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3 | [문화저널]
환경을 생각한다
국민성과 오늘의 환경문제, 그 관계
유영진 환경운동연합전북지부사무국장(2003-09-19 09:46:13)
몇 해 전 부안 격포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모래사장 근처 멀지 않은 곳에서 공동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몹시 급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서 달려 들어갔지만 문제는 심각했다.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접근이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급한 처지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들어갔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더 이상 한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흘러 넘쳐 오물이 안에서 버티다 못해 입구까지 점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빈자리가 있을까 해서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수 없이 아쉬운 마음에서 발길을 돌리는데 난처한 일이 발생하였다. 미국인 2명과 한국여자 2명이 이미 위험지대를 넘어서 입구까지 접근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행동이 마치 전쟁 중에 집 수색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나와 똑같은 처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더 들어가서는 안 되는데 하는 순간에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고무줄처럼 튕겨 나오는 미국인들을 보고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거친 말투와 미국인들의 과장스런 제스처로 호들갑을 떨던 모습. 그 중에서도 한국여자 입에서 욕처럼 튀어나온 '한국 국민성이란 어쩔 수 없어'라는 말.
괜스레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죄지은 사람처럼 목이 움츠러들었던 내 모습 그리고 그 이후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추억.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일본 시의원 몇 분이 전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때가 전주 시민의 날이었기 때문에 덕진 연못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어 시내 관광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통역을 해주시는 선생님 한분과 함께 덕진연못을 찾았고 만흥ㄴ 사람들 때문에 다소 고생을 하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관광을 마친 후 돌아오는 차 속에서 우연히 환경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서 오늘 덕진 연못에서 어지럽게 널려진 쓰레기와 함부로 버리는 시민의식에 대하여 초점이 맞춰졌고 통역선생님과 나는 일본인에게 그러한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점을 걱정하며 맞장구를 치던 중 그 통역선생님으로부터 우리 국민은 국민성이 나빠서 고쳐지질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한 심기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의식에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좋은 의미로 출발한 이야기가 결국 우리 국민성의 결함에까지 귀결되어 자조적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그 말의 폐해에 대한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나오는데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처음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우리 국민성이 나빠서 공공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후진국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문제를 엄밀히 따져보면 바로 그러한 말은 우리국민을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는 광주항쟁 당시 무정부 상태하에서 시민이 보여준 질서의식이 대표적인 예이고 그에 반하여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약탈과 폭동으로 얼룩진 미국시민의 행동을 보면 우리 국민성이 얼마나 고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비교적으로 나타난 예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에서 꺼냈던 화장실 이야기는 우리 국민성이 나빠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유원지를 충실히 관리하지 않은 행정에 일단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만약 공동화장실을 수시로 청소를 하게 했다면 절대로 오물이 입구까지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덕진연못에서 쓰레기 문제도 청소원을 곳곳에 배치시켜 넘치는 쓰레기를 바로바로 치워주고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꾸준히 계보를 했다면 그렇게 최악의 상태로까지 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원인 행위가 있기 마련이며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서나 출발하고 있는지를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적극적인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요즈음 환경문제가 심각히 대두되면서 아무렇게나 휴지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등산을 하거나 유원지를 가보면 오히려 비닐봉지에 자기 쓰레기를 잠아오거나 주변 쓰레기까지 치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시민 고발정신도 날카로워 공장이나 공해 업체에서 환경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시민의식이 날로 높아져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환경 보호를 위한 시민모임이 속속 결성되어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대처능력이 빠른 한국인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비록 도약을 위한 경제논리에 의해 회생불능에 빠진 우리 자연환경 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후손들에게 자연 그대로를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지키고 가꾸어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좌절보다는 희망을, 그리고 개개인의 환경의식을 튼튼한 동아리로 묶어세우는 일에 너도 나도 동참할 때이다.