와 무지가 배어나오는 말투에 거부감을 느끼다가도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사랑에 고개를 끄덕거려주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짜임새 있으면서도 그적 재미를 담고 있는 희곡에 전북지역의 역량 있는 배우들이 가세한 덕에 <남자충동>은 창단공연 치고 무난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처음엔 의미심장한 메시지처럼 들리다가 극이 진행될수록 짜증스럽게 반복된 베이스 기타의 단조로운 음악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으며, 단단과 달래가 가끔 사실적 연기를 벗어남으로써 극 전체의 흐름과 부조화의 느낌을 주었다.

 작품이 던져주고자 하는 힘에 관한 생각도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 <남자충동>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부모와 자식간의 힘의 세대교체가 어느 순간 강하게 다가오다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적 폭력에 관한 고민을 끄어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인간 본성의 파괴와 폭력본능, 그에 맞서는 선의 지향이 갈등의 축을 이끌고 있기도 한다. 이런 힘의 분산 수용이 극의 다양한 해석과 그에 따른 재미를 증가시켜주지만 한편으로는 주제를 산만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잇달아 창단 공연을 갖는 '하늘'을 비롯한 극단들의 공연 특징은 이미 다른 극단에서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대거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궁여지책일 수도 있고 극단의 성격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전자의 문제가 부각될 경우, 무모한 극단 창단이라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고, 후자의 문제가 강할 경우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실험적 거사라고 볼 수 있다.

 열악한 지방 연극계 상황에서 지역 연극을 유지해온 힘은 연극을 향한 철저한 자기희생을 해온 동인정신이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사명감으로 지탱해온 극단 운영 방식이 전통적인 것이라면 이제 P.D 시스템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실험 단계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극단 경영방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제 되어야할 원만한 환경이 있어야만 한다. 기획과 제작이 안정 속에 추진될 수 있는 재정의 확보, 관극 인구의 학대, 질높은 작품의 생산 능력, 개인적으로 관객 동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타급 배우의 발굴 등만이 이런 방식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올해로 도내 대학은 세 개의 연극 관련학과를 갖게 되었다. 아직 백제 예전을 제외한 다른 대학에서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수년 후의 전북연극은 최소한 연극인구에 관한한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각 대학에서 어떤 교육 플로그램으로 연극 지망생을 양성한냐도 문제이지만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 화동하기 용이한 토양을 제공하는 일도 현재 활동중인 연극인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욕적인 극단 창단과 기획활동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그런 의욕이 중도에 꺾이지 않고 더 많은 결실들을 얻어내기를 기대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